배움/인문학

토지 3

꿈트리숲 2019. 4. 8. 06:28

토지는 누구에게나 공평한 땅이었다.

주말 잘 보내셨어요? 꽃들이 일제히 봉기를 하는 시기라 집에만 있기가 다소 미안한 감이 없지 않아요. 겨우내 준비하고 바야흐로 봄을 맞아 꽃망울을 터뜨리는데, 어찌 봐주지 않을 수 있겠어요. 그래서 주말 꽃 나들이를 해볼까 했는데, 날이 차고 미세먼지도 발목을 잡고, 비까지 흩뿌리니 찬란한 봄을 만끽하는 건 다음으로 미뤄뒀습니다.

오늘은 월요일, 토지 이야기 이어가는 날입니다. 지난 1, 2권 후기를 무사히 끝내고 나니 여기저기서 토지 얘기를 듣게 됩니다. 남편은 저에게 줄거리를 맡겨 논 것 마냥 계속 얘기해달라고 하고요. 본인은 읽은 지 오래되어 이야기가 가물가물 하다는군요. 전 버튼만 누르면 나오는 토크박스가 아닌데 말이죠. 글이든 말이든 제 얘기를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감사하고 또 계속 글을 쓸 수 있는 힘이 되어주는 것 같아 오늘도 즐겁게 토지 얘기 이어갑니다.

지난 두 권의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링크 참고해주세요.

2019/03/25 - [Book Tree/북스타트] - 토지 1

2019/04/01 - [Book Tree/북스타트] - 토지 2

토지 3권에서는 곧 쓰러져 갈 것만 같은 평사리의 최참판댁 상황과 풍전등화 같은 조선의 상황이 합쳐져서 마음을 조마조마하게 만듭니다. 나라의 임금이 버젓이 있고, 참판댁도 주인이 엄연히 있음에도 호시탐탐 잇속을 노리는 도적들. 그러나 겉으로는 교양 있는 척, 지식인인 척 하는 사람들이라 쉬이 내칠 수가 없어서 보는 제가 참 답답했어요.

지난 주 2권의 끝은 최치수 살인 모의를 했던 사람(평산, 칠성, 귀녀)은 관아로 끌려가는 얘기였었죠? 그들의 운명은 모두 참수되는 것으로 끝납니다. 칠성은 다소 억울한 면도 있는데요. 귀녀를 자신의 욕구 해소하는 것으로 이용한 탓에 미운털이 박혀 억울함을 벗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어요. 귀녀는 복중 태아가 누구의 자식인지는 모르나 출산까지 사형이 유예가 됩니다. 사냥을 떠났던 강포수가 돌아와 이 사실을 알고서 옥바라지를 해요. 사십줄에 접어든 집도 절도 없는 포수가 진실한 사랑에 눈을 떴습니다. 귀녀가 임신한 아이가 누구의 아이든 강포수에게는 상관이 없었어요. 오로지 귀녀를 볼 수 있다는 것에 안도할 뿐이지요.

p 20 저주받은 악녀이건 축복받은 선녀이건 그것도 강포수 하고는 관계가 없었다. 다만 거기 그 여자가 있다는 것과 그 여자를 위해 서러워해줄 단 한 사람으로서 자기가 있다는 것, 그것뿐이었다.

지고지순한 사랑은 젊은 남녀만, 혹은 식자층만 한다는 편견을 떨쳐내게 해준 것이 강포수의 귀녀에 대한 사랑인 듯싶어요. 때늦은 후회이긴 하지만 귀녀가 자신의 본심을 죽기 전에 강포수에게 전하는데, 강포수의 남은 생애를 꾸려갈 수 있는 힘을 주지 않았을까 생각해봤어요.

p 23 “강포수, 내 잘못했소.”
알았이믄 됐다.”
내 그간 행패를 부리고 한 거는 후회스럽아서 그, 그랬소. 포전 쪼고 당신하고 살 것을, 강포수 아, 아낙이 되어 자식 낳고 살 것을, 으으흐흐......”

강포수는 귀녀가 낳은 아들을 안고 사라졌습니다.

한편 평사리 마을에는 남편이 붙들려가고 야반도주했던 임이네가 돌아와 불화의 불씨를 댕깁니다. 마을사람들은 행색이 너무나 초라한 임이네를 처음엔 측은지심으로 보다가 최참판댁 마님에게도 내쳐지지 않고 용이의 아이까지 가지게 되니 측은지심은 손바닥 뒤집듯 쉽게 시기심으로 바뀌어 버립니다. 나라가 망할 징조인지 흉년이 들어 굶어 죽는 사람도 늘고, 사람의 인심은 더 야박해지니 이웃도 이제 옛말이 되어가는 것 같아요.

p 167 흉년의 공포에 한 번 사로잡히기만 하면 농민들은 하늘도 땅도 믿지 않았고 다정한 이웃, 핏줄이 얽힌 동기간도 믿지 않는다. 오직 수중에 있는 곡식만 믿는다.

흉년과 굶어 죽는 것보다 더 한 호열자, 즉 콜레라가 마을을 휩씁니다. 개인위생 개념이나 예방접종 같은 것이 전무하던 시대라 호열자 앞에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목숨이 모두 공평해요. 그러나 병이 쓸고 간 자리는 어찌 그리 안타까운 죽음만 남는지 모르겠어요. 어린 서희를 지켜줘야 할 사람들은 모두 죽고, 쓸어갔으면 좋겠다 싶은 사람은 살아남았거든요. 하늘도 참 무심하시지라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김서방, 봉순네는 말할 것도 없고, 서희의 할머니 윤씨부인 마저 호열자가 데려갔어요. 어린 나이부터 엄마의 부재,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할머니까지. 기쁨과 행복을 알기 전에 슬픔과 분노, 증오를 먼저 깨쳐가는 서희가 많이 또 많이 안타깝습니다.

마을의 호열자가 돌아서 많은 사람이 죽는데, 이 부분에서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었어요. 현재까지는 주조연에 가까웠던 윤씨부인의 죽음에 대해 그렇게 많은 지면을 할애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김서방이나 강청댁의 죽음이 더 세밀하게 묘사되지 않았나 싶을 만큼이요. 왜 그럴까 생각하다가 문득 누가 주인공이다 생각하는 것은 저만의 생각일 수 있겠다 싶었어요. 박경리 작가는 양반이든 상민이든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자기 삶의 주인이자, 토지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했던건 아닐까 하고요. 그러니 땅에서 나온 것으로 목숨을 잇고 죽어서 땅으로 돌아가는 우리는 모두 토지의 주인이기에 양반이래서 더 특별히, 상민이래서 대충은 없는 것 같습니다.

역병과 흉년으로 긴박하게 흘러가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3권이 끝났어요. 어린 서희와 길상, 봉순이가 자라면서 서서히 세대교체가 되고, 조준구와 대면하는 얘기도 곧 나올 것 같아 4권도 엄청 기대됩니다. 4권은 다음 주 월요일에 찾아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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