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인문학

토지 4

꿈트리숲 2019. 4. 15. 06:58

()은 악()을 기피한다

 

매주 월요일에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한편씩 후기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끝까지 완독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반신반의하며 시작했는데, 1부의 마지막 이야기까지 왔네요. 1부는 총 4권으로 되어있고요. 오늘이 4권의 얘기입니다. 4권 초반부는 김훈장과 조준구의 시국 얘기들로 채워지는데, 살짝이 지루한 감도 없잖아 있었어요. 그래도 그 둘의 대화에서 나라 상황과 평사리 사람들의 현실을 잘 알 수 있어서 양반이든 상민이든 참 녹록치 않은 삶이다 싶어요. 나라 잃은 책임을 온전히 통감하고 자결하는 양반이 있는 반면에 어디에 줄을 대면 살기 편해질까 하고 여기 기웃 저기 기웃하는 양반도 있어요.

 

다 기울어진 가세에 딱히 양반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형편이지만 무주공산 깃발 꼽고 목에 힘을 주고 있는 조준구가 철면피 양반입니다. 아무리 집안의 어른이 다 사망하고 없다 하지만 그래도 엄연히 참판댁의 주인인 서희가 있음에도 곡식이며 패물이며 다 자기 것 인양 쌓고 또 쌓아서 끝이 없는 욕심에 닿으려고 합니다.

 

마을 사람들도 이제는 대화에서 조참판댁이라고 말이 헛 나오기도 하고 밉보여 눈에 날까봐 조준구 앞에서는 억지 조아림도 하지요. 주먹은 가깝고 법은 멀다는 그네들의 말에서 마음은 싫지만 어쩔 수 없이 조준구의 처사에 따라갈 수밖에 없는 심정이 헤아려집니다. 이럴 때 누구 하나 강하게 나서면 못이기는 척 따라 나서서 큰 소리도 한번 내보겠지만 그럴 용기는 감히 낼 수가 없어요.

 

p 39 한심한 일이외다. 김생원께서도 이거 실례의 말씀인지 모르겠소만 상투 자르고 양복 입는 것만 대역이요 불효막심이라고 할 게 아니라, 또 양이니 왜구니 하고 유아독존의 말만 할 것이 아니라 조선땅의 수백 배나 되는 넓은 세계가 어찌 돌아가는지 그것을 아셔야 한다 말이오. 눈을 바로 뜨고 본다면 조선 땅이란, 사람 몸에 붙은 한 마리 빈대만도 못하지요.

 

조준구의 일침입니다. 그 자신 서희의 재산을 다 뺏어서 목에 힘주는 양반이지만 이렇게 말할때는 또 세태를 바로 보고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김훈장과의 대화에서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거지만 이건 마치 김훈장을 비롯한 조선의 글만 읽는 양반들을 훈계하는 것 같기도 해요. 왜 우리는 그때 중국이 세계의 전부라고 생각했을까요? 그리고 우리의 문제를 왜 중국과 일본을 끌어들여 해결하려 했을까요? 또 문호를 개방해서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일 결단은 왜 하지 못했는지 속이 부글부글합니다.

 

4권에서는 참판댁의 종이었던 그러나 지금은 조준구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삼수가 주요 인물로 등장합니다. 윤씨 부인이 죽고 조준구가 실권을 잡으면서 흉년이 들 때, 역병이 돌 때 삼수를 시켜 쌀을 나눠줍니다. 이때 삼수는 모든 집에 골고루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조준구에게 역성을들 사람들, 자기 입맛에 맞는 사람들 집에만 쌀을 나눠주죠. 그래서 마을 사람들에게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인데 을사늑약이 체결되고 마을 장정들이 비밀리에 회합하는 등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요. 그리고 나으리라고 깍듯이 모시는 준구의 변심도 느껴져서 참판댁 습격 모의에 동참합니다.

 

p 365 어리석은 삼수. 그가 아무리 악독하다 한들 악의 생리를 몰랐다면 어리석었다 할밖에 없다. 악은 악을 기피하는 법이다. 악의 생리를 알기 때문이다. 언제나 남을 해칠 함정을 파놓고 있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시 궁극에 가서 악은 삼수가 지닌 그와 같은 어리석음을 반드시 지니고 있다.

 

마을 사람들 눈에도 안 나고 그러면서 조준구에게서 한 밑천 약속 받을 수 있는 방법을 머리 굴려 생각해내고 회심의 미소를 짓는 삼수. 삼수와 같은 악의 축이지만 조준구는 그 악을 피하려 합니다. 성가신 존재, 없어져주는 편이 홀가분한 존재이기에 기피할 구실을 찾고 있을 줄이야 삼수는 결코 몰랐겠죠. 제 머리의 비상함만 믿고 있었으니.

 

참판댁을 습격한 사람들은 고방문을 열고 곡식을 모두 실어 나르고, 비단과 패물들을 전부 가져나갔지요. 그런 연후에 조준구 내외를 찾으러 혈안이 되어 온 집안을 뒤졌지만 사당 마루 밑에 숨어있는 내외를 끝내 찾지 못하고 습격 사건은 끝납니다. 기사회생한 조준구는 일본 헌병을 불러 삼수를 폭도로 고발해 사살되게 합니다. 그리고 평소 자신에게 껄끄럽게 대하던 한조도 잡아들여 사살되게 만들지요. 심지어 한조는 그날 밤 습격 사건에 끼지도 않았는데도 말이죠. 습격 사건의 주역들은 미리 알아채고 다 도망가고 없어요. 마을은 이제 인정이 오고가고 서로의 관심아래 즐겁게 생활하던 평사리가 아닙니다. 내 것만 챙기고 관심은 경계와 의심으로 변질되어 갑니다.

 

더 이상 예전의 평사리가 아니기에 마음의 뿌리를 뽑아내야 할 때가 다가왔어요. 태어난 땅에서 먹고 자라고 그 땅으로 돌아갈 줄 알았던 산천을 버리고 새로운 땅으로 가야할 때가 온 것입니다. 자의가 아니었기에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면서 언제 다시 오마 언약도 없이 평사리를 조선을 버리게 되네요.

 

1부의 주역들이 병으로 굶주림으로 죽고, 또 어린 아이들이 장성하며 세대 교체가 됩니다. 이제 새로운 땅 간도에서 토지의 새로운 인물들과의 얘기가 펼쳐질 것 같아요. 다음주에는 2부의 첫 얘기로 찾아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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