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인문학

토지 7

꿈트리숲 2019. 5. 13. 06:42

도대체 운명의 실꾸리를 어디다 숨겨놨기에 얽히고 설키고

 

 

지난 한 주 쉬고, 토지 7권의 이야기 이어갑니다. 토지 6권에서 마차 사고로 인해 서희와 길상의 본격적인 사랑이 시작되려나 했더니 7권에서는 어느새 두 사람이 결혼을 해버렸어요. 박경리 작가의 <토지>는 이야기 전개에서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방식을 쓰기 보다는 먼저 뒷 이야기를 앞서 풀고 그 과정에서 인물들의 대화나 회상 속에 사건 실마리가 전해지는 방식이 자주 나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마차 사고 이후의 스토리를 건너뛰고 바로 결혼 생활이 나오기에 길상이나 서희의 회상 또는 다른 인물들의 대화에서 어떻게 결혼에 이르게 됐는지 나오겠다 싶어 목 빠지게 7권을 읽었는데요그냥 몇 줄의 이야기로 결혼했음을 알려줍니다. 그나마 봉순이가 서희를 만나러 용정에 왔기에 조금 더 분량을 차지하는 느낌이랄까요.

 

길상과 서희의 결혼은 봉순이에게는 더 이상은 아무 미련을 가질 수 없는, 봉순이 자신은 모르는 마음의 찌꺼기 마저 쓸어가는 결정타로 작용한 것 같아요. 분명 용정으로 오는 길에 봉순이는 예상했어요. 그럼에도 서희를 만나고 반가움의 회포를 채 풀기도 전에 서희 입에서 서방님이란 말이 나오니 말문이 막혀 버릴 정도로 충격입니다. 길상은, 서희는 봉순이에게 아직은 미련의 끈이 다 풀리지 않은 그런 존재였는가 봅니다.

한편 길상은 원하는 사람과 결혼을 했기에 행복할 것만 같았지만 그의 마음은 결혼 전보다 더 복잡한 것 같아요. 흔희 결혼 후에 진정한 외로움을 겪는다는 말을 농담반 진담반 하는데요. 길상이가 결혼 후에 그런 외로움을 맞닥뜨린 것 같아요.

 

p 140 길상은 고독했다. 고독한 결혼이었다. 한 사나이로서의 자유는 날갯죽지가 부러졌다. 사랑하면서, 살을 저미듯 짙은 애정이면서, 그 누구에게도 주고 싶지 않았던 애기씨, 최서희가 지금 길상에게는 쓸쓸한 아내다.

 

너무나 소중하고 아까워 남에게 주기 싫었지만 또 자신에게는 너무 큰 존재라 쉽게 마음을 열 수가 없나봐요. 서희는 이제껏 그 누구도 본적 없는 다소곳함을 길상에게 보여주며 서방님을 대하는데요. 그런 길상은 다소 거칠게 서희를 대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마음을 반대로 표현하고 있지 않나 싶었어요. 왜 자신의 진심을 보여주지 않을까 답답했습니다. 신분의 벽을 정말 뛰어넘을 수 없었는지, 아니면 서희의 성정이 여느 여자처럼 유순한 것이 아니어서 그런지 길상의 속내를 정확히 모르겠어요.

 

뭇 사람들에겐 어느 날 갑자기 주인과 결혼하고 신분이 달라진 것 뿐인데, 그렇기에 면전에서는 굽실거리고 뒤돌아 서면은 눈꼴시다 한마디씩 하는 것이 길상에겐 많은 상처를 줍니다. 서희 역시 뭇시선에서 상처받기는 마찬가지였다고. 아마도 부부가 되었기 때문에 받는 자신들의 상처를 부부이기 때문에 더더욱 드러내지 않으려 합니다. 그래서 서희와 길상은 외롭고 고독한 결혼 생활을 이어가는 듯 해요. 쓸쓸한 아내와 고독한 남편. 둘 중 누구라도 먼저 속내를 터놓으면 좋을텐데, 참 안타까운 부분입니다.

 

다리가 열 개라면 열 개다 여러 사건에 걸치고 있는 김두수(거복이) 얘기가 빠질 수 없는데요. 김두수는 완력으로 송애(공노인의 수양딸)를 제압하고, 협박으로 윤이병을 끌어들여 자신의 끄나풀로 사용하고 있어요. 김두수 자신이 일본의 앞잡이 밀정 노릇을 하고 있기에 길상이나 서희 앞에 드러내놓고 나다닐 순 없는데요.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송애를 자꾸 불러내서 만나다 보니 결국 길상과 대면하게 됩니다. 살인 죄인의 아들과 그 죄인의 손에 죽은 이제는 남이 아닌 최치수의 사위가 된 두 사람. 원수지간이 만났어요. 심장이 쫄깃해지는 느낌인데요, 서로의 내면을 들키지 않으려 긴장이 팽팽하게 흐릅니다. 술상을 받아놓고 많은 얘기가 오고갔을 것 같은데, 다음 권에서 기대해봐야 할 듯합니다.

 

7권에서는 나라를 빼앗긴 현실을 깨닫고 어떻게 하면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을지 다각도로 모색하는 사람들이 여럿 등장합니다. 그 중 한 사람이 강의원인데요. 강의원은 아마도 <토지> 작품에서 유일하게 실존인물이지 않을까 싶어요. 강우규 독립투사를 강의원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여러 곳을 떠돌면서 한의사로 활동하지만 실은 독립운동과 교육사업을 위한 밑천 마련을 하고 있어요.

 

p 274 당신네들이 내 얘기를 듣고 자식들을 가르치고 또 남에게도 그러기를 권한다면 나는 조그마한 씨알을 하나 뿌린 것이 될 것이오. (중략) 아들딸이란 반드시 내 아들딸만이겠소? 조선의 아들딸, 일꾼이면 모두 내 아들 내 딸이거니 생각해야, 가르친다는 것도 옛날같이 사서삼경을 외게 하는 그따위는 아니지.

 

우연히 용이의 절친 주갑이의 급체를 치료해주고 독립과 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합니다. 이에 감응한 주갑이는 강의원을 따라 나섭니다. 독립운동이라는 거대한 소용돌이에 자신을 바친다는 생각보다는 강의원의 좋은 뜻에 함께 하겠다는 마음이 더 크지 않았을까 짐작해봅니다.

 

강의원은 자신들 당대에 독립이 안 될 수도 있으니 자식들에게 독립정신을 이어주어야 한다고 해요. 그래서 조선의 아들딸이면 누구나 내 아들딸이라 생각하고 가르쳐야 한다고 말을 하지요. 신학문을 배우는 것도 좋으나 그보다 내 나라 내 겨레를 잊지 않고 한마음으로 조국을 되찾야 한다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또 한 사람은 공노인과 조준구가 만나도록 다리를 놓는 임역관의 아들 임명빈입니다. 임명빈은 일본 유학을 다녀와서 신문물을 많이 접했어요. 소설과 자신의 능력 즉 일본어를 잘하는 걸 접목해서 번역서를 출간하려고 합니다.

 

p 358 독립운동도 좋구 교육사업도 좋지만 가장 쉬운 방법으로 남을 알구 나를 아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거야. 생각을 해보라구. 물론 글을 모르는 사람이야 별문제겠으나 글줄 읽는 사람이면은 위아래 부담 없이 읽혀지는 게 소설이 아니겠느냐. 그러니까 몇몇 식자들이 새로운 문명을 두고 왈가왈부하는데 그럴 것이 아니라 보다 많은 사람 일반대중이 짧은 시일에 눈을 뜬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 아니겠느냐 그 얘기라구.

 

보다 많은 사람이 짧은 시일에 눈을 뜨는 것, 독립운동을 하는 이동진이나, 교육사업을 하는 강의원 보다 어쩌면 좀 더 실리적이고 효과적일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일반 백성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소설로 남을 알고, 나를 알게 해줄 수 있으니까요. 그로인해 나의 현 위치가 어떤지 쉽게 깨칠 수 있다 여깁니다.

 

<토지>의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삶을 사는 것 같아도 모두가 얽히고설키어있어요. 작가가 운명의 실꾸리를 숨겨놓고 쉽게 보여주지 않겠지만 그들은 힘들고 고단한 삶이요, 보는 저는 더 몰입되는 이유인 실꾸리. 그 실꾸리 찾으러 그들도 저도 계속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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