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움/국내여행

2019 강릉 여행 - 3일차

꿈트리숲 2019. 5. 17. 07:17

여행은 마음의 성형 수술

 

 

오늘은 강릉 여행 마지막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짧게 23일의 일정으로 다녀왔는데 후기를 쓰다 보니 한 45일 정도 다녀온 것 같아요. 여행지를 찍고만 왔다면 이렇게 풍성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을텐데, 여행 동무들이 하나같이 재밌고 좋은 사람들이라 그들과 함께한 곳은 비단 여행지가 아니더라도 이야기는 많이 나올 듯싶어요.

 

밤새 이야기를 하고 싶었으나 마지막 날 일정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눈을 부쳤어요. 아침이 살짝 피곤하더라구요. 어젯밤 일찍 잘 걸 하면서 조삼모사 같은 마음이 듭니다. 여자 넷은 아침 먹으려 바로 코앞에 있는 엘리베이터로 몇 발자국 걸어가서 어젯밤 못 다한 얘기를 시작합니다. 그때 갑자기 화재 사이렌이 울려요. 바로 방화문이 자동으로 닫히고요. 순간 너무 당황했죠. 그런 실제 상황은 처음 겪거든요. 일순 모두 얼음이 되었습니다. 계단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계단이 안보여요. 딸이 말하기를 계단은 복도쪽에 있는데, 방화문이 닫혀서 갈 수가 없다고요.

 

1분도 채 안 되는 시간 만에 즐거움이 공포로 바뀝니다. 저는 화재 냄새가 나는 것 같다고 하고, 큰시누이는 방화문 닫힌 틈새로 연기가 보이는 것 같다고 하시고. 심장이 뛰는 게 느껴져요. 평소에도 심장이 활발히 뛰지만 전혀 느끼지 못하고 사는데, 심장이 몸 밖으로 나와서 존재감을 확인시켜 주는 듯 강렬하게 쿵쿵 뜁니다. 조카가 아직 화재 사이렌이 울린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가자고 했어요. 지금 방법으로선 그것밖에 없겠다 싶어 엘리베이터를 타고 무사히 1층 로비까지 갔어요.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오는 그 1~20초가 왜 그렇게 길게 느껴지는지요. 중간에 엘리베이터 멈출까봐 온갖 시나리오를 머리에 그리면서 내려왔습니다. 프런트에 소상히 얘기하는 중에도 놀란 가슴 진정이 안되고 프런트 전화는 빗발칩니다.

 

다른 투숙객들은 계단으로 머리에 물을 뚝뚝 흘리고 오기도 호텔 가운 입은 채로 내려오기도 하고요. 전 제가 투숙한 호텔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묵고 있는 줄을 그때 첨 알았어요. 모두들 '이게 무슨 일이야?' 하는 얼굴로 화재를 체크하러 간 직원만 기다리고 있었어요. 전 밖에 나가 연기 나는 곳이 있나 건물 외관을 봤는데요. 다행히 그런 곳은 보이지 않아 큰 화재는 아닌 것 같다 생각했어요. 화재 체크하러 갔던 직원이 돌아오고, 객실에서 담배를 피워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어요. 화재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살짝 화도 나더라구요. 아니 담배 때문에 투숙객 모두 졸지에 비상 화재 훈련을 해야 하는 것인가, 그것도 여행 와서 말이죠. 다들 객실로 저희는 밥 먹으러 식당으로 흩어집니다.

 

호텔에서 담배를 피워도 되는 것 같은데 왜 화재경보기가 울렸을까 생각해봤어요. 분명히 금연룸, 흡연룸이 따로 있는데 말이죠. 화재 감지기에다 대고 연기를 뿜은 것인지 그걸 확인 못해봐서 아직도 궁금하네요. 그러면서 곰곰이 호텔 내부를 떠올려보니 곳곳에 소화기가 눈에 보이도록 비치되어 있었고, 객실 내에도 문들에 방염 마크가 부착되어 있었어요. 강원도에 산불이 자주 발생해서 대비를 잘 해놓은 것인가 싶기도 하고요. 아니면 건축법상 신축 호텔은 그런 시설을 다 갖추어야 준공 심사가 나는가 짐작을 해봤습니다.

 

아무튼 돈 주고도 할 수 없는 화재 대피 훈련을 해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호텔은 여행하면서 주로 이용하기 때문에 화재 생각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을 경우가 많아요. 그러나 화재는 언제 어느 때고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에 이제 호텔에 투숙하게 되면 소화기나 비상계단 위치 파악 해두고, 스프링클러가 있는지 문은 방염 처리가 되었는지 등도 꼼꼼히 체크해야겠다 생각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침착! 아주 중요합니다. 저희도 처음엔 순간 화면 정지 같은 몇 초가 있었어요. 다행히 조카가 침착하자고 얘기를 하면서 서로 손에 손을 잡고 진정하고 그랬죠. 위급한 일이 닥쳤을 때는 습관이 무의식중으로 튀어나옵니다. 그러니 평소에 화재 대피 훈련을 해둔다면 그 습관이 위기에도 빛을 발하지 않을까 싶어요.

 

 

심장은 다시 제 몸 안으로 들어가서 열일 하는 것 같고요. 평소와 같이 맛있게 아침을 먹었습니다. 오늘은 오전에 주문진항에 가보고 여행을 종료할 계획이에요. 주문진항에 도깨비 촬영지가 있다고 해서요. 전 드라마를 보지 않아서 포스터 사진만 기억나는데요. 방파제에 주인공 두 사람이 서 있는 모습이요. 거기가 도깨비 성지인 듯싶어요.

 

 

막상 주문진항에 갔더니 횟집만 보여요. 도깨비가 나올만한 방파제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습니다. 어떻게 된 건가... 검색 들어가니 영진해변이라고 나오네요. 영진해변으로 다시 고고. 영진해변은 딱히 주차장 시설이 없었어요. 도로가에 다들 주차를 하더라구요. 아침 일찍부터 도깨비 주인공 빙의 되어 사진 찍는 사람들이 있어요. 도깨비 끝난지가 제법 된 것 같은데 드라마의 인기가 대단했구나 싶었어요. 저희도 줄 서서 찍으려는데 방파제 입구에 주의 표지판이 있더라구요. 파도도 치고 바람도 많이 불어서 그런가 싶은데, 다른 사람들은 다들 인증샷을 잘 찍고 나옵니다. 전 무서워서 방파제 끝까지는 아예 엄두도 안내고요. 초입에 서서 얼른 찍고 나왔어요. 꽃다발 대신에 급조한 여행 토퍼를 손에 쥐고서요.

 

 

지금 글 쓰면서 도깨비 사진을 보니 주인공들은 방파제 끝에서 큰 파도가 오는 배경으로 찍었더라구요. 경찰이 제지 안했나 몰라요. 평소에 경찰이 상주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간 날은 도로가에 경찰이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날씨가 좀 을씨년스러워서 그런지 바닷바람이 어찌나 차던지요. 가져갔던 옷들 다 동원해도 비집고 들어오는 바람을 막을 길이 없어요. 사진만 찍고 얼른 다음 장소로 갑니다. 날이 좋았다면 영진 해변을 좀 더 거닐고 했을텐데, 계획 급 수정했어요.

 

근처에 소돌아들바위 공원으로 갑니다. 여기도 바람이 넘넘 세차게 불어요. 해안가에 산책로를 데크 깔아서 잘 만들어 놨는데 바람에 날려갈 것만 같아서 산책이 아니라 뜀박질 수준으로 주변 풍경을 훑었어요. 소돌아들바위가 우리 머리 위에 빼꼼 보입니다. 아쉬움은 검색 사진으로 채웠습니다. 오는 길에 첫날 조금만 먹어서 감질났던 순두부 젤라또 한번 더 먹고 아쉬운 강릉 여행을 마무리 했어요.

 

 

 

 

 

 

어디를 가느냐가 아니라 내가 왜 어디를 가게 되었는가를 먼저 생각해보는 여행이 되어야 진짜 좋은 여행이 됩니다. 여행을 가는 이유는 여행 자체가 좋아서이기도 하지만 여행을 가고 난 이후에 여행 전과 내가 달라지고 싶어서 아닌가요? 여행은 마음의 성형 수술이라고 생각합니다. - 나를 채우는 인문학(최진기) -

 

전 이번 여행을 통해 성형 수술에 성공했어요. 어제의 내가 아니라 새롭게 태어나 달라진 내가 오늘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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