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인문학

토지 9

꿈트리숲 2019. 5. 27. 06:12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옳은가

 

 

8권의 이야기, 토지 1, 2부가  끝나고 3부가 시작됩니다. 2부가 시작될 때도 그랬듯이 시간이 흐르고 장소가 바뀌면서 새로운 인물이 대거 등장했더랬어요. 기껏 1부에 나오는 사람들과 사귀어놨는데, 2부에서 새로운 사람 또 소개받는 기분이었죠. 그래도 작가가 짜놓은 얼개에 따라 흘러가다보니 금새 그들이 나의 지인들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이제 좀 정들었다 싶은데, 3부가 되면서 이별해야 할 사람이 생기고 새로이 맞는 인물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바야흐로 토지 3세대들이 등장한거지요. 아직 좀 서먹한데요. 그래도 개연성을 잘 부여해주는 작가님 믿고 3부를 시작합니다.

 

평사리 땅을 대부분 찾은 서희는 가족과 평사리 사람들과 진주로 돌아왔어요. 물론 그 가족에 길상은 없습니다. 독립운동 하느라고 만주에 남았어요. 그 사이 시간은 훌쩍 뛰어넘어서 3.1 만세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토지의 인물들은 그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생과 사를 넘나들었고, 어떤 이는 식자로서 큰 역할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고뇌에 빠지고, 어떤 이들은 마음속으로만 독립의 열망에 불을 태울 뿐 평소와는 다름없는 생활을 이어갑니다. 반면 조준구나 김두수 같은 인물은 오히려 영원히 독립이 되지 않기를 바랬을지도 모르겠어요.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부와 권력을 독립이 앗가간다 생각했을테니까요.

 

조준구는 자신이 투자한 광산이 사기당하고 담보로 잡혔던 땅문서들이 모두 서희에게로 넘어간 것을 알고는 이를 부득부득 갈아보지만 사실 땅문서가 원래 임자에게로 간 것이라 딱히 법으로 시비를 가릴 수가 없는 일이였지요. 그냥 분하다할 밖에 달리 찾아올 방도가 없어요. 다만 평사리 최참판댁, 그 대궐 같은 집이 아직 서희가 차지하지 못한, 조준구의 하나 남은 희망이자 마지막 보루이기에 조준구는 그 집을 가지고 서희에게 접근하려 합니다. 희망이라 하면 그 집을 빌미로 거래를 하는 것, 즉 서희에게 돈을 받아내는거죠.

 

굳이 따지지 않는다면 남이나 다름없는 촌수를 끌어다 최씨 집안에 입성하고 조카뻘 되는 서희의 재산을 남김없이 자기 수하에 다 넣고는 기고만장 했어요. 온 세상이 모두 제 것만 같았겠죠. 거기다 한술 더 떠서 자신의 곱추 아들 병수와 서희를 혼인시키려는 계획도 세웠더랬어요. 그렇게 뻔뻔하게 짝이 없는 조준구가 이제는 하나 남은 평사리 집을 앞세워 서희에게 돈을 받아내려 가는, 정상적인 사람의 얼굴 두께라면 차마 못할 일을 뻔뻔하게도 하더라구요.

 

p 178 만석을 없애는 동안 무던히 사치스런 생활을 했던 조준구였으나 오늘은 빈털터리여서가 아니라, 사랑방의 분위기에 눌려버린다. 호사스런 것은 별로 눈에 띄지도 않는데 방 전체가, 분위기 전체가 호사스럽기 이를 데 없는 것 같은 착각을 일게 하는 것이다. 늦더라도 나올 거라던 최서희는 좀체 나타나지 않는다. (중략)

무려 두 시간은 기다렸을 것이다. 시간과 공간의 고문이다. 사랑방의 공간은 최서희의 무시무시한 힘의 팽창이었고, 시간은 사멸되어가는 화석의 기나긴 깊이였다. 조준구는 땀을 흘리기 시작한다. 계속하여 흘렀다. 입속은 가뭄 날의 점토처럼 바싹바싹 말라서 굳어진다.

 

자기 집도 아닌 것을 가지고 집 주인에게 집을 돌려 줄 터이니 돈을 달라. 과연 속악한 인물입니다. 인물소개를 보면 작가가 지적한 <토지>에서 가장 속악한 인물이라고 나와요. 기질적으로 간교하고 음험하며 교만하다고요. 정말이지 나기를 그렇게 태어난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글을 좀 읽었다 하는 사람이라면 스스로 자신의 뻔뻔함에 몸서리를 칠 수밖에 없을 듯싶거든요. 그래도 일말의 양심은 있었던지 서희를 기다리는 그 시간이 초조하기는 한가봐요. 서희를 대면하는 것이 좌불안석이겠지요. 머리를 가진 사람이라면 자신이 저지른 일들을 결코 잊지 않았을테니까요.

 

조준구는 오천원을 요구하고, 서희는 조준구가 보는 앞에서 있는 돈 반을 갈라 오천원을 내어줍니다. 니가 그러고도 사람이냐? 칼만 안들었지 강도구나 같은 소리라도 지를법 한데 조준구 말대로 서희는 진짜 여장부에요. 실로 최참판댁 여인이 맞습니다. 눈 하나 깜짝않고 거금 오천원을 내어주니까요. 화폐가치를 찾아보니 1920년대 오천원이면 지금 가치로는 오억원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저 같으면 치가 떨려서라도 내 재산 뺏은 놈에게 오억원을 내어줄 수 없을 것 같은데 말이죠. 그 돈을 받는 와중에도 조준구는 만 원쯤 부를 걸 하는 후회의 얼굴을 해요. 돈에 눈이 멀어 인간이길 포기한 인물입니다. 작가가 그려낸 인물이기에망정이지 현실에 이런 사람이 주위에 있다면 아마 전 분노에 차서 숨넘어갔을 것 같아요.

 

p 183 “본의는 아니지만 선택의 자유를 드리겠소. 일말의 양심을 가져가시든지 돈 오천 원을 가져가시든지 둘 중 하나를 택하시오.”

 

서희의 여장부 같은 면모를 잘 드러내주는 대사입니다. 울분을 토하며 인간의 도리와 잘못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극도로 냉정하게 내뱉습니다. 나는 선택의 자유를 줬고, 너는 너의 자유 의지로 선택했으니 더 이상 토 달 일은 없을 것이다 뭐 그런 뜻이었을까요? 당연히 양심을 저버릴 인간임을 간파했기에 선택권을 주는 것이겠지요. 더 비참해지라고, 서희 체면엔 어쩌면 그것이 준구를 나락으로 떨어지게 하는 방법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이로써 서희의 오랜 복수는 끝이났습니다. 하지만 승리의 기쁨을 함께할 남편도 없고 지난날의 억울함과 분노를 함께 곱씹고 풀어줄 지기 하나 없습니다. 혼자만의 승리이자 복수였습니다.

 

p 229 긴 겨울을 견디었건만 승리의 찬란한 나비는 어디로 날아갔는가? 장엄하고 경이스러우며 피비린내가 풍기듯 격렬한 봄은 조수같이 사방에서 밀려오는데 서희는 자신이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지 않는가 하고 생각해보는 것이다.

 

조준구와의 결전이 너무 싱겁게 끝나버려서 허탈한 것이었을까요. 아니면 그동안은 복수심으로 버티어 온 서희인데, 이제는 더 이상 추동할 힘이 없어졌다 느낀 탓일까요. 악의 축이 사라진 지금 서희는 이제 누구를 보며 힘을 얻고 위안을 얻을지, 길상이 없는 진주에서는 환국, 윤국 두 아들이 큰 버팀목이 되어주지 않을까 싶어요.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옳은가를 생각하기 위해서 글을 읽는데, 그러나 글을 안 읽어도 생각을 한다면 그것으로 족하고 나머지는 생활을 위한 거야."

 

위 대사는 석이가 마음 못 잡고 방황하는 홍이에게 한 말인데요. 시대에 맞춰 그때그때 살아내는 것도 용하지만 어떻게 살아야 옳은가를 생각하기 위해 책을 읽으며 사는 삶은 적어도 남에게 해는 끼치지 않겠지 싶어요. 토지를 읽으며 어떻게 살아야 옳은가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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