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인문학

토지 12

꿈트리숲 2019. 6. 17. 06:44

불운할 때는 불운만 찾아온다

 

 

월요일은 토지, 12번째 이야기 이어갑니다. 박경리 작가는 토지에서 주요 인물들의 죽음은 상세하게 묘사를 하지 않는 것 같아요. 죽고 난 뒤에 다른 사람의 기억에서 소환을 시키거나 주고받는 대화 속에 잠시 잠깐 등장 시킵니다. 그런면에서 봉순이도 섬진강에 몸을 던졌다 카대요.’ 라는 지나가는 말에 그의 짧은 삶이 마무리되어 담겼습니다. 저는 미처 이별 준비를 못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월선의 죽음과는 또다른 느낌이라 토지의 문장들 속에서 봉순이를 더 찾아보고자 애썼어요.

 

죽음의 순간을 알려주었더라면 그 상황에서 같이 슬퍼하고 아파했을텐데, 작가는 그보다는 오히려 여운을 더 오래 남기려했던 것일까요. 두고두고 여러 사람의 기억 속에서 봉순이가 소환됩니다. 이상현의 기억에, 서희의 기억에, 혜관, 주갑이, 홍이, 그리고 독자인 저에게. 봉순이를 추한 모습보다는 아름다운 기화의 모습으로 남겨두려는 작가의 배려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기화를 버리고 떠났던 그래서 제가 마음속으로 참 용기 없는 사람이다 생각했던 이상현이 눈물을 흘리며 기화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깨닫는 부분이 있어 얼어붙었던 제 마음이 좀 누그러집니다.

 

p 193 사람이 운다는 것은, 특히 사내가 운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든 순수한 것이다. 순수한 인간적인 일면이다.

이선생 왜 그러시오?”

어쩌다가 하나 떨어진 계집아이 생각을 했던 게요.”

최초의 고백이었다.

어미는 아편쟁이, 물에 빠져 죽었다던가...... 허허헛헛......”

기생이 뭣 땜에 아이는 낳았는지 모르겠소. 그나마 계집애였으니 망정이지, 허허헛헛......”

 

상현은 기화가 낳은 자신의 딸 양현을 명희에게 부탁을 합니다. 소설을 계속해서 써서 보낼테니 잡지사에 좀 보내주고 원고료를 받으면 양현의 양육비에 보태달라구요.

 

p 346 나를 얽어 맨 그것들이 사람 사는 데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내가 자유인 것을 깨달았고 정직해지는 것을 느꼈소이다. (중략) 나는 지난날 어떤 기생을 사랑했소이다. 기생이기 이전에는 최참판댁의 침모의 딸이었지요. 나는 그 여자에 대한 감정을 동정이라 생각했소. 나중에는 바람기라 생각했소. 더 나중에는 수치로 생각했소. (중략) 나는 진실로 그 아이에게 내 사랑을 전하고 싶소. 그리고 그 아이에게는 하나밖에 없는 핏줄의 정이 필요할 것이오.

 

눈물을 흘리며 기화를 양현을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두 사람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깨달았던 것이겠지요. 그래서 용기를 내어 처음으로 기화 얘기며 양현의 얘기를 꺼냈던 것이겠구요. 또 한때 자신을 짝사랑했던 명희에게 양현을 부탁할 마음까지 내게 된 건 자신을 얽어 맨 양반이라는 사슬, 지식인이라는 거추장스런 옷이 사는데 별 의미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겠지요. 사회의 시선이 아닌 자신의 자유 의지로 아이를 부양하겠다 마음먹은 건 기화를 정말 사랑했다는 솔직한 마음의 표현인 것 같습니다. 상현을 철없다, 책임감 없다며 미워했던 제 마음 거두어들입니다.

 

한편 평사리에서는 세 여인을 먼저 떠나보내고 질긴 목숨 이어오던 용이가 세상을 떠납니다. 사랑하던 월선과 부부의 연을 맺지 못해 강청댁, 월선이, 임이네 세 여자를 다 불행하게 했던 용이. 용이가 상현이 처럼 자신을 얽어 맨 제도와 뭇시선이 사람 사는데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 깨달았다면 얼마나 편했을까, 자유로웠을까 생각이 드네요. 그럼 강청댁도 월선이도 임이네도 다른 삶을 살았을텐데 말이죠. 하긴 상현도 기화의 죽음 이후에 깨달았으니 인간은 죽음이 임박해서야 삶의 진리를 알고 자유로워지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기나긴 여행을 한 용이도 죽음으로 삶을 완성하고 토지에서 퇴장을 했습니다.

 

평사리 사람들이 하나둘 퇴장하고 2세대 3세대 인물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습니다. 일본은 보다 더 치밀하게 악랄하게 조선을 침탈해가고 토지의 후손들은 사회주의로 공산주의로 자본주의로 갈 길을 달리 합니다. 각자 자신의 처지에서 진화하다보니 그렇게 여러 갈래로 나뉘어지는 것일텐데요. 그래도 하나로 뭉쳐 대응하지 못하는 아쉬움은 먼 훗날 또 다른 불운의 씨앗이 될 것이 자명하여 먹구름은 쉬이 걷히지 않을 듯싶어요.

 

p 227 불운할 때는 불운만 찾아온다......

 

그간 불운한 시기에 도적처럼 찾아온 불행을 준비도 없이 맞이하고 제대로 보내주지 못한 인물들이 우리를 울게 하고 마음 아프게 했어요. 다음 편에서는 불운의 시기가 마무리 될지, 아니면 해뜨기 전 가장 어두운 시간이 될지 지켜봐야겠습니다.

이것으로 토지 312권의 이야기를 마치고요. 다음 주는 4부 시작인 13권의 얘기로 찾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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