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인문학

토지 15

꿈트리숲 2019. 7. 8. 06:31

두려움으로 강력해진 존재

 

 

전 토지를 15권까지 읽어오면서 조선 후기, 일제 강점기를 거치는 동안 힘없는 사람들이 겪는 고통이 너무 안타깝게 느껴졌어요. 힘없는 사람들이란 돈 없고 권력 없는 신분제도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겠지만 그보다도 토지에서 본 힘없는 사람들은 여성들, 그리고 아이들이었습니다. 배운 남편이든 못 배운 남편이든 돈이 있는 집이건 없는 집이건 아내를 함부로 하는 인물들이 토지에서 계속 등장하는데요. 그 대표적 인물이 김두만이에요.

 

두만이는 조준구를 몰아내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최참판댁 습격을 할 때 슬쩍 멀리 몸을 피했던 김이평의 첫째 아들입니다. 김이평이 몸을 피할 때 두만이도 함께 데려갔어요. 서희가 평사리 집을 다시 찾고 마을도 조준구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옛말 하고 사는 시대가 되니 이평은 그날의 일이 항상 목에 가시처럼 걸려있어요. 그래서 최참판댁에는 떳떳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그의 아들 두만은 그런 아버지가 영 못마땅하고 자신은 국밥집 하며 술장사를 해서 돈을 많이 벌어 최참판댁, 그리고 더 나아가 평사리 사람들을 다 무시하며 살고 있지요.

 

두만에게는 처가 두 명인데요. 부모님이 짝지어준 막딸이, 그리고 서울에서 데려온 서울네에요. 조강지처 막딸이 하고는 두 명의 아들을 두었고, 서울네는 아직 아이가 없습니다. 막딸의 아들들을 다 뺐어서 서울네가 키우고 있는데요. 두만이와 서울네의 음해로 막딸이의 아들들 조차 자신들의 엄마를 무시하고 나서죠. 이에 항상 시아버지, 김이평이 바람막이 역할을 해줬는데 나이 들어 명을 다하고 세상을 버리게 됐어요. 장례를 치르고서 또 한 번 서러움의 폭풍이 막딸이에게 몰려옵니다.

 

p 41 시누이가 섧게 섧게 울었지마는 사무치게 서러운 사람은 막딸이었다. 그러나 막딸이는 울어보질 못했다. 일이 태산 같았기 때문도 아니요 딸 아닌 며느리였기 때문도 아니었다.

저기이 제집이가, 저 꼬라지 하고서 에미라꼬? 남자 우세시키지 말고 자식 우세시키지 말고 제발 뒷구석에 콱 처박히 못있겄나!”

남편 입버릇 때문이었다.

 

두만은 서울네와 살면서 진주로 나가 있어 평사리 집에는 명절 때나 제사 때만 가끔 옵니다. 그렇게 가끔 오면서도 막딸이를 보면 모진말은 기본이요 폭력 행사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더라구요. 아내는 남편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생각, 그러니 아이들도 엄마를 우습게 여기는거지요.

 

p 50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우리 집안은 더 많이 달라졌고요. 할머니도 옛날식으로 하실 생각 아예 마십시오. 자식이라 해서 부모 마음대로 못합니다. 자식이 평생 함께 살아야 할 여자를 어째서 부모가 택하지요? 그런 구습은 하루라도 빨리 벗어버려야지 서로가 다 비극 아닙니까. 아버지도 괴롭고 진주어머니도 괴롭고 편한 사람 아무도 없어요. 우리 역시 고통스러우니까요.”

 

일본까지 가서 배운 손자의 말이 어떻게든 막딸이를 며느리로 지키고픈 두만네를 절망케 합니다. 자신이 낳은 아들이 서울네를 편들며 비수를 꽂으니 막딸이의 마음은 다 짓물러서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었을 거에요.

 

지난 13권에서 영호 얘기를 잠깐 했었는데요. 살인죄인의 자손이라는 멍에를 쓰고 평생을 살던 한복이의 아들이지요. 학생운동을 해서 징역을 살고 나온 덕분에 마을 사람들의 눈총과 손가락질이 일시에 영웅대접으로 바뀌었죠. 그런 영호도 장가를 들었는데, 국밥집 숙이를 아내로 맞았습니다. 숙이는 아비가 국밥집에 들러 딸을 두고 떠나버려서 졸지에 고아가 된 아이에요. 다행히 국밥집 영산댁이 친손녀처럼 잘 돌봐주고 혼례까지 치르게 해줬죠. 서희의 둘째 아들 윤국이 학생운동으로 유치장 신세를 지고 나와 방황할 때 몇 번 강가에서 국밥 날라다 주며 숙이와 말을 나눈 것뿐인데 그것이 영호의 마음에는 질투와 의심으로 남아 있습니다.

 

p 275 “지가 머를 잘못했습니까.”

역시 대답이 없다. 윤국이 때문에 그런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지만 그러나 숙이로서는 먼저 그 일을 꺼내 말할 수 없었고 변명할 수도 없었다. 그저 막막했다.

잘못한 것이 있이믄 말해주이소.”

순간 영호는 숙의 한 팔을 낚아채어 확 잡아당겼다. 그리고 뺨을 찰싹 때린다.

아이고!”

나가아, 보기 싫다!”

숙이는 허둥지둥 방에서 나간다.

 

자연은, 무엇이든 다른 존재들의 두려움으로 강력해진 존재는 스스로도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도록 정해두었다. -세네카의 화에 대하여 -

 

연약한 여자에게 완력을 행사하고 어린 아이를 함부로 대하는 강력한 존재들, 그들은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어서 그 두려움을 표출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이 드네요. 1930년대 후반으로 가면서 일제가 더 악랄하게 나오는 것도 그들의 끝이 머지않았음을 직감했기에, 그 끝이 두려웠기에 우리 민족을 더 말살하려 했던 게 아닐까 싶어요.

 

4부의 얘기는 세 권으로 끝이 납니다. 다음주는 5, 16권의 시작인데요. 우리의 독립이 머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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