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인문학

토지 16

꿈트리숲 2019. 7. 15. 07:20

나이들어도 다정다감 로맨스는 좋습니다.

 

 

드디어 토지의 마지막 이야기인 5부가 시작되었습니다.

5부는 시간이 쏜살같이 달려 벌써 1940년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가족들을 데리고 간도로 갔던 홍이는 어엿한 중년이 되어 사업을 잘 하고 있구요. 물론 홍이와는 아버지 다른 임이가 홍이 어릴 때 업어 키웠다며 협박 아닌 협박을 해서 돈을 뜯어간다거나 아예 홍이 집에 눌러 붙는 불상사가 생기긴 하지만 일도 가정도 잘 꾸리며 살고 있습니다.

 

명희는 조용하의 정신적 학대를 견디지 못하고 집을 뛰쳐나가 통영의 작은 분교에서 선생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조용하가 자살을 합니다. 자신 폐암이기도 했거니와 돈만 있었지 평생 이렇다하게 잘 산 것 같지 않은 자괴감 때문이었을까요?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조용하의 많은 재산이 법적으로 아직 아내인 명희에게 주어집니다. 명희는 그 돈으로 서울에 유치원을 건립해서 유치원 원장이 되었습니다. 상현을 짝사랑한 것으로부터 시작된 명희의 먹구름 드리워진 인생이 조용하로 인해 극에 달했다가 이제 맑게 갠 것 같아요.

 

상현의 부탁으로 양현을 양육할 생각까지 했었는데요. 서희의 반대로 이뤄질 수 없었죠. 그런 양현은 서희가 금이야 옥이야 잘 키워 서울에서 의대를 다니고 있습니다. 15권에서 길상이 양현을 데리고 상현의 본가를 방문했었어요. 그래서 양현의 존재를 알렸었는데요. 상현은 여전히 집으로 돌아오지 않은 채였고 상현의 부인이 양현을 보고 바로 감을 잡습니다. 16권에 오니 최양현에서 이양현으로 호적이 바뀌었네요. 하지만 아직 서희의 보호아래 생활하고 있습니다.

 

환국이는 동경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 서울에서 미술 선생님을 하고 있어요. 서희의 뜻대로 법을 전공하다 길상의 적극지원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미술 공부로 전향했었어요. 서희가 길상이 감옥에 있는 동안은 남편 없는 아이들이라 더 흠결 없게 키우고 싶어 아이들의 적성과 기호를 접어두고 힘을 가질 수 있는 공부를 강권했었거든요. 의사 되는 공부, 법관이 되는 공부를 두 아들이 해줬으면 했는데, 뜻대로 되지는 않았네요.

 

길상이 감옥에서 나와 서희 옆에서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으니 아이들도 엄마의 지지대를 아빠한테로 넘기고 자신의 갈 길대로 가는 것 같습니다. 그런 환국이 황태수의 막내딸과 결혼하여 벌써 첫째 아들 돌잔치를 합니다. 세월이 빨리 흐르는 감도 있지만 그때만도 아직 조혼 풍습이 있어 결혼을 일찍 하는 편이에요. 물론 환국은 스무살이 넘어 이른 혼기도 아니라고 하는데요. 그래도 마흔여덟에 서희가 할머니가 되다니, 요즘 같아선 벌써? 하고 놀랠일입니다.

 

토지 14권에서 관수 얘기를 잠깐 했었죠. 관수가 독립운동을 하면서 조선 팔도를 다니는 뿐만 아니라 국경도 넘나들고 했었는데요. 이번에도 간도에서 제 몫을 다하는 와중에 그만 호열자로 유명을 달리합니다. 그의 아들 영광은 색스폰 연주자가 되어 아비를 보러 왔는데 가슴에 한만 남기고 아버지 유해를 받아들게 됐습니다. 아비도 아들도 상대에 대한 회한을 가슴에만 묻고 가게 되었어요. 죽은 사람은 말이 없지만 관수는 죽기 전 편지를 남겨 혹시나 모를 아들의 자책감을 덜어주려 마지막까지 확실하게 부모의 역할을 다합니다.

 

p 202 내가 죽으믄 모두 고생만 하다가 갔다 할 기고 특히 영광이 가심에는 못이 박힐 기다. 그러나 나는 안 그리 생각한다. 그라고 후회도 없다. 이만하믄 괜찮기 살았다는 생각이고(중략) 새삼시럽게 지나온 길을 돌아보이 정말 괜찮기 살았구나 싶다.

 

죽는 순간까지 올곧은 부모 노릇을 하고 간 관수입니다. 아버지와 화해하지 못한 영광의 가슴에 한을 남기지 않으려 집 나가 부모님 가슴에 쓰라린 상처를 남긴 자식이 평생 지고 갈 돌덩이를 치우고자 마지막까지 애쓴 흔적이 편지에서 느껴집니다.

 

그런 부모가 있는 반면 조준구 같은 마지막까지 자식의 등골을 휘게 하는 아비도 있어요. 통영에서 소목장(가구 만드는 일)으로 있는 병수를 찾아와 자신의 병든 몸을 돌보게 합니다. 치매에다 거동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는데도 그 괴롭힘이 이루다 말로 할 수가 없어요. 숫제 아들의 살림을 뿌리째 뽑으려 들었다라고 작가는 표현을 했어요. 물리적 정신적 폭력을 가하는 악마라구요. 빨리 죽어야 할텐데... 그런 부모도 부모라고 병수는 정성을 다합니다. 부모라기 보다 마지막 생을 남겨둔 애처로운 인간으로 대하며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다 하는 듯 보입니다. 조준구나 병수의 애미 홍씨 부인 같은 사람들에게서 어찌 병수 같은 아들이 나올 수 있었는지 의아할 뿐이에요.

 

한편 지금까지 오면서 서희와 길상의 다정한 한때를 한 번도 보지 못했는데요. 16권에 와서야 작가는 그 갈증을 조금 아주 조금 해소해줍니다. 그것도 서희를 짝사랑하던 박의사의 자살 소식으로 길상 앞에서 서희가 눈물을 보이는 때에요.

 

p 394 “남편 앞에서 다른 사내 죽음을 슬퍼하며 우는 여자가 세상에 어디 있어! 도대체 당신 나이 지금 몇 살이오?”

(중략)

내가 목석이오? 바지저고리요? 정 그러면 머리 깎고 중이 되리다.”

했으나 그 목소리에는 이미 노여움이 없었다.

패주고 싶었지만.”

“......”

참는 게요.”

 

전 이 때가 결혼을 앞두고 서로의 마음을 저울질 하던 때보다 더 알콩달콩 느껴지네요. 항상 도도해서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던 서희, 우직하게 서희 옆에서 일을 봐주며 감정 표현을 하지 않던 길상이가 처음으로 속 시원히 자신들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이런 장면 하나 없이 토지가 끝났다면 전 아마 서운했을거에요. 주인공들의 로맨스 없는 건 차치하고서라도 오고가는 다정한 대화는 있어야 하지 않나 내심 기대를 했거든요. 이제 그 기대 채웠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17권으로 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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