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움/국내여행

솔거미술관

꿈트리숲 2019. 7. 31. 06:30

불편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제가 3년전 인천으로 이사오면서 한 40년 가까이 산 울산을 처음으로 떠났어요. 여행으로야 울산을 떠나봤지만 거의 울산 토박이, 울산 큰애기로 살았었죠. 울산에 오래 살았기 때문에 울산은 다 안다, 울산과 아래 위로 붙어있는 경주와 부산도 가볼만큼 가봤다 생각하구요.


그래서 지난 3년 동안 명절때나 아이 방학때 내려가면 근교 나들이를 하기보다는 친구들 만나서 수다 떠는 게 일이었습니다. 짧게는 반년 길게는 1년씩 못 본 친구들을 오랜만에 만나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거웠어요. 매번 그런 식으로 보냈더니 뭔가 좀 아쉽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울산도 누군가는 관광지로 여행하는 곳인데 나도 그런 마음으로 둘러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좀 이른 휴가를 가면서 울산 가면 어디를 가볼까 고민하는데 큰시누이가 선택지 3개를 보내주셨어요. 다른 두 곳은 모기 물릴 것 같은 이유로 배제하고 선택한 곳이 솔거미술관입니다. 경주에 숱하게 드나들었지만 처음 들어보는 미술관이에요. 큰시누이 친구분 중 미술전공자가 계신데 그 분이 추천해주신 곳이라고 하더라구요. 생소한 이름이지만 믿고 가 봅니다.

 

 

찾기는 무지 쉽습니다. 경주 엑스포 공원만 가면 되거든요. 요 탑 멀리서도 한눈에 보여요. 우뚝 솟은 면에서 파리에 에펠탑이 있다면 경주엔 황룡사 9층 목탑을 재현한 엑스포 공원 탑이 있어요. 통상적으로 미술관하면 주차장과 바로 인접해 있어서 차에서 내리면 몇 발자국 걷지 않고 건물안으로 들어가게 되죠. 그러나 솔거미술관은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이후에 한참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것도 약간의 언덕길이요.

 

 

 

 

선선했다면 초록 숲길을 걷는 것이 그야말로 신선놀음이었을텐데, 비가 잠시 흩뿌린 오전은 지열로 온몸의 육수를 뽑게하고 습기는 또 얼마나 끈적함을 제공하던지 그야말로 인간 끈끈이가 된 기분이었어요. 실내에 머물걸 괜히 야외로 나왔나 살짝 후회가 밀려 올려는데 주변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서 후회는 저 멀리 날아갔습니다. 솔거미술관은 건물안의 전시 뿐만 아니라 주차장에서 미술관까지 걷는 길이 한몫 단단히 해요. 그 길 자체가 미술관의 일부인 듯싶어요.

 

 

솔거미술관의 시작은 박대성 화백이 그림 기증 의사를 밝히면서 건립 추진이 되었고요. 2015년에 완공되었습니다. 경주에 세워지는 미술관이다 경주, 신라, 그리고 미술관 이 셋을 다 아우르는 의미 있는 이름을 찾았을 것 같아요. 딱 부합하는 이름, 솔거입니다. 솔거는 신라시대 활동했던 화가의 이름이에요.

 

 

 

지금 전시는 특별기획전으로 '전통에 묻다' 가 열리고 있습니다. 박대성, 이왈종, 황창배, 윤광조 작가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어요. 사실 미술에 관심있다 하면서 외국 화가나 한국의 몇몇 화가만 알고 있을 뿐 우리 나라의 화가들 특히나 전통을 이어가는 작가들에겐 그다지 관심이 없었습니다. 솔거미술관 전시가 아니었다면 위의 네 분도 아마 모르고 지나갔을거에요.


 

미술관내 전시실 한켠에는 박대성 작가의 인터뷰 영상이 상영되고 있는데요. 그 영상을 보고서 깜짝 놀랐어요. 저는 그림을 먼저 다 둘러보고 난 다음에 영상을 본 지라 입이 떡 벌어질 수 밖에 없었죠. 왜냐하면 박대성 화가는 6.25 전쟁때 한쪽 팔을 잃었대요. 그때가 4~5세때 쯤입니다. 여러 형제들 중 막내로 자라서 도움을 많이 받았기에 장애의 불편함을 몰랐대요. 학교에 진학하고서 알았다고 하시더라구요. 자신이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요. 친구들은 병신이라고 놀리기도 하구요. 학교 가기 싫어 결석도 하곤 했는데 오로지 미술 시간만큼은 즐거웠다고 하셨어요. 



사회자가 어찌 한쪽 팔 만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느냐? 불편하지 않으시냐 물었더니 박대성 화가가 말합니다. 그 불편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고요. 그 말에 제 머리가 띵 합니다. 장애를 평생의 족쇄로 생각하지 않고 나를 키우는 원동력으로 쓰신 분이구나 싶었어요. 장애는 내가 장애라고 생각하지 않는 이상 나에게 결코 장애물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인터뷰였습니다.


전시관을 둘러보면 박대성 화가의 어마어마한 크기의 그림이 있어요. 한쪽 벽면을 다 차지하는 크기인데요. 그만한 크기의 그림은 보통 사람도 그리기 엄청 어려울 듯 한데, 불편이 키운 작가는 어려움 보다는 그림에 대한 열정이 앞섰기에 완성해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림 앞에 선 남편을 보면 그림이 얼마나 큰지 대충이라도 가늠할 수 있을까요?



 






전시실 한 벽면을 바깥과 소통하게 만들어 두었어요. 통창 앞에서 풍경을 보고 있는 딸의 모습이 한폭의 그림 같습니다.






 다른 작가분들의 작품들도 쉬엄쉬엄 보면서 솔거미술관에서 쉼표 찍기 마무리했습니다. 



혹시 이것도 그림인가요 하시겠죠? 미술관 주위가 온통 자연이다 보니 미술관 밖에서 요런 진귀한 풍경도 볼 수 있었어요. 경주와 미술관이 살아있는 자연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풍경입니다. 더운 여름날 솔거미술관 찾아와주었다고 자연이 주는 선물인가보다 생각해요. 자연이 주는 선물도 받고 뼈때리는 작가의 귀한 말씀도 들을 수 있었던 솔거미술관. 경주에 간다면 다시 한번 가보고 싶은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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