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인문학

토지 20

꿈트리숲 2019. 8. 12. 06:50

토지 마지막 이야기


 

지난 3월에 시작한 토지가 드디어 오늘 막을 내립니다. 거의 5개월 정도 달려왔네요. 처음 토지를 읽기 시작했을 때 마지막 20권은 아득하게 멀게만 느껴졌어요. 과연 완독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매주 한권씩 읽어나가니 끝이 오기는 오는군요.

 

주로 지식도서만을 읽어왔던 터라 소설을 읽는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과 부담감이 살짝 있었는데요.

 

토지여서가 아니라 시대와 함께 숨쉬며 역사를 살아 나온 소설에는 사람을 이해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갖게 합니다. 더군다나 토지에는 교과서에 실리지 않은 일제강점기 시대 '아무개' 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그들의 삶을 더 깊이 이해할 수가 있었습니다. 시대라는 씨줄이 나열되어 있다면 개개인들이 날줄이 되어 촘촘히 천을 짜듯이 이야기를 만들고 사건을 일으키고 거대한 토지를 완성했어요.

 

토지 속에서 살아 숨 쉰 인물들의 마지막 이야기 들어갑니다. 20권에서는 큰 사건이 급진적으로 전개되기 보다는 살아남은 인물들의 과거 회상과 작가의 인물 요약이 좀 나오는 편이었어요. 혹시 앞부분은 건너뛰고 20권을 읽게 될 독자가 있을까 해서 아니면 처음부터 읽어왔더래도 방대한 양이라 그동안의 일들이 좀 희미해질 것을 염려하신 작가님의 배려라 생각합니다.

 

p 137 "앞서간 사람들 생각을 하믄 살아남은 것도 죄가 아니겄나. 하니 제 몫은 하고 가야제."

 

이 부분에서 저는 박경리 작가가 우리들에게 하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앞서간 사람들의 희생으로 우리의 삶이 이어지고 있다 생각하니 내가 숨쉬고 있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만 여겨서는 안되겠다 생각해요. 선조들의 수 많은 목숨값으로, 그들이 몸 바친 이 땅의 토지를 딛고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저 하나의 몫은 하는 것이 그들에 대한 보은이 아닐까 싶어요.

 

p 143 인간을 습성의 동물이라고 한다. 어디 인간만이겠는가. 무릇 모든 생명에는 모두 습성이 있게 마련이다. 제각기 독특한 삶의 방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다만 인간에게는 선악으로 구분 짓고 도덕이라는 균형을 정하는 이성이 있으며 영성에 대한 끝었는 갈증이 있다. 그것이 다른 생명들과 다른 점이다. 그러니 선악의 기준이 없는 다른 생명들은 본성을 감출 필요도, 본성을 간파할 필요도 없다. 있는 그대로, 허위가 없는 것이다.

 

이성으로 선악을 구분 짓고 본성을 감추는 인간의 습성 때문에 역사의 수레바퀴는 계속 굴러갑니다. 자신들의 흉악한 발톱을 감춘채 조선에 접근해왔던 일제가 그들의 습성으로 인하여 서서히 마지막으로 치닫고 있어요. 한밤에 학생들을 동원해 주먹밥을 만들게 한다든지, 저녁이 되면 일제 소등을 해서 전력을 차단한다든지, 자국의 중년이 되어가는 학교 선생까지도 징용으로 차출하는 등 허위를 감추기 위해 드러난 본성을 어떻게든 만회하기 위해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습니다.

 

p 245 '왜놈은 수천 년 역사에서 티끌 하나 우리에게 준 것이 없다. 구걸해 가져가고 도적질해서 우리 것 가져가고, 그들 국가의 기반이 우리 것으로 하여 이룩되었는데 그럼에도 티끌 하나는커녕 고마움의 인사말 한마디 없었다. 은혜를 원수로 갚아 왔다. (중략)

일본이 패전하면 명심하고 또 명심할 일은 코딱지 하나도 그들에게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 두 번 다시 재앙을 겪지 않기 위하여. (중략) 아버지! 힘내십시오. 이 민족은 결코 죽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다 만날 것입니다.'

 

아직 감옥에 있는 길상을 생각하며 마음속 응어리를 토해내는 환국이의 독백이에요. 요즘 우리와 일본 관계를 적시한 듯이 토지의 문구가 딱딱 맞아떨어집니다. 고대 역사부터 살펴보자면 분명 일본의 기반 형성에 한반도가 미친 영향은 지대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은혜를 입지 못했죠. 사실 은혜를 바라지도 않았지만 원수로 갚을 줄이야 꿈엔들 생각했겠어요. 이 민족은 결코 죽지 않을 것이라는 문구가 왜 이리 콕 박히는지요.

 

p 415 "어머니!"

양현은 입술을 떨었다. 몸도 떨었다. 말이 쉬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어머니! 이, 이 일본이 항복을 했다 합니다!"

"뭐라 했는냐?"

"일본이, 일본이 말예요, 항복을, 천황이 방송을 했다 합니다."

"정말이냐....."

그 순간 서희는 자신을 휘감은 쇠사슬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

(중략)

"만세! 우리나라 만세! 아아 독립 만세! 사람들아! 만세다!"

 

누구를 위해 독립운동을 하냐는 최치수의 물음에 이동진은 산천을 위해서라고 답했어요. 일제에 의해 짓밟힌 산천초목들도 다 알아듣게 만세를 외칩니다. 광복이후 굴곡진 현대사에게도 만세를 외치고 싶습니다. 진정한 독립을 하자는 뜻에서요. 몸은 독립이 되었으나 아직 마음까지 온전히 독립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고하고 싶습니다. 이 민족은 결코 죽지 않을 것이라고요.

 

그동안 토지를 함께 읽어주신 오선희 선배님, 이영희 선배님, 허은하 선배님 감사합니다.

토지 후기를 읽어 주시고 정성스런 댓글을 써주신 많은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그 응원 덕분에 끝까지 힘들이지 않고 완독할 수 있었어요. 혹시나 토지 읽기를 주저하신다면 꼭 한번 읽어 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어요.

 

광야의 너른 들판과도 같은 토지의 문장들에서 보석같은 글귀를 만날 때의 기쁨, 목마른 대지에 단비를 내리는 것 같은 이야기들을 만나는 특권을 누려보시면 좋겠어요. 무엇보다 600여 명이 넘는 등장인물들이 전하는 그들의 삶에서 오늘을 사는 힘을 얻고 내일을 준비하는 태도를 배울 수 있는 토지입니다. 시대와 삶을 다 아우르는 박경리 작가의 필력에 다시 한번 위대함을 느낍니다. 토지의 감동을 고스란히 전하고 싶지만 어줍짢은 글 솜씨에 무리수를 던지는 우는 범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꿈트리의 토지 대장정, 이제 막을 내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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