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책

아몬드

꿈트리숲 2019. 8. 16. 06:52

평범하다는 건 사실 가장 이루기 어려운 가치

 

 

결혼하고 2년 만에 저에게 새 생명이 찾아왔습니다. 너무나 기쁜 마음에 매일 기도를 했어요. ‘건강하게만 태어나다오, 손가락 열 개, 발가락 열 개, 정상으로만 태어나다오, 똑똑하지 않아도 평범하게만 태어나다오하는 기도를요.

 

그러다 출산 임박해서는 그냥 무사히 내 곁에 오기만 하면 된다. 엄마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게, 너와 내가 함께 애쓰는 탄생의 순간을 서로 잘 견디자, 난 있는 그대로 너를 사랑할게의 기도로 바뀌었습니다. 태어난 아기는 정말 평범하게 쭈글쭈글 손가락 열 개, 발가락 열 개 다 정상인 채로 저에게 왔어요.

 

있는 그대로를 사랑한다, 평범하게 태어나달라고 기도했던 게 무색하게 자라면서 점점 저는 욕심의 기대를 덧입히기 시작했습니다. 키가 더 컸으면, 잘 먹었으면, 잘 잤으면, 한글을 빨리 깨쳤으면 하는 욕심이요. 그게 평범한 것이라 생각했거든요. 아이의 감정은 고려하지 않은 채 그저 남들에게 시선을 주면서 내 안의 커트라인을 자꾸 올리고 있었어요. 그러니 저에게 육아란 넘기 힘든 허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p 81 평범하다는 건 사실 가장 이루기 어려운 가치란다.

 

평범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아니 아예 불가능함을 살면서 하나하나 알아가요. 인간은 누구하나 같은 사람이 없어요. 쌍둥이 조차도요. 날 때부터 가지고 온 자신만의 심성으로 자신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살아가는데 어찌 남들과 똑같게 살아갈 수있다 생각했을까요? 평범이라는 기준은 내가 아닌 그 누군가가 그어놓은 커트라인입니다. 평범이라 하면서 실은 그 커트라인은 대체로 높은 수준을 요구하지요. 그러니 육아도 결혼생활도 나 자신의 꿈도 계속 높아지는 허들 앞에서 쉬이 포기하게 되는가 봐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는 아이는 그 아이도 가족도 행복과는 거리가 멀 거라 생각했어요. 삶이 치료받는 것으로 점철되고 슬픔과 자책이 일상이 되어 평범한 가정과는 다르다 여겼는데요. 아이가 재밌게 봤다고 1년 넘게 권했던 책 <아몬드>에서 제가 잘못 생각하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평범한 것이 과연 무엇인가? 공감이라고 표현하는 내 말은 과연 진짜 공감이었던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p 27 누구나 머릿속에 아몬드를 두 개 가지고 있다. 그것은 귀 뒤쪽에서 머리로 올라가는 깊숙한 어디께, 단단하게 박혀 있다. 크기도 생긴 것도 딱 아몬드 같다. 복숭아씨를 닮았다고 해서 아미그달라라든지 편도체라고 부르기도 한다.

(중략)

의사들이 내게 내린 진단은 감정 표현 불능증, 다른 말로는 알렉시티미아였다. 증상이 너무 깊은 데다 나이가 너무 어려 아스퍼거 증후군으로 볼 수 없었고, 다른 발달 사항들에 문제가 없어 자폐 소견도 없었다.

 

열여섯 윤재는 남들보다 작은 편도체를 갖고 태어났어요. 그런 이유에서인지 감정 표현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어려움이라 생각하는 것도 윤재 자신이 그러한 것이 아니라 지켜보는 엄마, 친구들,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그런 것이죠. 남들의 시선이 어떠하든 간에 윤재는 할머니와 엄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는데요. 열여섯 생일인 크리스마스이브 날 비극적인 사건으로 할머니를 잃고 엄마는 식물인간이 됩니다.

비극적인 사건 앞에서도 윤재는 공포와 분노, 슬픔을 느끼지 못하고 그저 담담합니다. 그래서 괴물이라고 불리는 건지도 모르죠.

 

p 217 너무 멀리 있는 불행은 내 불행이 아니라고, 엄마는 그렇게 말했었다.

 

편도체가 작다는 것이 내 불행조차도 너무 멀리 있는 것 같은 마치 남의 불행처럼 느끼게 만드나 봅니다. 윤재는 자신 앞의 불행이 너무 멀리 있는 불행이라 생각했을까요? 표현에 어려움을 겪는 것뿐이지 결코 불행에 공감하지 못한 건 아닐 것이라 생각해요.

 

편도체의 비정상 때문에 윤재는 그렇다치고 지극히 평범한 정상인 나는? 우리는?’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듭니다. 우리는 평범하게 태어나고 기쁨도 슬픔도 공포와 분노도 다 잘 표현하는데, 왜 남의 불행에 공감하지 못하고 눈감고 귀 막아버릴까 싶었습니다. 일일이 하나하나 다 공감하고 신경 쓰면 피곤하다고 엄살 피우는 건 아닐까요? 같은 평범한 사람인데 가끔씩 위대한 인류애를 보여주시는 분들을 보면 나와는 다른 종이다 여기며 깊이 고민해보지 않으려 합니다. 그는 감정 표현을 담당하는 아몬드가 호두만한가 보다 하고요.

 

윤재 앞에 분노와 공포를 잘 표현하는 곤이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기쁨과 설렘 심지어 사랑을 알게 해 줄 도라도 등장해요. 그 친구들과 함께하면서 윤재는 머리가 가슴을 지배한다는 평범한 이론을 조금씩 바꿔갑니다.

 

애초에 윤재는 아몬드의 크기 때문에 머리가 가슴을 지배할 수 없는 아이였는데요. 어두운 상처를 가진 곤이와 맑고 밝은 도라 속에서 평범한 아이들이 느끼는 것처럼 우정도 사랑도 알아갑니다. 엄마가 말로 글로 수없이 가르쳐줘도 잘 안되었던 그 공감을 하기 시작한거죠. 엄마와 할머니가 쏟아부은 무조건적인 사랑의 토대 위에 친구와 나누는 우정과 신뢰가 자라나서 윤재의 편도체에 노크를 했던 것 같아요. 굳게 잠겨있던 편도체가 비로소 문을 열고 문 앞에 성큼 다가온 감정을 내다보기 시작했어요.

 

작가는 이런 말을 했어요.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도, 괴물로 만드는 것도 사랑이라고 생각한다고요. 평범함이 과연 존재할까 싶지만 그럼에도 그 비슷한 무언가에 가까워지게 하는 건 사랑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인간을 인간답게, 괴물도 사람으로 만드는 건 머리가 아니라 마음속에 든 사랑, 바로 그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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