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책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꿈트리숲 2019. 8. 19. 07:24

혼자 할 때는 기억, 둘이 할 때는 추억

 

 

제가 학창시절 때 부러워했던 친구들이 있었어요. 언니나 여동생 있는 친구들입니다. 매일 하교 후에 집에 가서 수다를 떨 상대가 엄마 외에 또 있다는 것이 좋아보였어요. 엄마는 똘기로 뭉친 저의 행동들을 마냥 지지해주기는 어려웠을거에요. 부모로서 자식이 잘못되는 걸 바로잡아줘야 한다는 의무감이 크셨을테니까.

 

저와 같은 눈높이에서 들어주고 이해해주는 동성의 누군가가 있다는 건 큰 장점이라 싶은데요. 친구들은 '언니는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해서 불만이야, 혹은 동생은 내가 양보 많이 해줘야 해서 불만이야' 같은 볼멘 소리를 하더라구요. 제가 보기에는 그저 다 용납할 수 있는 일들이었는데도 말이죠. 그런 불만 조차 저에겐 다 부러운 모습이었습니다.

 

p 241 워너원의 노래 <갖고 싶어>에는 매일 하루의 끝에 시답지 않은 얘길 하고 싶은데하는 가사가 나온다. 누구나 반드시 필요한 이야기만 나누는 사이가 아니라 쓸모없고 시시한 말로 서로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를 한 사람쯤은 갖고 싶은 것이다.

 

제가 딱 이 마음이었어요. 어른이라는 무게 때문에 근엄하고 엄격한 엄마 말고 쓸모없는 시시한 얘기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나눌 수 있는 상대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요. 그 바람은 꿈으로 끝나고 말았네요.

 

여자끼리 사는 로망 이뤄보지 못하고 결혼해서 딸과 그런 관계가 되어보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최대한 친구처럼 편하게 지내고 싶어 저의 높이를 낮추려고 하는데요. 그래도 엄마라는 정체성은 어쩔 수 없는가 봅니다. 2년 전 조카와 잠시 같이 살 때 딸은 언니랑 같이 지내게 됐다고 얼마나 좋아했는지 몰라요. 밤늦게 수다 떨고, 언니랑 둘이서 꽁냥꽁냥 노는데 저와는 다른 케미를 보여주더라구요. 아무리 엄마가 좋아도 언니와는 다르구나 느꼈습니다. 그렇다면 친구라는 존재는 정말 정말 더 시시한 본격 수다가 펼쳐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는 서점에서 눈 도장만 찍어뒀던 책인데요. 책 소개 방송을 보고 딸이 보고 싶다 해서 빌려봤어요. 읽다 보니 작가가 아는 분이더라구요. 물론 개인적 친분이 있는 사람은 아니고요. 예스24에서 매월 발행하는 책 잡지 <월간 채널 예스>에 책 팟캐스트가 소개되는데요. ‘책읽아웃진행자인 김하나 작가가 이 책의 공저자 중 한명입니다.

이럴 땐 마치 6.25 때 잃어버린 가족이라도 만난 양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더군다나 김하나 작가의 스타일이 저랑 비슷해서 더 반가워요. 미니멀리스트더라구요. 폭풍 공감 하며 읽어나갔지요.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는 마흔 넘은 비혼의 여자 두 명이서 합쳐 살게 된 이유와 같이 살면서 겪는 소소한 에피소드들을 재밌게 때로는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책입니다. 마치 '이거 실화냐?' 할 정도. 여자 둘이로망을 실현해보지 못했기에 대리만족하며 봤어요.

 

두 사람은 서로 비슷한 점이 너무 많아서 끌렸고 또 더 이상은 이사를 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좀 더 큰 집에서 살고 싶다는 욕구가 맞아떨어져서 한집에서 살게 되었는데요. 비슷한 점이 많다 느꼈던 두 사람은 달라도 너무 다름을 느끼고 초반 2년은 소리 지르고 울고 자주 싸웠대요.

 

친구로 만날 때는 제일 사소한 일상 생활 영역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법이죠. 설령 보였다고 하더라도 친구니까 이해하고 받아주고 넘어갑니다. 그러나 한집에서 같은 공간을 공유하며 사는 동거인이 되면 이야기는 달라지지요. 다름은 어떻게든 같음으로 변화시켜야만 살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여자 두명은 다름을 인정하느라 치열하게 싸우는 시간이 필요했는가 봅니다. 현명하게도 다름을 같음으로 바꾸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였어요. 그러면서 서로에게 조금씩 동화되어가고요.

 

p 36 비슷한 점이 사람을 서로 끌어당긴다면, 다른 점은 둘 사이의 빈 곳을 채워준다. 나와 똑같은 사람이 존재한다면 과연 함께 살기 좋은 대상이었을까? 아마 가슴속 깊이 이해하면서 진절머리를 내고 도망쳤을 것 같다.

 

나와 똑같은 사람이라고 하면 재미없었을걸요? 나와 다르기에 호감도 생기고 관심이 가는거죠. 비슷한 점으로 서로를 끌어당겼다면 둘 사이의 다른 점으로 꼼꼼하게 접착제를 발라줘야해요. 미니멀리스트 김하나 작가는 호더라고 평가내렸던 황선우 작가의 투머치 옷들을 각 잡아서 정리를 해주고요. 우렁각시처럼 음식을 뚝딱 잘 차려내는 황선우 작가는 요리는 못하지만 먹을 복 많은 김하나 작가를 위해 한식, 양식 가릴 것 없이 만들어 줍니다.

 

둘 사이의 빈 곳을 두 사람의 다름으로 채워가니 이야기는 얼마나 풍성해질 것이며 추억은 또 얼마나 풍요로워 질까요.

혼자가 편했던 사람이 둘이 함께 살아보고 내린 결론이 그겁니다. ‘혼자 하는 모든 일은 기억이지만, 같이 할 때는 추억이 된다’고 황선우 작가가 얘기했는데요.  혼자력 만렙을 찍어보고 한 이야기이기에 폭풍 공감되는 말입니다.

 

p 35 자신과 다르다 해서 이상하게 바라보거나 평가 내리지 않는 건 공존의 첫 단계다.

p 119 “둘만 같이 살아도 단체 생활이다.” 동거인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은 서로 라이프 스타일이 맞느냐 안 맞느냐보다, 공동 생활을 위해 노력할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렸을 것 같다.

 

여자 둘이에게만 적용되는 말은 아니라 생각해요. 부부 사이에서도 자녀와의 사이에서도 우리는 그들과 동거인 관계지요. 공존의 첫 단계, 다름을 인정하는 단추를 잘 끼우고 공동 생활을 위해 노력할 마음을 내는 것으로 단체생활을 잘해나가야겠다 생각합니다.

여자 둘이 사는 이야기에서 저의 동거인들과 함께 하는 단체 생활에 대한 힌트와 꿀팁을 얻었어요. 재미와 의미 두 마리 토끼 다 잡은 책을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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