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엄마와 딸

흑역사를 통해 배우는 육아

꿈트리숲 2019. 8. 23. 07:01

역사를 배우는 이유-역사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함이다

 

 

지난주 토요일 딸아이의 연주회가 있었습니다. 독주회가 아니고 오케스트라에서 하는 정기연주회였어요. 7월부터 청소년 오케스트라에 들어가서 매주 토요일 두 시간씩 연습하고 연주를 앞두고는 매일 하다시피 했죠. 홀로 뽐내는 자리가 아니라 모두 함께 같은 소리를 내는 것이기에 자기 소리를 낮추고 상대 소리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하는 합주. 멋지게 연주를 마친 아이 얼굴에 뿌듯함과 행복감이 가득 차 보였습니다.

 

 

그 얼굴을 보니 예전의 제가 문득 생각났어요. 제가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많이 욕심냈던 것이 바이올린이었고 그랬기에 가장 뼈저리는 좌절을 맛본 것 또한 바이올린이었습니다. 예전 글에서 저의 대표적 머절맘 시기가 바로 아이 바이올린 배울 때였다고 잠깐 언급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생각하면 아이가 다시는 바이올린을 잡지 않을 것 같았는데요. 다행히도 청소년 교향악단에서 연주를 하는 날이 오네요.

 

혹시나 아직 어린아이를 키우고 계신 부모님들이 이 글을 읽으신다면 저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 저의 흑역사를 살짝 공개합니다.

 

아이 태어나기 전에 저희 부부는 사교육을 일절 하지 않기로 약속했어요. 그런데 돌 지나고 나서 제가 팔랑귀라는 소문이 났는지 여기저기서 이거하자 저거해야 된다는 마수의 손길들이 뻗쳐 오는 겁니다. 그래서 두 돌 전에 집으로 선생님이 오셔서 아이와 10여 분 놀아주는 수업이 시작됐고요. 문화센터도 기웃하게 되고 서너 개의 수업들을 하게 되었죠. 책 읽기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저는 밖으로 나다니면서 독서 시간이 현저하게 줄어들어 어느 날 모든 걸 중단했습니다. 또 그 시기에 저는 심각한 환자였기에 외출조차도 힘에 부쳤었어요.

 

 

집에서 책만 읽어주다 아이를 너무 방치하는가 싶어 6세때 피아노 레슨을 그것도 일주일에 한번 하는 수업을 시작했어요. 선생님께 신신당부 했습니다. 진도 상관없어요, 그냥 음악을 즐길 수 있게 재밌게 수업해주세요 하고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피아노 선생님의 전공이 비올라였는데요. 그래서 자연스레 딸에게 바이올린을 권해주셨구요.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라고 바이올린을 사줬는데 아이는 곧잘 켜더라구요. 일곱 살 때 바이올린 레슨을 시작했습니다.

 

레슨 선생님은 으레 하시는 말씀인지, 아님 아이가 진짜 조금의 재능이라도 있었던 건지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어도 좋겠다고 하셨어요. 그 말은 저에게 아이 적성은 바이올린이야. 그러니 지금부터 빡세게 해보자라는 신호를 주었던 거에요.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나요, 아니요 무식한건 정말 무서운거더라구요. 그때부터 아이가 아이로 보이지 않고 제 꿈을 실현시켜 줄 대리인으로 보였던 겁니다. 저의 꿈은 바이올리니스트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요.

 

 

뭔가 자기 이름을 내걸고 당당한 여성으로 살기를 바라는 꿈, 그 꿈에 바이올린이 도구로 들어오게 된 거였죠. 매일 연습을 시키느라 진땀 빼고, 볼 줄 모르는 악보를 가지고 음이 높네 낮네 잔소리 해가며 일곱 살 아이를 닦달했습니다.

 

전 자기주도 학습을 철저히 신봉하는 사람이었던지라 왜 아이가 자기주도 연습이 안되는가를 일곱 살에게 매일 물었어요. 바이올린이 그저 좋아서 호기심을 잠깐 보인건데 엄마가 전공을 시키자고 덤벼드니 아이는 질려버린거죠. 자신이 원할 때 본인이 바이올린 켜고 싶을 때를 기다려줘야 하는데, 저는 전혀 그러질 못했습니다.

 

그리고 연주회를 위해 한 곡만을 며칠 몇주간 연습하는 것이 아이에게는 지루했었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저는 완벽을 추구하느라 연습시키고 또 시키고. 스스로 하지 않을 때는 바이올린이 꼴보기 싫어 차 트렁크에 숨겨두기도 했었어요. 이때 저도 아이도 참 많이 울었었네요. 아이는 엄마가 무섭고 싫어서, 저는 육아가 너무 힘들어서, 또 아이에게 미안해서 울고요. (미니멀리스트인 제가 보관하고 있는 울면서 쓴 편지들입니다ㅠㅠ)

 

 

 

 

 

그런 우여곡절을 겪고서도 아이는 독주 무대도 몇 번 서고, 합주도 여러 번 하고요. 여덟살 때 오케스트라 연주회도 했었죠. 그때는 온 가족이 총 출동하여 축하를 했었는데요. 미래의 바이올리니스트라며 추켜세웠고, 또 아이가 계속 바이올린의 길을 갈 것이라 믿었어요. 어느 날 아이의 바이올린 중단 선언.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지금 그만두면 다시는 바이올린 못할 것 같고, 계속 하자니 마귀로 변하는 제 자신이 싫고. 정작 바이올린 하지도 않는 제 마음이 어지러웠어요.

 

아이도 많이 참았을겁니다. 바이올린을 켜면 엄마 아빠가 저렇게 좋아하는데 내가 어찌 그만둔다고 말할까하고 많이 망설였을거에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아이의 그 선언이 반가웠습니다. 연습의 감옥에서 해방되는 기분이었거든요. 또 조금 남아있는 그나마 좋은 성질 지킬 수 있겠다 싶어서요. 그간에 배운거 너무 아깝다고 선생님이 만류하셔도 전 괜찮았습니다. 아이의 적성이, 아이의 꿈이 바이올린이 아니라면 지금까지 맛본 것으로 충분하다 생각했죠.

 

아홉 살 즈음 바이올린 그만두고 아이는 여러 예체능을 체험? 했었어요. 그것이 가능했던건 학교 다니는 것 외에는 학원, 학습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발레, 수영, 피겨, 클라이밍, 리듬체조, 피아노, 플롯 등 나열하기도 벅찬데요. 호기심 생기는 것에 일단 도전해보면서 아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뭔지 찾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바이올린으로 마음이 다시 돌아온 것인지 작년에 바이올린 다시 하겠다 하더라구요. 예전의 바이올린 배울 때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제가 바이올린에 일절 관여를 안한다는거죠. 연습을하면 하는가보다, 안 하면 저도 잊어버리고요.

 

엄마의 잔소리가 전혀 없어서 일까요? 바이올린이 재밌다고 그러네요. 오케스트라에서 함께 연주하는 것도 너무 좋아서 매주 토요일이 기다려진다고 합니다. 전 아이 어릴 때 그 난리를 쳐서 아이가 다시는 바이올린을 안잡을 줄 알았거든요. 그 난리통 속에서도 아이는 바이올린의 좋은 추억, 행복했던 기억을 간직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기에 그 기억을 다시 소환해서 오늘의 행복을 또 하나 추가하는가 봅니다.

 

 

도치맘의 눈에는 아이의 모든 게 천재 같고 경이롭고 그렇습니다. 유튜브로 음악을 들으면서 악보도 없이 즉석 연주하고, 영화를 보고 오면 그 음악을 기억해내서 연주하는 것이 저는 놀랍기만 한데요. 이제는 압니다. 제가 앞서 나가면 안 된다는 것을요. 그저 아이가 재밌어서 그러는구나, 호기심이 일어 그러는구나 하고 제 마음을 다잡습니다. 엄마는 뒤에서 물개박수와 고래함성, 그리고 쌍엄지 척 그것만 합니다.

 

 

만고불변의 진리, 재밌는 건 뜯어말려도 덤비고, 재미없는 건 떠다밀어도 뒷걸음질 친다는 걸 머절맘은 흑역사를 통해 배웠습니다.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역사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함이라고 유발 하라리가 그랬어요. 그 역사는 제국에만 해당되지 않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위대한 역사에도 꼭 맞는 말이지요. 이 글을 읽으시는 부모님들, 우리 흑역사는 쓰지 말도록 해요.

 

이날 공연에 와주신 모든 분들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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