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책

칼리의 프랑스 학교 이야기

꿈트리숲 2019. 9. 3. 06:58

자유와 자율이 자연스러우려면

 

 

제가 얼마 전 목수정 작가의 강의 후기를 올리고 나서 아주 흥미로운 경험을 했습니다. 댓글창이 전에 없이 활발하게 작동한거에요. 댓글을 심도 있게 써주셔서 읽는 저도 생각을 많이 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죠. 글 쓰는 공간이 개인의 영역이라면 댓글 공간은 공통의 영역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비방이나 욕설 음해, 광고가 아닌 다음에는 각자의 생각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 생각하거든요. 그런면에서 그날 댓글 창은 제 역할을 충분히 했다 여겨요.

 

목수정 작가 강의를 들을 때 제 바로 앞에 작가의 딸인 칼리가 앉아 있었어요. 그림을 그리면서 엄마의 강의를 듣고 있었죠. 2005년도 생인 칼리는 저의 딸과도 나이가 같아요. 그래서인지 프랑스 교육에 관한 얘기를 들을 땐 귀가 쫑긋해졌는데요. 작가의 최근 책 <칼리의 프랑스 학교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갔습니다.

 

댓글에 써주신 내용들을 더 알고 싶어서 제 딸 또래의 여중생들이 다니는 학교가 우리와 얼마나 다른지 궁금해서 책을 펼쳤습니다. 그런데 출산 정책 이야기가 앞부분에 나와서 학교 이야기 아니었어? 하고 의구심이 들었어요. 그래서 제 딸은 앞부분 보다가 재미없다며 덮기도 했는데요.

 

작가의 의도는 프랑스에서 크는 아이들의 시작인 결혼과 출산부터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 뒤를 이어 보육시설, 유치원, 초등, 중등 교육에 대한 얘기가 나오거든요. 저도 출산 유경험자로서 남의 나라 출산 이야기 호기심이 생기는 건 당연하겠죠.

 

2018 대한민국 통계자료를 보면 가임 여성 한 명당 합계출산율이 0.98명이에요. 역대 최저치이자 출산율이 1명 미만대로 처음 진입한 큰 이슈가 아닐 수 없어요. 그것에 비하면 프랑스는 출산 대국으로 불릴 만큼 출산율이 높습니다. 2015년 이후 지속적으로 2.00명을 넘는 출산율을 유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세계적인 저출산 시대를 고려해보면 다분히 이유 있는 출산율 증가라고 할 수 있어요.

 

p 35 결론부터 말하자면 프랑스의 출산율 증가는 출산율 증가라는 목표를 향한 국가적인 노력으로 얻어낸 성과가 아니다. 출산의 주체인 여성이 기꺼이 아이를 낳아 기르고 싶은 방향으로 사회가 진화해온 결과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가 기록적인 저출산 국가의 반열에 오른 것은 사회적 모순들이 해결되지 않고 계속 축적되어 더이상 여성들이 아이를 낳아 기르고 싶지 않은 사회가 되어버린 탓이다.

 

농경사회에서는 결혼과 출산 육아가 다 개인의 몫이었는데요. 또 일손이 많이 필요했기에 자식을 많이 출산했었죠. 다 같이 키우는 공동육아도 엄마의 부담을 많이 덜어줬었구요. 그런 사회에서 급속도로 산업화 개인화가 되면서 이제 육아를 국가가 책임져야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출산의 문제도 국가가 캠페인을 벌일 만큼 개인의 손에서 떠난 듯한 느낌을 주는데요. 아직 우리 사회의 시스템은 사람들의 인식과는 온도차가 있는 것 같아요.

 

인구 감소를 위해선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 하다가 이제는 하나라도 제발 낳자는 표어가 등장할 상황이에요. 많은 복지가 국가 주도로 시행이 되고 있는데 출산율은 왜 계속 뚝뚝 떨어지는지 그 의문이 프랑스 환경을 보면서 이해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출산조차도 정책으로 다루려고 하면서 그 과정에서 여성을 배제하는 분위기입니다. 프랑스는 출산의 주체인 여성의 이야기를 기꺼이 듣는 것 같은 인상이에요.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프랑스의 기혼 여성은 남편의 동의를 얻어야만 직업을 가질 수 있었다고 하는데요. 선진국이라 생각했던 프랑스가 그렇게 보수적이었나 싶을 정도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어요. 그런 프랑스가 1975년에 낙태가 합법화되고 1982년에는 낙태가 의료보험의 적용을 받는 시술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 일련의 일들은 당시 여성들에게 자신의 신체에 대한 결정권을 부여했다고 작가는 말합니다.

 

낙태 찬반이 뜨거운 대한민국에서 윤리와 정책을 얘기하는 사람은 많지만 여성의 자기 결정권, 여성의 인권을 얘기하는 목소리는 들을 수가 없네요.

 

p 230 이들은 아이들에게 자유를 허락하는 대신 자율을 요구한다. 너의 인생은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닌 너의 것이다. 그러니 스스로 선택하되, 그 선택에 책임을 져라.

 

저 말 뒤에 너의 선택에 책임질 때 국가가 적극 나서서 돕겠다는 말이 생략되어 있다 생각합니다.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사람이 많아지면 자유와 자율이 어우러지는 사회에 가까이 가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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