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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천천히 아빠가 되었다

꿈트리숲 2019. 9. 5. 06:44

남자는 그렇게 아빠로 진화해간다

 

제가 아이 낳고 이제껏 읽은 육아서들 중에서 아빠가 쓴 육아서는 푸름이 아빠와 서천석 선생님의 육아서가 전부인데요. 그만큼 육아에는 엄마가 많은 부분을 차지합니다. 아이에게는 아빠가 차지하는 부분도 절반인데 엄마인 우리는 조금 간과하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해요.

 

오늘 소개해드릴 책이 아빠의 육아서입니다. 아빠의 역할이 아이를 키우는데 있어 왜 중요한지 너무나 잘 느끼게 해주는 책이었습니다. 일일이 육아의 고비마다 어떻게 하라는 방법적인 설명이 있어서가 아니라 아빠는 어떤 마음으로 아이를 기다려주고 믿어줘야 하는지 말해주는 책이어서 그렇습니다.

 

책표지에 아빠의 방목 철학이라고 씌어져 있는데요. ‘방목이거 해보니 진짜 어렵더라구요. 차라리 속 시원히 간섭하는 것이 낫지 말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철학을 가지지 않고서는 방목을 쉽게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p 55 방목은 무관심이나 무절제가 아니다. 오히려 드러나지 않게 아이들의 본성과 독특함을 최대한 보장하고 유지해주려는 세심한 배려다.

 

방목은 풀밭에 던져놓고 너 알아서 커라고 하는 무관심이 절대 아니라는 것을 저도 아이 키우면서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24시간 아이 옆에 찰싹 붙는 경호 육아나 웹캠 설치하는 관찰 육아는 더더욱 아니겠고요. 부모의 역할은 아이가 너르게 뛰어다닐 수 있는 보일 듯 말 듯한 울타리를 쳐놓고 자유를 주는 것이라 생각해요.

 

아이가 크면 그 울타리도 계속 커져야 하는데요. 부모는 세심하게 관찰해서 언제 울타리를 넓혀야 할지 알아채는 촉이 있어야 된다 싶어요. 나이에 맞지 않게 울타리가 너무 넓어 아이가 부모 찾느라 불안에 떨게 한다든지 안전에 취약하면 안 될 것이고요. 또 아이는 성장하는데 울타리는 아기 때 크기 그대로이면 곤란하겠죠.

 

그 촉이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음을 경험한 저로서는 이 책의 저자분과 같이 좌충우돌 겪어가며 어렴풋이 감을 잡아가고 있습니다. 아이의 타고난 본성과 특성을 보장하고 유지해주는 배려. 이 말씀에 폭풍 공감을 하면서요.

 

<나는 천천히 아빠가 되었다>의 저자 이규천님은 두 딸의 아버지이신데요. 두 딸은 아마 얼굴을 아는 분들도 계실거에요. 언니 이소연씨는 줄리어드 음대를 졸업하고 미국 대학에서 종신교수로 재직중인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이고요. 동생 이소은씨는 현재 국제변호사로 활동중인데, 학창시절 가수로 활동했습니다.

 

멋진 직업을 가진 딸들을 두어서 대단한 아빠가 아니라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면서 행복을 느끼는 딸이 되기까지 아빠의 눈물겨운 노력이 있었기에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두 딸의 아빠는 유신 시절 한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다 파면을 당했어요. 총장에게 잘 보이려 아부를 안했기 때문이지요. 납치 감금도 당하고 소방 호스로 물세례도 받고요. 사표를 내고 나가면 다른 데 취직하는데 무리 없을 거라는 유혹에도 굴하지 않고 권력에 아부하는 무리에 맞섰다고 합니다. 그 결과 파면교수가 되었고, 후에 대법원 판결까지 가면서 파면 무효를 끌어냈다고 하시더라구요.

 

저자는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때론 하면 고통이 따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안 하면 더 고통스러워서 가는 길도 있다. 나는 고통스러울 것을 알면서도 더 큰 고통을 피하기 위해 파면교수가 됐다.

 

권력에 맞서는 것이 개인의 성정일 수도 있겠지만 딸들의 아빠로서 지금 당장의 안위만 따졌다면 후에 닥칠 더 큰 고통, 딸들에게 떳떳하지 못한 아빠가 된다는 자괴감이 더 큰 고통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봅니다.

 

그때 가서 다 너희들을 위해서 그랬다고 하면 아이들은 아빠를 이해할까요? 오히려 올바르게 행동한 아빠를 더 지지하고 응원하지 않을까요? 아이들은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는 말 이제 하도 많이 들어서 귀가 따가울 지경인데요. 귀가 따갑다고 느낀다면 아마 아직 행동으로 아이에게 본을 보이지 않고 말로써 아이를 이끌려하는 중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규천님은 고통이 따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소신을 지키신 분이었어요. 올바르게 자랄 딸들의 먼 미래를 그리면서요. 자신에 대한 믿음이 단단해짐과 동시에 딸들에 대한 믿음도 더 굳건하게 하신 분입니다.

 

p 86 여성의 분위기에 젬병인 나는 딸들이 성장하면서 함께 성숙해갔다. 딸들은 이름처럼 나를 아빠라고 불렀고 나는 아빠가 되었다. 한번 아버지가 되고 나니 그 이전의 나와는 절대로 똑같을 수 없었다. 내 안의 변화는 한동안 감지하지도 못한 채 서서히 진행되었다.

 

진화는 절대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뜻이라고 하지요. 천천히 성장하며 성숙해진 아빠는 남자에서 아빠로 그렇게 진화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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