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책

밥보다 일기

꿈트리숲 2019. 9. 11. 07:12

책밥에 이어 글밥

 

 

제가 어릴 때는 일기를 써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랐어요. 물론 학교 선생님께서 일기를 검사하기도 하셨지만 저의 아버지로부터 더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개인의 역사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요. 학교에서 선생님이 검사하는 것도 그래서 울며겨자 먹기로 쓰는 것도 싫은데, 집에서 부모님까지 매일 썼는지 체크를 하시니 참 고역이다 생각했어요.

 

초등 이후에는 자발적으로 일기를 썼던 것 같은데요. 고등학교 때까지 일기를 썼고 그 일기장들이 아직 친정에 보관되어 있어요. 예전엔 가끔씩 들추어보기도 했는데, 아이 낳고 기르는 동안 기억 속에서 잊혀져 있었어요. 일기는 그냥 일기였던가보다 하고 있는데, 글쓰기를 잘하려면 매일 일기를 써야 한다는 서민 교수님의 책을 읽으니 일기가 그렇게 좋은 거였나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

 

제가 부족한 글이라도 매일 주저리주저리 쓸 수 있는 것이 그나마 일기 덕분이었던 것 같기도 해요. 글쓰기를 배운 적도 없고 그렇다고 타고난 이야기꾼도 아닌 제가 글을 쓰고 있으니까요.

 

저자는 확실하게 말합니다. 글은 배운다고 되는 게 아니라 매일 조금씩써야 는다라고요. 요즘 글쓰기 강좌가 아주 많은 것 같아요. 저도 오프라인으로 하는 글쓰기 강좌를 듣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요. 때가 되고 시간 여유가 생기면 도전해볼 생각입니다.

 

그런데 글쓰기 강좌를 100번 듣는다고 해도 본인이 직접 써보지 않으면 그리고 매일 쓰지 않으면 글은 늘지 않는 것만은 확실한 것 같아요. 서민 교수님 역시 서른 살부터 읽기와 쓰기를 시작하셨다고 합니다. 독서와 일기로요. 일기의 장점, 어릴 때부터 익히 들어와서 다들 너무 잘 알고 계실 거예요.

 

책에는 한비야씨를 예로 들었는데요. 시련이 있을 때, 세상에 내 편이 하나도 없다고 느낄 때 일기가 나를 지탱하는 힘을 준다고 합니다. 그리고 일기는 자기 객관화의 힘이 있고요. 또 하나의 장점은 추억을 캡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하는군요. 요즘 추억 캡처의 대세는 사진 아니었던가요? 스마트폰 덕에 사진이 홍수처럼 넘쳐나기에 지나고 나면 마음에 오래 남는 사진은 몇 없다는거죠. 저도 그러네요. 찍을 땐 인생 사진이라면 호들갑 떠는데, 몇 달 지나고 나면 그냥 쓱쓱 넘기는 사진 중의 하나가 되버리더라구요.

 

서민 교수님은 종이 노트와 필기구를 갖고 다니면서 일기를 쓴다고 하셨어요. 스마트폰을 휴대하면서 찍고 싶을 때 바로 카메라를 들이대듯이 종이 노트를 들고 다니면 일상에 일어나는 일들을 기록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노트 일기와 블로그 일기의 장점을 쭉 나열하였는데요. 거기서 격하게 공감되는 부분이 있어 잠시 소개드립니다.

 

p 97 블로그의 특성상 댓글이 달리면 대댓글을 달아주는 게 예의죠. 댓글이 서너 개 정도면 별 부담이 안 되는데 열 개, 스무 개, 아니 서른 개가 달리면 어떻게 할까요? 다 대댓글을 달아줘야겠지요. 이러다 보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요? 하나당 30초라 해도 서른 개를 달려면 15분이 됩니다. 더 무서운 건, 자신의 대댓글에 대해 그 당사자가 대대댓글을 달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안 그래도 없는 시간을 쪼개서 일기를 쓰는데 댓글로 시간을 다 보내다니, 이게 뭡니까? (중략) 블로거가 댓글에 집착하기 시작하면, 그 블로거는 망했다고 봐도 된다고요.

 

자신의 블로그에 달린 댓글에 답글은 물론 이웃 블로그에도 댓글을 써야 하니 하루 종일 블로그 세상에서 벗어나기가 힘들 것 같아요.

블로그가 그렇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스마트폰만 있으면 접속할 수 있으니 댓글을 확인하기도 쉽고요. 그러면서 점점 더 자주 접속하게 되는 것 같아요. 책에서 파워블로거의 일상을 소개해줬는데요. 글의 반응이 시원찮으면 머리를 쥐어뜯고, 글을 발행하지 못하면 엄청 초조해 한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저자는 노트 일기가 더 좋다고 하십니다.

 

전 손글씨를 못 써서 그런지 블로그가 좋아요. 그리고 전 답글을 쓸 댓글의 개수가 많지 않아서 지금으로선 대댓글 쓰기가 가능합니다. 이럴 땐 파워블로그 아닌 것을 감사해야 하나요? 댓글이 3~40개 되면 저는 15분이 뭡니까, 아마 그 시간의 5배 정도는 들여야 대댓글 쓸 것 같은데요. 서민 작가님은 부디 지켜주십사 하며 블로거의 네 가지 자세를 알려주십니다.

 

p 99 1. 댓글에 집착하지 않겠다.

2. 아무리 바빠도 최소한의 분량은 지키겠다.

3. 사진은 올리지 않을 것이다.

4. 블로그 일기를 쓰는 시간은 딴짓하는 시간을 포함해서 1시간 이내로 한다.

이런 원칙만 지킬 수 있다면 저는 블로그를 추천하렵니다.

 

블로그 얘기하다 제가 정한 분량이 다 차버렸어요. 전하고 싶은 부분이 많았는데 여기서 줄여야 할 것 같아요. 책에 맞춤법 관련 얘기하는 대목에선 눈물을 찔끔거릴 정도로 웃었고요. 책을 읽어야 일기를 더 잘 쓴다에서는 기초, 중급, 고급으로 나눠 핵심을 잘 얘기해줍니다. <밥보다 일기>가 제목이지만 전 밥도 중요하겠기에 밥만큼 일기라고 하고 싶습니다. 책밥도 넣어줘야겠고, 글밥도 매일 먹어야해서 이번 명절 후다닥 지나갈 것 같아요. 책밥과 글밥 나란히 나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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