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웃는다, 고로 존재한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학창시절 저는 아주 잘 웃는 학생 중 한 명이었어요. 친구들이 어디서 재미난 이야기를 듣고 오면 저에게 제일 먼저 말하고 싶어 했습니다. 왜냐면 저의 웃음 리액션이 워낙 강력했기 때문이지요. 심지어는 저에게 웃긴 얘기를 하면 재미의 정도를 선별하기 어렵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아무 얘기나 잘 웃어서 이게 진짜 재밌는건지 아닌지 알 수 없다고 했거든요.
그래도 친구들의 얘기에 확실한 웃음으로 보답해주기에 재미난 이야기의 첫 번째 수혜자는 늘 저였어요. 그런 제가 직장 생활 하면서 웃음을 거의 잃어갔어요. 아니 웃기는 매일 웃지만 고객에게 보여주기 위한 억지 미소를 띨 뿐이었지요. 아이 키우면서 잃어버린 웃음을 되찾았습니다. 아이는 뱃속에 웃음 폭탄이라도 장착하고 태어났는지 어찌나 잘 웃는지요. 웃음 잃은 엄마를 치료하기 위해서 마치 웃음봇이라도 된 것 마냥 온몸으로 웃습니다.
유머 하면 생각나는 저의 지인이 있어요. 5년 전 알게 된 언니인데요. 어찌나 유쾌하고 경쾌한지 매일매일 얼굴 근육이 아플 정도로 웃었어요. 책을 잘 읽는 사람도 아닌데, 그 언니의 입담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참 궁금했었습니다. 그런 언니 주위엔 항상 사람이 끊이지 않아요. 언니는 자신의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이야기도 잘 들어주고요. 또 슬픔은 슬픔대로 잘 표현하는 사람이었지요. 한마디로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면서 배려도 장착한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유쾌한 언니를 닮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잘 웃는 건 자신 있기에 입담만 장착하면 될 것 같아 재미난 이야기에는 항상 촉을 세우고 있는 편인데요.
<모멸감> 책으로 유명한 김찬호 교수님이 쓰신 <유머니즘> 책을 그런 이유로 보게 됐어요. 이 책을 읽으면 유머 한 자락 배우게 될까, 아님 유머 감각을 좀 키우게 될까 어설픈 기대를 하면서요.
그런데 저자는 유머 감각은 키우는 것이 아니라 회복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어릴 때 우리는 모두 천부적인 유머리스트였기에 희미해진 그 감각을 회복하기만 하면 된다는군요. 전 너무 희미해져 감 떨어졌다는 소리도 자주 듣는데, 이런 저도 회복가능 하겠죠.
이 책의 제목 유머니즘은 유머와 휴머니즘을 조합한 것인데요. 단어의 조성에서도 알 수 있듯이 유머는 단지 웃음만 일컫는 건 아닌 듯합니다. 휴머니즘이 같이 들어있기에 따뜻한 인간애도 포함하는 것이 유머니즘이 아닐까 생각해봤어요.
p 19 유머는 삶의 무늬이자 인격이다. 자신과 세상을 받아들이는 태도다. 거기에는 인생 전체의 이력이 깃들어 있다.
웃음없는 삶으로도 삶의 무늬를 만들 수 있고 유머 없는 사람이라도 인격이 없진 않죠. 하지만 그 삶의 궤적은 크지 않다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가능성 영역이 줄어든다 싶고요. 웃음은 여유에서 나오기에 그런데요. 나를 대하는 마음의 여유, 타인을 대하는 여유, 그리고 세상을 대할 때 여유 속에서 나의 가능성이 넓어지고 관계도 확장되는 것 같아요. 책에서는 삶 속에서 웃음이 피어나게 하려면 화술이나 개인적 능력 신장에만 매달리지 말고 일상에서 관계를 리모델링 하라고 얘기하고 있어요.
관계를 리모델링 하라는 문구에서 유쾌한 언니가 다시 떠오릅니다. 그 언니는 관계 맺기의 달인 같았어요.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누구와도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이었기에 삶 속에 웃음이 늘 함께했던가 봅니다.
유머는 행복하고 좋은 삶의 재료인 것 같아요. 웃음은 건강의 동반자 같고요. 회복할 수 있다면 천부적 기질인 유머 감각을 회복하고 키울 수 있다면 배워서라도 갖고 싶은 능력입니다.
p 107 유쾌한 사람은 농담을 적절하게 잘 활용하며, 상쾌한 사람은 농담에 웃어줄 줄 알며, 경쾌한 사람은 농담을 멋지게 받아칠 줄 알며, 통쾌한 사람은 농담의 수위를 높일 줄 안다. -김소연, <마음사전>에서-
유머 감각은 남을 웃기는 능력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농담에 흔쾌히 반응하고 크게 웃는 것도 유머 감각의 중요한 속성이라고 했어요. 그렇다면 전 상쾌한 사람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상쾌한 아침, 열린 마음으로 상쾌한 사람이 될 준비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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