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일상

신문 칼럼을 읽고

꿈트리숲 2019. 10. 7. 07:09

시간과 노력이 만드는 장인(匠人) 

 

 

토요일자 매경신문에서 각자장(刻字匠)에 대한 칼럼을 봤어요. 각자장? 생소한 용어라서 관심 있게 칼럼을 읽어내려갔습니다.

 

1996111일 중요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문화재) 106호로 지정되었다. 각자란 목판(木板)에 글씨를 새기는 공예를 말하고, 그러한 기능을 가진 장인을 각자장 또는 각수(刻手)라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우리나라는 각자(刻字) 문화가 발달하여 불교가 보급되면서 경전을 목판으로 인쇄하기 시작했다는데요. 목판에 새기는 글자, 그것이 바로 각자입니다. 칼럼에서는 각자(刻字) 분야의 중요무형문화재였던 오옥진 선생을 만난 일을 회고하면서 업에 관한 이야기, 장인 정신 등을 이야기합니다.

 

목판에 새기는 글자를 가지고 무형문화재로까지 지정되었다면 그분의 글씨가 어디에 쓰였을지 언뜻 생각나는 곳이 있습니다. 오옥진 선생의 각자는 경복궁, 창경궁 등의 고궁과 송광사, 화엄사, 조계사 등의 고찰, 그리고 현충사, 독립기념관, 숭례문 복구 당시 현판 작업에 쓰였다고 하는군요.

 

유명한 고궁과 사찰에 쓰였다면 얼마나 뛰어난 기술을 보유하셨을까 싶으면서도 요즘 시대와서 장인으로 인정받기 전까지 얼마나 짙은 그림자 속에서 공부하셨을까 생각도 함께 듭니다.

 

선생은 6.25전쟁 중에 한쪽 눈을 잃고 학교를 다닐 형편이 안되어 목공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먹고살자고 시작한 일이지만 이왕이면 제대로 배우고 싶어서 이호택 선생님에게 연장 쓰는 법과 전통 목공예를, 신학균 선생님에게선 각자법을, 김충현 선생님께는 10년 넘게 서예를 배우셨대요. 그리고 임창순 선생님께는 한학까지 배우고요.

 

목판에 글자를 새긴다하면 나무와 연장만 잘 다루면 되겠지 싶은데, 문화재로 인정받는 각자장의 일은 예술의 경지여야 함을 선생의 삶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요. 연장은 물론이고 서예와 한학까지 두루 섭렵한 선생에게 각자는 더 이상 나무에 그냥 새기는 글자가 아니었던 거죠.

 

연장 쓰는 법만 익혀 글자를 새기는 것보다 다른 길처럼 보이지만 목공예와 서예, 한학까지 배우며 둘러 온 길은 훨씬 깊고 풍부한 예술을 만들었다 싶어요. 저처럼 범인이 보기에는 당장 필요하지 않는 행위 같아도 실은 그 모든 것이 더 나은 각자(刻字)를 위한 길이었겠지요. 마치 All for One 같은 느낌이요. 다양한 공부와 함께 오랫동안 담금질한 선생의 업에 대한 자부심은 각자(刻字)의 각자(各自)각자(各自)를 예술 그 자체이자 또 하나의 문화로 승격시킵니다.

 

예술가로 행세하지 않으려는 정직하고 겸허한 손끝이야말로 그의 노동을 예술로 끌어올리는 순연한 힘이었을 것이다. '장인'의 저자 리처드 세넷이 장인을 "일 자체를 위해 일을 잘해내려는 욕망으로 사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던 것처럼, 그의 노동 목표는 글씨를 잘 새기는 일 자체였다. -'어느 각자장을 기억하며' 에서-

 

저는 이 문구에서 문득 김윤나 작가가 떠올랐어요. 토요일 송도나비에서 김윤나 작가의 저자특강이 있었는데요. 강의 내용 중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내 몸으로 부딪쳐서 쌓은 경험과 기록들이 발바닥부터 차기 시작해서 입까지 오르면 강의가 나오고요. 그것이 머리까지 차면 책이 된다고 하셨지요. 머리까지 차면 의도하지 않아도 우수수 떨어지는 것들이 있는데 그것만 주워 담으면 글이 되고 책이 된다고요.

 

 

그래서 그럴까요, 그날 강의는 책 표지 사진 PPT 한 장만 띄워놓고 강의가 끝났습니다. 자료 없이도 한 시간 훌쩍 넘겨서 청중을 울렸다 웃겼다, 들었다 놨다 했거든요. 강사로서 김윤나 작가는 애써 힘을 주지 않는 것 같은 소위 작두 탄 느낌이었습니다.

 

각자장의 예술로 행세하지 않으려는 정직하고 겸허한 손끝과 강의 장인이 힘을 주지 않으려는 솔직하고 감동적인 말은 결을 같이 한다 생각들어요. 글쓰기 강의를 듣고 책을 내는 것이 트렌드 같아서 좀 아쉽다는 김윤나 작가의 얘기를 듣고 나는 블로그를 어떻게 쓰고 있나 생각해봅니다. 각자장처럼 한 글자 한 글자 정직하게 담고 있는지, 강의 장인처럼 솔직한 마음을 새겨 넣는지 말이지요.

 

저의 노동 목표는 글을 잘 쓰는 일 그 자체입니다. 한 글자 한 글자에 장인 정신을 녹여내기를 그럴 수 있기를 오늘도 간절히 바랍니다.  

 

원 기사는 아래 링크 참조해주세요.

https://www.mk.co.kr/opinion/contributors/view/2019/10/7990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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