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책

온 마음을 다해 디저트

꿈트리숲 2019. 10. 8. 07:09

어른의 요구르트 - 동심은 빠지고 눈치 첨가

 

 

오늘은 만화가이자 수필가인 김보통 작가의 책을 소개드립니다. 필명인지 본명인지 모르겠으나 이름이 아주 독특해서 한 번 들으면 까먹지 않을 이름이에요. 작년인가요, 제가 김보통 작가의 <살아, 눈부시게!>를 읽고서 고독이의 매력에 푹 빠진 경험이 있었는데요. 그로부터 1년이 지나서 또 운명인지 우연인지 김보통의 <온 마음을 다해 디저트>를 읽게 되었습니다.

 

p 9 이 책은 지난 삶 제가 먹어온 디저트와 그때의 기억을 모아놓은 작은 앨범입니다. 언제나처럼 대단할 것 없는 것들뿐이라 부끄럽습니다만, 그럼에도 같이 나누어 먹고 싶은 추억으로 빚은 디저트들입니다. 그러니 입이 심심할 때 비스킷을 꺼내 먹듯, 일없이 한가할 때 한 편씩 꺼내 읽으신다면 저로서는 더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이것이 작가의 위력입니다. 대단할 것 없는 것들뿐이라고 하는데, 그것을 모아 책을 만드니까요. 심지어 그 대단할 것 없는 맛들이 모여 위로를 주기도 합니다. 작가는 온 마음을 다해 디저트라고 쓰고 전 온 마음을 다해 위로라고 읽습니다.

 

작가는 마음껏 디저트를 먹는 삶을 살고 싶었다고 고백합니다. 그것이 성공의 기준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하면서요. 제가 어릴 땐 디저트라는 말이 있었는지 기억조차 없는데요. 어른이 되고 나서 그 말을 쓰지 않았나 싶어요. 대신 간식이나 주전부리, 입가심으로 더 많이 썼던 것 같아요.

 

작가는 따뜻한 맛과 아픔의 맛, 그리고 어른의 맛으로 디저트를 나눴어요. 디저트 하나에 추억 한 움큼 담아서 몽글몽글 기억속으로 보내는 따뜻한 맛에는 복숭아 병조림, 핫초코, 찐빵, 핫도그등 16가지 디저트 메뉴가 있습니다.

 

아픔의 맛에는 상처와 슬픔을 함께 했던 디저트들 초코파이, 커피, 요구르트 등 12가지 메뉴를 소개하고요. 어른의 맛에는 쌍화탕, 당근케이크, 푸딩 같은 다소 고급진 메뉴에 작가의 성장과 성숙을 담았습니다. 글도 글이지만 맛있게 그려진 디저트를 보는 것 또한 군침 돌게 하는 이 책의 재미에요.

 

저에겐 따뜻한 맛의 디저트, 뭐가 있을까 생각해보니 요구르트가 떠오르네요. 어릴 때 엄마와 목욕탕 대전을 치르고 나면 항상 먹었던 요구르트. 빨대 꼽고 쪽쪽 빨아먹는 그 요구르트 한 병으로 목욕탕에서 저의 때를 무지막지하게 밀은 엄마를 용서할 수 있었지요. 등짝 스매싱 눈감아 줄 수 있었습니다.

 

어쩌다 요구르트를 빼먹는 날엔 엄마가 얼마나 미웠는지 몰라요. 그럴 때면 벌겋게 된 몸이 더 쓰리고 따가운 느낌이 들었지요. 이전의 아픔과 서러움까지 같이 몰려와서요. 지금은 목욕탕 갈 일이 없기에 제 딸과 요구르트 추억, 쌓을 일이 없네요. 엄마와 목욕탕을 가게되도 그 시절 엄마만큼 힘이 없어요. 제가 엄마 등을 밀어드리고 먹는 요구르트는, 어른이 되어 먹는 요구르트는 예전의 맛이 안 납니다. 뭐가 빠졌는지, 아니면 뭐가 더 첨가되었는지 달콤하고도 시원하게 목구멍을 감싸고 넘어가는 그 맛이 느껴지지 않아요.

 

아마도 요구르트 하나만으로도 미움을 녹여버릴 수 있는 동심이 빠졌겠고, 어른의 세계를 알아버린 눈치가 첨가되었기에 지금의 요구르트에 분명 다른 맛이 느껴졌던 거겠죠. 어릴 적 추억을 털어버리고 어른이 된 것만 같아서 조금 헛헛한 기분이 듭니다. 오늘은 꼭 요구르트 한 병 사서 빨대 꼽고 목욕탕 추억을 생각해 볼랍니다.

 

기분 좋을 때도, 아플 때도, 그리고 힘들 때도 가야 하는 것이 삶이라는 것을 이제는 압니다. 그렇지만 좋을 땐 더 기분 좋게, 아플 땐 금방 낫게, 힘들 땐 조금 덜 힘들게 하는 디저트가 있어요. 디저트는 과거의 추억일수도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일수도, 아니면 진짜 디저트일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곁에는 자신을 달래주는 디저트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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