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인문학

총, 균, 쇠

꿈트리숲 2020. 1. 13. 10:39

우연치고는 참 기막힌 우연

 

 

오래전에 폼으로 책을 읽던 시절, 난공불락의 책 하나가 있었는데요. 그것은 바로 총, , 쇠입니다. 서울대 도서관 대출 순위 1위라는 말에 혹해서 도전했었지요. 서울대 가지는 못해도 서울대 학생들이 읽는 책, 나도 읽어봐야지 하는 그 마음으로요.

 

총균쇠는 그 당시 저의 독서 짠밥 수준으로는 감내하기 힘든 두께와 활자 크기였습니다. 몇 번을 시도 했지만 앞쪽만 펼쳤다 덮었다 하다가 서울대 다닐 것도 아닌데 하면서 기억 저편으로 보내버렸습니다.

 

그러다 작년에 함께 읽기 모임에서 총균쇠를 읽자는 제안이 나와서 내키지는 않았지만 꾸역꾸역 읽게 됐어요.

 

시간이 많이 흐른 탓일까요? 아니면 그간에 저의 독서 짠밥이 조금 쌓인 덕분일까요? 그런대로 읽을 만 하더라구요. 그전에 사피엔스를 재밌게 읽어서인지 총균쇠의 내용도 이해가 잘 되고 어떤 부분은 흥미롭기까지 했습니다.

 

혹시나 저처럼 두께와 활자 크기에 기함하신 분이라면 조심히 권해봅니다. 매일 일정 분량 쪼개서 접근하시면 완독하실 수 있습니다. 읽다가 분명 재미난 부분도 만나실거에요.

 

이 책의 흥미로웠던 부분은 그거였습니다. 왜 오늘날 미국이나 유럽은 잘 살고 아프리카나 동남아 국가들은 가난할까? 한때는 인종의 차이 때문에 그렇다는 말들도 있었는데 인종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는 것이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주장이에요.

 

민족마다 역사가 다르게 진행된 것은 각 민족의 생물학적 차이 때문이 아니라, 환경적 차이 때문이다. 지리 환경은 분명히 역사에 영향을 미친다. 문제는 그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그리고 과연 역사의 광범위한 경향도 지리적 환경으로 설명할 수 있는지를 밝혀내는 일이다. (16)

 

저도 항상 궁금했던 것 중 하나가 인류의 기원은 아프리카부터 시작이 되었는데 어째서 겨우 몇 백 년 전에 만들어진 국가가 지금 가장 영향력이 클까? 였거든요. 과연 백인이 우세해서 그런 걸까 궁금했는데 총균쇠에서 속 시원히 알려줍니다.

 

인구가 늘어나는데는 식량이 큰 몫을 합니다. 식량 생산은 기후와 지형에 영향을 많이 받고요. 요즘이야 기술이 발달해서 기후와 지형에 따른 제약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수렵 채집 사회에서는 기후와 지형은 식량 생산에 절대적 요인이었겠지요. 또 식량 생산은 간접적으로 총기, 병원균, 쇠가 발전하는 데 필요한 선행 조건이기도 하고요. 총균쇠를 가진 민족들은 다른 민족을 정복하는데 훨씬 수월했을 겁니다.

 

식량 생산을 일찍 시작한 지역의 민족들은 총기, 병원균, 쇠를 발전시키는 방향으로도 일찍 출발한 셈이었다. (158)

 

총균쇠에서 아하! 하고 감탄했던 부분은 유럽의 지형과 아메리카 대륙, 아프리카 대륙의 모양이 인구 증가와 관련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남북아메리카의 주요 축은 남북 방향이다. 이보다는 덜 극단적이지만 아프리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와 대조적으로 유라시아의 주요 축은 동서 방향이다. 그렇다면 각 대륙 축의 방향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차이는 인류 역사에 과연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중략)

축의 방향은 농작물과 가축은 물론이고 어쩌면 문자와 바퀴 등 발명품들의 전파 속도에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 결과 이 기본적인 지리적 특성은 지난 500년 동안 아메리카 원주민, 아프리카인, 유라시아인 등이 각각 전혀 다른 경험을 하게 되었던 크나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260)

 

대륙의 축, 지형 모양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나 아메리카 대륙보다 유라시아 대륙에 가축화할 수 있는 동물의 개체수가 많았다든지 작물화 할 수 있는 식물의 종류가 많았다는 것 또한 우연의 산물입니다. 그러고 보면 지금의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들은 인종이 우세해서라기 보다 지리적 기후적 특혜를 받은 덕분 아닐까요?

 

저자는 이 말을 한 줄로 압축해서 끝을 맺는데요. 그 차이가 지금은 어마어마한 차이로 커져서 좀 씁쓸하긴 합니다. 하지만 앞으로 AI가 우세하는 세상엔 또 어떻게 바뀔지, 어떤 우연이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아프리카와 유럽의 역사적 궤적이 달라진 것은 궁극적으로 부동산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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