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책

희망이 삶이 될 때

꿈트리숲 2020. 1. 17. 06:45

건강을 잃고 알게 된 것들

 

 

 

최근에 많이 아프면서 책은 다시 안 읽어야지, 글은 절대 쓰지 않을거야 마음을 먹었는데요. 그러면서도 책 소개 기사들에는 자꾸 눈이 가더라구요. 그런 글 중에서 저자의 이야기가 저와 너무 흡사해서 꼭 찾아봐야지 했던 책이 있었습니다.

 

<희망이 삶이 될 때>인데요.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의사 이야기입니다. 의사라는 직업은 저와 거리가 멀지만 희귀질환이라는 점에서는 저자와 저의 싱크로율이 높습니다. 데이비드는 의대 재학시절 캐슬만병이라는 면역질환을 진단 받는데요. 원인도 치료방법도 알려지지 않은 병이라 급작스레 병이 진행이 되어도 표준 치료 방법이 달리 없어 죽을 고비를 몇번 넘기게 됩니다.

 

저자는 그런 얘기를 했어요. 병의 이름이 있다는 건 이미 앞선 누군가 병을 경험했고, 또 치료 기록이 있으니 자신에게도 희망이 있다는 얘기를요. 의대 공부를 열심히 해야할 때 질풍노도의 병이 습격해오면 치열하게 공부해야 할 삶이 일제히 멈춥니다. 그러다 호전되면 다시 공부를 이어가는 삶이 반복되는데요.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환자가 캐슬만병의 원인과 치료 방법을 연구하는 진정한 의사가 되어가는 이야기에서 저는 동병상련을 많이 느꼈습니다.

 

우선 내가 어떤 짓을 했기에 이런 형벌을 받는 것인지 알고 싶었다. 도대체 뭘 했고 하지 않았기에 그 벌로 이런 시련을 겪는 것일까? 기도를 너무 적게 했는가? 질문을 너무 많이 했는가? (80쪾)

 

저는 루푸스 환자입니다. 데이비드와 병명은 다르지만 같은 자가 면역질환이지요. 발병한지는 15년이 되었습니다. 루푸스라는 아주 생소한 이름을 처음 들었을때 제가 딱 저자와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도대체 나에게 왜? 내가 뭘 잘못했기에?' 온통 원망과 분노 억울함 뿐이었어요. 투병 생활이 길어지면서 더이상 원망과 분노를 표출할 에너지마저 소진되었을 때 비로소 이런 병이 나에게 온 이유는 무언가를 알려주기 위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른 초반에 제 발목을 잡은 루푸스는 '너 지금껏 살면서 너 자신을 사랑한 적 있어?', '너를 남 만큼이나 귀하게 생각해봤어?' 하는 질문을 던졌어요. 저는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어요. 세상 누구보다 소중한 나를 그동안 너무 찬밥신세로 대했다는 것을요. 한번도 사랑한다 말해준 적 없었고요. 항상 남들의 기준에 맞춰 살았더라구요. 타인의 욕망을 마치 제 것인양 느끼면서요. 건강을 잃고 알게 된 것은 이 세상 누구보다 나를 사랑하자 입니다.

 

중병의 발병과 회복은 내게 '정상적'인 삶이 대단히 비싼 것이라는 놀라운 진실을 가르쳐줬다. 어떻게든 정상에 가까운 삶을 재구축하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내가 그동안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던 것들에 실제로 얼마나 큰 비용이 드는지 절감했다. (172쪽)

 

저는 암환자입니다. 암 수술한지 이제 만 5년하고 6개월이 지났어요. 암선고 받던 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이미 최악을 겪고 있었기 때문에 더이상 어떤 병도 생기지 않으리라 생각했어요. 그러나 시련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시기나 상황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 같아요. 

 

뭔가를 열심히 준비하고 계획하던 시점에 병마는 또 한번 제 삶을 원점으로 돌려놓고 말았어요.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인가 싶었습니다. 정상적으로 살기 위해 치르는 대가 치고는 너무나 가혹하다 싶었어요. 이번엔 원망과 분노 억울함은 차오르지 않았습니다. 그저 또 한번 큰 시련을 겪는 제 자신이 안타까웠어요. 그러면서 수술해서 살 수 있다는 것에 정말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됐습니다.

건강을 잃고 알게 되었어요. 세상에 감사할 일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요. 숨쉬는 것도 걸어다닐 수 있다는 것도 사랑하는 가족이 있다는 것도 심지어 암에 걸려서 이런 깨달음을 얻게 된 것까지 온통 감사, 감사 아닌 것이 없습니다.

 

대단한 비밀도 아닌데 왜 그랬을까? 나는 자존심이 강했다. 남과 다르게 취급당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아픈 녀석'이 되고 싶지 않았다. (247쪽)

 

저는 병원과 참 친한 사람인데요. 그래서 더더욱 '아픈 녀석'이 되고 싶지 않았어요. 남과 다르게 취급당하고 싶지 않아서 루푸스 환자라는거, 암환자라는거 비밀 아닌 비밀이었습니다. '환자'는 병원에서의 저의 위치일뿐, 평상시에는 정상인으로 살고 싶었거든요. 그렇게 안간힘 쓰던 저에게 건강은 또 한번 저를 주저앉힙니다. 지난 시월에 악하선(턱밑샘) 절제수술을 받고 신장 조직 검사를 하고, 루푸스 치료를 위해 병원에 입원을 했습니다. '왜, 도대체 왜? 또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내가 깨달아야하는 교훈이 아직도 남은 걸까?' 하는 의문이 강하게 들었어요.

 

깜깜한 병실에 저와 고통만이 마주하고 있을 때 전 강하게 버티지도 못했고 굳건히 견디지도 못했어요. 너무나 무기력하게 고통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제발 저승사자가 와서 저를 데려가기만을 매일밤 기도하면서요. 1분이 마치 한 시간처럼 느껴지는 긴 하루가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아서 저 스스로를 포기했었어요.

 

그런데 지독한 병은 이번에도 큰 가르침을 주면서 저를 수렁에서 건져줬습니다. 저의 건강이 빨리 회복되기를 바란다는 블로그 이웃들의 수많은 댓글들, 지인들의 염려와 응원의 메세지, 포기하려는 저를 아무 말없이 묵묵히 돌보고 기다려주는 가족들. 저에겐 소중한 사람들이, 저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데이비드는 자신과 비슷한 아픔을 겪는 이들을 위해 더 좋은 의사가 될거라는 그래서 캐슬만병의 원인과 치료방법을 연구하는 희망으로 삶을 꾸려갑니다. 저는... 동굴 같던 긴 터널에서 한 줄기 희망을 보고 걸어 갑니다. 저에겐 소중한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들이 희망입니다. 

 

베푼 은혜는 흐르는 물에 흘려보내고 받은 은혜는 돌에 새긴다.

 

저를 걱정하고 응원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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