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인문학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꿈트리숲 2020. 5. 18. 06:00

100년 전에 인간의 가치가 도구로 전락하는 걸 비판한 작가가 있습니다. 벌레처럼 변해버려 가족에게 짐이 되고 사회에서 무용지물이 되는 인간의 얘기를 소설로 그려냈는데, 10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얘기는 가능할 것만 같아 소름 돋네요.

 

프란츠 카프카가 1912년에 내놓은 <변신>을 얘기해보려고 해요.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눈을 떠보니 자신이 해충으로 변해 있음을 알게 됩니다. 놀라는 것도 잠시, 그레고르는 언제 그랬냐는 듯 여느 때처럼 출근 준비를 하죠.

 

변신은 했지만 그의 정체성은 몸에 맞춰 아직 변하지 못했어요. 자의든 타의든 매일 하는 걸 못하게 됐을 때 우리는 평소 해오던  습성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죠. 그레고르 역시 발버둥을 치면서까지 직장에 늦지 않으려 애를 쓰고 있는데요. 변신을 받아들일 수 없는 마음이 느껴져 짠했습니다. 

 

매일 정시에 일어나는 습관을 알고 있던 가족들도 걱정하고, 직장의 지배인도 찾아옵니다. 아들의 이상행동을 어떻게든 무마하려던 어머니는 지배인에게 아들이 좀 편칠 않다고 둘러대죠.

 

대단한 일은 아니기를 바랍니다. 또 다른 면에서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우리 장사꾼들은-유감스럽게 생각하든 다행으로 여기든-약간 몸이 불편한 것쯤은 장사를 생각해서 매우 빈번히 그냥 참고 넘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19쪽)

 

그레고르를 찾아온 지배인의 말입니다. 몸이 약간 불편한 것쯤은 그냥 참고 넘어가야 한다고 말하네요. 대부분의 근로자들이 다 같은 마음일 거예요. 머리 좀 아픈 것쯤이야 그냥 참고, 속이 좀 부대끼는 것쯤은 약 하나 먹고 참고, 참고 또 참고 하루하루 버티는 거죠. 그래야 한다는 걸 눈치로 몸에 새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중병이 나면 모든 것이 올스톱 되버리는데요. 마치 해충으로 변해버린 그레고르 처럼요. 그럴 때면 그동안 참았던 시간이 억울하고 버티던 자신이 미워질 것 같다 싶어요. 이럴 때 가족이라도 위로가 되고 도움이 되면 좋겠다 싶은데. 그레고르 가족은 어떻게 했을까요?

 

아버지, 어머니, 여동생은 그레고르의 경제활동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어요. 그럼에도 그레고르에겐 깊은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해충으로 변했지만 가족 중 그 누구도 그레고르가 정확히 어떤 곤충으로 변해 있는지 말을 하지 않거든요. 그레고르의 정체는 가정부에 의해서 밝혀지는데요. 

 

이리 와봐, 쇠똥구리야! 이 늙은 쇠똥구리 좀 봐라! (61쪽)

 

그레고르는 쇠똥구리로 변했어요. 쇠똥구리의 일은 소나 말 사람의 똥을 굴리는 거죠. 자신의 몸의 몇 배에 해당하는 똥을 굴리는 쇠똥구리처럼 그레고르도 자신 혼자만의 힘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것이 버거운 짐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그레고르의 경제활동이 전면 중단되자 가족들은 각자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돈을 벌기 시작합니다. 가족들 입장에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일을 시작했겠지만 독자 입장에선 진작에 다 같이 경제 활동을 했더라면 그레고르의 부담이 좀 덜어졌겠다 싶어요.

 

그레고르는 가정에서는 돈 줄이었고, 직장에서는 사업가에게 돈을 벌어주는 도구였을거라 짐작됩니다. 지배인은 그레고르의 변신 모습을 보고는 한 마디 말도 없이 줄행랑을 쳤고요. 가족들은 그레고르를 격리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모습은 흉측하고 대화가 통하지 않는데다 같은 음식으로 식사를 할 수도 없게 되었기 때문이죠. 그나마 여동생은 오빠에게 먹을 것을 살뜰히 챙겨주는 모습을 보이는데요. 하지만 이마저도 길어지는 오빠의 변신 앞에서는 서서히 마음이 식어갑니다.

 

내보내야 해요. 그게 유일한 방법이에요, 아버지. 이게 오빠라는 생각을 버리셔야 해요. 우리가 이렇게 오래 그렇게 믿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진짜 불행이에요. (71쪽)

 

자신을 위해 살지 못하고 남을 위해 희생만 하다가 어느 날 끔찍하게 변해버린 나의 모습을 바라보는 심정은 이루 다 말로 할 수 없을 것만 같은데요. 하물며 나 스스로도 나를 못 받아들이는데, 가족들마저 외면해버린다면 자괴감은 오죽할까 싶어요.

 

가족과 소통하지 못하고 세상과 단절된 그레고르는 고독보다 더 깊은 외로움을 안고 죽게 됩니다. 누구 하나 애도하는 이 없이 쓸쓸히 잊혀지는 그레고르. 그가 꼭 곤충으로 변해서가 아니라 우리에게 과연 쓸모없는 인간이란 있을까요?

인간의 존재 이유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이유라고 배웠는데 도구로써의 가치가 없어졌다고 존재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 현실, 100년 전에도 지금도 변함없는 건 아닌지 질문을 던져보게 하는 <변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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