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책

사금파리 한 조각

꿈트리숲 2020. 5. 26. 06:00

제가 영어 원서 읽기를 하면서 원서 선택은 주로 아이가 봤던 책들에서 고르고 있는데요. 얇고 쉬운 것 찾느라 눈에 불을 켜고 있어요. 그러다 한 권의 얄팍한 책을 잡았는데, 아이가 말하길 저자가 한국 사람이라고 합니다. 한국인이 영어 소설을 썼구나 하고 넘어갔어요. 도서관에 책 빌리러 갔다가 우연찮게 <사금파리 한 조각>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뉴베리상 수상작이라는 건 알고 있었죠. 책 옆을 지나가려던 찰나 저자의 이름이 어딘가 모르게 익숙한 기분이 느껴집니다. Linda Sue Park?!

 

‘린다 수 박’은 제가 읽고 있는 영어 원서의 저자이거든요. 같은 사람인가? 순간 소름이 돋았어요. 이렇게 유명한 사람이었던가?! 집에 와서 딸에게 얘기했더니 <A Long Walk to Water>, <A Single Shard>, <When My name Was Keoko> 등 린다의 책이 줄줄이 나옵니다. 심지어 <A Single Shard>가 <사금파리 한 조각>이었어요. 놀라움과 반가움, 친근함과 경외감이 함께 들어 린다의 책을 모조리 다 읽어보고 싶은 충동이 생겼어요.

 

동화책에서 이렇게 흥분을 느끼다니 제가 다시 아이가 된 기분입니다. 그리고 마음속에 저장하고픈 작가를 만나서 들뜨는 마음 숨길 수가 없네요. 그 마음으로 <사금파리 한 조각> 내용 잠시 훑어보겠습니다.

 

사금파리는 백토를 빚어서 구워 만든 그릇의 깨진 조각을 말하는데요. 제목에서 유추해볼 수 있듯이 도자기를 빚는 도공들의 이야기이면서 고려 시대를 그려낸 우리의 역사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어요.

 

열 살 남짓한 ‘목이’는 다리 밑에서 두루미 아저씨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목이는 송도(지금의 개성)에서 태어났지만 돌 무렵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지금의 부안지역에 있는 ‘줄포’라는 바닷가 마을까지 왔어요. 목이의 보호자는 두루미 아저씨인데요.

 

두루미 아저씨는 한 쪽 다리가 불편해요. 그래서 지팡이에 몸을 지탱하며 걸어 다니는데 마치 외다리로 서 있는 두루미 같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입니다. 부모가 없다는 것과 몸이 불편하다는 것, 목이와 두루미 아저씨에게는 큰 문제가 아닌 듯 보입니다.

 

“노동은 사람을 품위 있게 만들지만, 도둑질은 사람에게서 품위를 빼앗아가는 거야.” (1권 19쪽)

 

떨어진 쌀알을 줍고 쓰레기 더미에서 음식을 찾아야만 하는 목이는 노동을 하려고 합니다. 줄포는 도공들이 많이 살고 있는데요. 목이의 목표는 도자기를 빚는 도공이 되는 것이었죠. 그래서 마을에서 제일 소문난 민영감집을 매일 기웃기웃하며 민영감에게서 도자기 기술을 배우려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하나 있던 아들을 잃은 민영감은 자신의 아들이 아니면 기술을 전수해줄 수 없다고 하는데, 목이가 어떻게 민영감에게서 도자기 빚는 걸 배우게 되는지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지만 재밌고 흥미진진해서 책 2권이 금새 끝나고 만 기분이에요.

 

스승을 대신해 스승의 역작을 궁궐로 전하는 특명을 받은 목이. 그러나 가는 도중 도둑들을 만나 도자기는 산산이 부서지고 마는데요. 겨우 건진 사금파리 한 조각으로 스승에게 찾아온 기회의 불씨를 어떻게든 다시 살려내려 목이는 궁궐로 곧장 달려갑니다.

 

“감도관 나리, 이건 사금파리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이 사금파리가 저희 선생님의 솜씨를 아낌없이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2권 112쪽)

 

도예가의 혼이 담긴 작품은 사금파리 한 조각에도 고스란히 담겨있었습니다. 감도관은 그 한 조각을 보고서 민영감의 상감청자라는 걸 바로 알아봤던 거죠.

 

도예가의 꿈을 키우며 허드렛일을 묵묵히 견뎌내고 고아와 가난이라는 불리한 환경을 극복한 목이의 이야기는 올곧은 심성과 삶을 긍정적으로 대하는 태도, 그리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 앞에서는 인내하며 때로는 과감히 용기도 드러내야 함을 느끼게 해줍니다. 아동문학이 어른인 제게 자기계발서 같은 이야기를 전해주네요.

 

비록 이 모든 내용이 소설이긴 하나, 전 상감청자 무늬에서 울컥하는 마음이 느껴졌어요. 책을 덮어도 그 감동의 여운이 계속되는 듯합니다. 이제 고려청자를 보면 사금파리 한 조각이 꼭 떠오를 것 같아요. 예술을 소재로 미국인이면서 가장 한국적인 이야기를 풀어낸 작가에게 뉴베리상을 안긴 이유를 알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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