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움/해외여행

우리들의 홍콩이 생각나요 (feat. 홍콩택시)

꿈트리숲 2020. 7. 9. 06:00

 

구글 이미지

 

김영하 작가의 <오래 준비해온 대답>을 읽고 리뷰를 하려다 ‘아! 맞다, 나도 여행 리뷰할 거 있는데’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어요. <오래 준비해온 대답>은 김영하 작가의 오래 전 여행, 시칠리아로 떠난 여행이 담긴 책인데요. 시칠리아를 읽다가 큰 대륙에 붙은 섬이라는 점에서 홍콩이 생각났고, 또 제목에서 느껴지는 동질감이 있었습니다.

 

2013년도 1월에 떠난 홍콩 여행, 저도 그 여행을 오래 준비했거든요. 이름하여 <오래 준비해온 여행, 우리들의 홍콩이 생각나요>입니다.

 

홍콩 여행 이전에 제가 다녔던 여행은 단체로 떠난 여행들이라 짜여진 계획대로 움직이는 거였어요. 봐야 된다는 걸 보고, 먹어야 된다는 걸 먹는 여행이었죠. 그렇기에 저의 취향과 관심은 반영할 수 없었습니다.

 

제 손으로 스케줄 짜고 예약을 한 첫 여행, 그래서 더더욱 잊을 수가 없는 여행입니다. 홍콩 여행 이후로는 자유여행에 자신감이 생겨 세계를 다 주름잡을 수 있을 것만 같더라고요.

 

 

가이드의 첫 번째 목표는 여행객의 안전과 여행 만족이겠지요. 철저한 준비만이 안전과 만족 다 잡을 수 있을 것 같아 홍콩 책을 두 권이나 샅샅이 훑으며 사전 조사 들어갔어요. “고객님들 어디 가고 싶으세요?”

 

딸은 당시 초등학교 1학년이었기에 디즈니랜드가 1순위였어요. 가서 공주(미녀와 야수의 ‘벨’)와 사진을 찍고 싶다 했고 남편은 마카오의 카지노를 한 번 “구경”해보고 싶다고 했어요. 고객들의 취향을 접수했으니 이제 최소한의 동선으로 최대한의 기쁨을 주는 설계만 하면 만사 오케이입니다.

 

아차차 저의 희망 사항도 있다는 걸 잊었네요. 저의 희망 사항은 고객들 이동 동선 중에 슬쩍 끼워 넣어주는 센스 정도는 발휘해야 현명한 가이드라고 할 수 있겠죠. 저의 취향은 홍콩야경과 야경을 보러 가기 위해 타는 피크트램 정도여서 별 무리 없이 이동 중에 스리슬쩍 가능할 것 같았어요. 그러나 항상 변수는 있는 법. 그 변수는 피크트램에도 있더라고요.

 

 

구글지도

 

홍콩은 홍콩섬과 란타우섬 그리고 까오룽(구룡)반도로 나뉩니다. 란타우섬에는 인공섬으로 조그맣게 딸린 첵랍콕 섬이 있는데요. 그 섬에 홍콩 국제공항이 있어요. 그래서 공항의 또 다른 이름이 첵랍콕 국제공항입니다.

 

저희 가족이 탄 비행기는 홍콩 시간으로 밤 12시 넘어서 도착이었어요. 그 시간 때는 택시로 호텔까지 이동하는 것이 제일 효과적인 것 같아서 택시를 타기로 했는데요. 홍콩 공항에는 두 종류의 택시가 다닙니다. 빨간색과 초록색 택시에요. 워낙 홍콩에 여행 가시는 분들이 많아서 다들 알고 계실 듯한데요.

 

저도 홍콩 책 두 권으로 빠삭하게 공부했기에 학습이 되어있었죠. 초록 택시는 란타우 섬만 돌고, 홍콩섬이나 까오룽 반도로 들어가려면 빨간 택시를 타야합니다. 공항 로비를 나와서 초록 택시 타는 줄과 빨간 택시를 타는 줄이 나뉘는데요. 저는 정신 바짝 차리고 빨간 줄에 서려는 순간 공항 관계자인 것 같은 분이 저에게 어디 가는지 묻더라고요. 멋있게 영어로 준비한 말을 내뱉었습니다.

 

 

구글이미지

 

Hong Kong Island! 첫째 날 일정이 마카오였는데, 페리를 타고 갈 계획이었거든요. 그래서 페리 터미널이 있는 셩완역(MTR역) 근처에 숙소를 잡았습니다. 공항 관계자분이 잡아 준 택시를 타고 저희가 묵을 호텔을 말했습니다. 띠로리~~~ 기사님이 모르는 눈치에요.

 

‘어? 호텔에 두 번 세 번 메일 보내서 확인했는데, 바우처도 다 출력해왔는데, 기사님이 모르는 호텔이면 유령호텔인가? 짧은 시간 머릿속에서 온갖 생각이 다 들더라고요. 짧은 영어에다 빠다 발음 얹어서 손짓발짓 양념 쳐가며 말했건만 기사님은 묵묵부답입니다.

 

우리 택시가 출발하지 않으니 뒤에 택시들도 다 정체가 되어 택시 잡아준 공항 관계자가 다시 출동했습니다. 그분께 숙소를 말하고 위치 설명도 곁들이니 그분이 기사에게 중국어로 한참 얘기하고서 상황이 종료됐어요. 결론은 기사님이 영어에 익숙지 않고, 전 중국어를 할 줄 모르니 불통이었던거죠.

 

그 불통은 택시 타고 가는 내내 이어졌는데요. 기사님이 한 마디도 안하는 것은 물로 언짢은 표정이어서 전 쬐금 무서웠습니다. 한 사람으로 홍콩의 전체 이미지를 규정하는 건 억지라 생각 하지만 홍콩의 첫인상 결정에는 한 사람의 태도가 많은 영향을 줬던 것 같아요.

 

고대 그리스의 수사학 학교에서는 좋은 연설에 다음 세 가지가 필수적이라고 가르쳤다. 사람들을 감동시키든가 웃기든가, 아니면 유용한 정보를 줘라. (오래 준비해온 대답 32쪽)

 

이는 연설뿐만 아니라 책에도, 사람에도 적용된다 싶어요. 좋은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사람이거나 웃음을 주는 재밌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유용한 정보를 주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죠. 외국인을 제 일선에서 대하는 분들이라면 가슴에 국기를 품은 국가대표라 여기면 서비스의 질은 엄청 달라질거라 생각합니다.

 

감동과 재미 정보, 어느 것 하나라도 줄 수 없다면 미소 띤 인사 한마디라도 건네주면 좋을 것 같아요. 그 인사는 여행자의 마음엔 평생 남을 멋진 추억이 될 거거든요. 전 뽑기 운이 안 좋았던지 홍콩 여행 내내 묵언수행 하시는 기사님들만 만났습니다. 덕분에 우중충했던 택시 안의 분위기를 절대 잊지 않게 되었네요.
택시 기사님께 저는 Nobody였고 저에게 기사님은 Somebody였어요.

 

728x90

'채움 > 해외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행이 고플때 꺼내보는 앨범  (15) 2020.06.26
2018 괌 여행 3일차 -(2)  (16) 2018.07.26
2018 괌 여행 3일차 -(1)  (10) 2018.07.25
2018 괌 여행 2일차 -(2)  (12) 2018.07.24
2018 괌 여행 2일차 - (1)  (4) 2018.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