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책

엄마 사용법

꿈트리숲 2020. 7. 17. 06:00

현수네에 어느 날 엄마가 배달되었습니다.

택배 박스 한가득 들어 있는 엄마의 부품들...

 

조립 설명서 따라서 잘 조립된 엄마는 밥하고 설거지, 빨래, 식탁 정리를 곧잘 한다.

현수가 그토록 바라던 엄마가 드디어 생겼다.

친구들에게도 자랑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려 참을 수가 없다. 비라도 내리면 좋을텐데 하고 바란다. 우산 가지고 데리러 오는 엄마를 은근슬쩍 친구들에게 보여줄 수 있으니까.

 

그런데 어쩐지 엄마가 이상하다. 말이 없이 우울해 보인다. 뭔가 잘못 조립된 걸까? 아니면 조립할 때 부품에 손이 찔려 피가 좀 났는데, 그때 엄마의 가슴에 피가 스며든 것 때문에 오작동을 하는 걸까?

 

현수는 ‘엄마 사용법’을 보고 또 본다.

 

할아버지는 ‘엄마 사용법’을 읽으면서 점점 얼굴을 찌푸렸어.

“이건 꼭 청소기나 세탁기 사용법 같구나. 가전제품을 사용하는 법만 적혀 있어. 이건 진짜 엄마 사용법은 아닌 것 같다.”

“그럼 전 제가 원하는 멋진 엄마를 가질 수 없는 거예요?” (72쪽)

 

너도나도 생명 장난감을 주문하고 조립해서 가질 수 있는 시대. 엄마가 없는 현수도 생명 장난감으로 엄마를 주문합니다. 택배 박스가 좀 무겁긴 해도 혼자 들고 와서 낑낑대며 조립을 마쳤어요. 첫 번째로 눈 마주치는 사람을 주인으로 따른다고 해서 자신 외에는 아무도 못 보게 했는데... 엄마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너무 잘 작동하고 있어요. 빨래, 청소, 요리 등 집에서 필요한 모든 일을 완벽하게 처리하거든요. 다만 현수가 바란 엄마와 거리가 있을 뿐이지요. 현수는 어떤 엄마를 바라고 엄마를 주문한 걸까요?

 

“네가 생각한 엄마는 어떤데?”

“음, 안아 주고, 책도 읽어 주고, 사랑한다고 말해 주는 엄마요.” (67쪽)

 

그 외에도 현수가 바라는 엄마의 조건은 참 많아요. 학교 데려다 주는 것, 늦잠 잘 때 빨리 일어나라고 야단치는 것, 벽에 세워 키도 재고, 심부름도 보내고, 같이 구름도 보고 꽃도 심기 등. 생명 장난감이 할 수 없는 진짜 엄마만 할 수 있는 걸 현수는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아이들이 원하는 진짜 엄마는 특별한 기술을 요하는 게 아니었네요. 안아 주고 책 읽어 주고, 사랑한다 말해주는 거라니, 이거 돈 한 푼 안 들이고 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학교 데려다주고 야단도 친다... 야단이라면 오히려 참는 게 어려운 우리 아니던가요?(저만 그럴수도 있습니다. 너무 일반화해서 죄송요)

 

진짜 엄마는 집안일만 하거나 아니면 돈만 벌어오는 게 아니었구나 싶습니다. 마음을 나누고 사랑을 표현하는 엄마가 진짜 엄마였어요. 문득 난 진짜 엄마인가 생각을 해봅니다. ‘난 진짜 엄마인데 아이를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아이로 키우려 한 적은 없었던가’도 되짚어 봤어요. 그때는 아이가 절 보며 ‘우리 엄마 진짜 엄마가 아니야’ 했을 것 같아요.

 

현수는 자신이 원하는 엄마의 모습을 엄마에게 먼저 행동으로 보여줍니다. 엄마는 현수가 보여준 행동을 그대로 잘 따라 하는데요. 마치 우리가 아이를 통해 사랑 표현을 배우듯 말이지요. 사랑한다는 말을 입 밖에 내는 걸 무엇보다 어려워하던 제가 서슴없이 잘하게 된 건 아이가 저에게 수없이 먼저 보여줬기 때문이에요. 생명 장난감 엄마에게 현수가 가르쳐주듯이요.

 

엄마에게 마음이 생깁니다. 마음이 생긴 생명 장난감은 폐기처분 대상입니다. 오작동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지요. 과연 현수는 엄마를 지킬 수 있을지, 생명 장난감에서 진짜 엄마를 만나게 될지... 결말은 함구하겠습니다.

 

마음이 없다면 모를까 마음을 가지고 있는 우리는 아이의 마음을 잘 배울 만반의 준비가 된 상태입니다. 엄마 사용법에는 나오지 않는 진짜 엄마 되는 법, 바로 우리 아이들의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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