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책

알로하, 나의 엄마들

꿈트리숲 2020. 7. 21. 06:00

 

 

한 번 손에 잡으면 놓을 수 없는 책, 주인공들의 삶을 따라가느라 밥 먹는 것도 잊어버리게 만드는 책. <알로하, 나의 엄마들>을 읽은 제 느낌입니다. 느낌이라기보다 실제 밥 먹는 것도 잊은 채 손에서 책을 놓기가 싫었어요.

 

원래 소설을 많이 읽진 않았지만 근래 읽었던 책 중에서 가장 흥미진진하게 본 것 같아요. 암울했던 일제 식민지 시대와 그 시대 하와이 이민의 역사를 이렇게 아름답고 몰입감 높은 이야기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작가의 필력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903년 팍팍하고 미래가 불투명했던 조선을 떠나 하와이 이민 길에 올랐던 이들은 단촐한 짐에 조선에서의 삶보다 더 나은 삶이 펼쳐질 거라는 기대를 한가득 실었을 텐데요. 그러나 그들 앞에는 불타는 태양 아래 사탕수수 농장에서 하루 종일 일하는 노예 같은 삶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도 기대고 싶고 기다릴 누군가가 있었으니 바로 결혼 상대자예요. 사진으로 신붓감을 고르고 조선에선 사진으로 신랑감을 고르는 일명 사진결혼. 짠내 나는 하와이 이민 생활에 한 줄기 빛이 될 가정을 이룬다는 꿈.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선 최대한 신부 될 사람에게 잘 보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어떻게든 결혼을 해야 하니까요.

 

한편 조선에선 그런 사정도 모르고 하와이에 가면 공부도 마음 놓고 할 수 있고, 옷이며 먹을거리며 뭐든 풍부하다는 말에 열여덟 꽃다운 아이들이 과감히 하와이행을 선택합니다. 누군가에 떠밀려 강요받은 것이 아닌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사진결혼이었어요.

 

버들은 여자라서 공부를 많이 못한 것이 내내 마음에 돌덩이처럼 남아 있어요. 그 돌덩이를 덜어낼 방법이 하와이행이라 사진결혼을 선택합니다. 홍주는 결혼 두 달 만에 남편이 죽어서 과부가 됐습니다. 조선에서는 평생 수절과부로 살아야 할 운명. 그래서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버들이 따라 하와이행을 선택했습니다. 송화는 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버들과 홍주와 한 배를 타게 됐는데요. 그 역시 조선에 남아 있었더라면 평생 낙인찍힌 채로 살아야 할 운명이었지요.

 

버들, 홍주, 송화 세 사람은 어떤 운명이 마중 나와 있을지도 모른 채 호놀룰루에 발을 내딛습니다. 1910년부터 1924년까지 사진결혼은 꽤 성행했었나 봐요. 모험을 선택한 사진 신부가 천여 명이나 되었다고 하는군요. 신랑들이 나이나 직업 재산을 속이고 결혼해서 실망한 신부도 부지기수였을거라 짐작됩니다.

 

버들, 홍주, 송화에게도 암담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는데요. 그들은 인생의 험난한 그 파도를 어떻게 헤쳐 넘어갔을까요?

 

우리 인생도 파도타기 아이가. (...)

홍주 말대로 자신의 인생에도 파도 같은 삶의 고비가 수없이 밀어닥쳤다. (...)

그들은 파도를 즐길 준비가 돼 있었다. 바다가 있는 한 없어지지 않을 파도처럼, 살아 있는 한 인생의 파도 역시 끊임없이 밀어닥칠 것이다. (...) 함께 조선을 떠나온 자신들은 아프게, 기쁘게, 뜨겁게 파도를 넘어서며 살아갈 것이다. 파도가 일으키는 물보라마다 무지개가 섰다. (334쪽)

 

그들은 비 온 뒤 잠깐 나왔다 사라질망정 환하게 색색깔 비추는 무지개에 앞날에 좋은 일만 있기를 기도하면서 서로를 가족처럼 친자매처럼 의지하며 인생의 파도를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힘든 시기 내 곁을 지켜주는 건 고향에 두고 온 부모님이나 형제자매가 아니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친구들이었어요. 그들의 끈끈한 우정은 고난과 역경에서 더 아름다운 꽃을 피웁니다.

 

어디서나 흔히 들을 수 있는 ‘알로하’라는 말은 단순한 인사말이 아니었다. 배려, 조화, 기쁨, 겸손, 인내 등을 뜻하는 하와이어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말이었다. 그 인사말 속에는 서로 사랑하고 배려하고 존중하며 기쁨을 함께 나누자는 하와이 원주민의 정신이 담겨있다고 했다. (365쪽)

 

<알로하, 나의 엄마들> 이 책 제목이 왜 ‘알로하, 나의 엄마들’인지 버들, 홍주, 송화 세 사람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알게 됩니다. 왜 ‘눈부시게 아름다운 결말’이라고 했는지 깊이 공감할 수 있어요.

 

제비뽑기에 꽝이 나왔다고 무효라며 물리지 않고 친구의 ‘꽝’마저도 내 것이라 껴안는 그들은 삶의 황무지를 밭으로 개척하고 인생의 파도를 잘 타고 넘습니다. 함께라면 어떤 운명이 와도 견딜 수 있을 것만 같아요. 살아 있는 한 끊임없이 밀어닥칠 그 운명의 파도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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