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인문학

돈 키호테

꿈트리숲 2020. 7. 27. 06:00

어릴 때 동화로 읽고 그 내용이 전부인 줄 알고 지내온 책이 있어요. <돈 키호테>, 어릴 때는 주인공 이름이 돈키호테인 줄 알았는데요. 어른이 되어서 돈 키호테라는 걸 알았습니다. ‘돈’은 스페인어로 주로 남자의 세례명 앞에 붙는 존칭이라는 것도요.

 

최근에 읽은 몇몇 책에서 돈 키호테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었어요. 자주 눈에 들어온다는 건 이 책과 인연을 맺을 때가 되었다는 뜻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가 아는 동화 속 내용은 간단했는데, <돈 키호테>의 원역본은 700페이지 900페이지가 넘는 책들로 2권이나 되더라고요. ‘그렇게 많은 이야기가 있었던가’하면서 청소년 소설로 눈을 돌렸습니다.

 

<돈 키호테>는 스페인의 국민작가라고 할 수 있는 미겔 데 세르반테의 소설입니다. 세르반테스는 젊은 시절 레판토 해전에 참전했다가 왼쪽 팔에 부상을 입고 영원히 장애를 안고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레판토 외팔이’라는 별명도 얻게 되지요. 퇴역해서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해적에게 납치되어 노예 생활을 5년간 하고요. 세금 징수관으로 일하다가는 비리로 고발당해 옥살이까지 하게 됩니다.

 

혹자들은 세르반테스의 삶이 여느 소설 못지않게 극적이라고 말합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삶을 통틀어 역작이라 할 수 있는 <돈 키호테>를 쓴 나이는 57세였어요. 돈 키호테의 2부는 10년 뒤인 67세에 완성되고 그로부터 2년 뒤 69세에 세르반테스는 사망합니다. 극적인 자신의 삶을 <돈 키호테>에 다 녹였던 듯싶습니다.

 

기사가 사라진 시대에 기사도를 외치며 허무맹랑한 소리를 하는 늙은 기사를 왜 작품의 소재로 했을까 궁금했는데, 세르반테스의 삶을 보니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글을 쓸 수 있다는 그의 정체성은 글에 오롯이 몰입하여 책을 쓰는 것 외에는 별로 안중에 없지 않았을까 싶고요. 항상 머릿속에는 소설 속의 주인공 스토리를 궁리하느라 남들이 보기에는 정신이 딴 곳에 가 있는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돈 키호테>의 주인공 돈 키호테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라만차 작은 마을에 사는 시골 귀족 알론소 키하노는 기사도 소설에 심취해있습니다. 너무 심취한 나머지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이때는 중세가 막을 내린 시기여서 중세 기사에 대한 인기도 시들해졌을 때인데요. 키하노는 자신을 돈 키호테로 명하며 본격적으로 기사의 길을 나섭니다.

 

영주로부터 기사 임명을 받아야만 정식 기사로 활동할 수 있다며 어느 허름한 여관의 여주인에게 기사 임명을 부탁하죠. 모두들 돈 키호테를 정신 나간 사람으로 취급하고 그의 기행을 보며 비웃습니다. 저도 소설 초반부에서는 돈 키호테가 너무 답답하게 느껴졌어요. 주변에 해만 끼친다는 느낌이었죠.

 

풍차를 거인으로 착각하여 무모하게 돌진해서 자신의 몸만 상하고요, 있지도 않은 가상 공주를 만들어 마법으로부터 구해내려고 합니다. 죄인을 풀어주고, 길가는 사람과 결투를 하는 등 모든 상황에서 기사도를 발휘하려 합니다.

 

있는 그대로 보자면 가상의 현실에 심취한 노인, 요즘말로 하자면 기사도 소설 덕후라고도 할 수 있겠어요. 책 후반부로 갈수록 돈 키호테에게 애정이 생기고 응원하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안쓰러운 마음도 있고, 단한번이라도 돈 키호테의 믿음이 맞았으면 하고 응원하는 마음도 들었어요. 타인에게 해만 끼칠 것 같았던 돈 키호테가 몰입의 대가로, 모험과 도전의 대명사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돈 키호테는 온갖 모험과 도전에도 죽지 않고 살아납니다. 가슴속에 꿈을 담고 호기심을 품고 있는 한 나이도 먹지 않으며 다쳐도 죽지 않는 소설 속 주인공과 똑같습니다. 이상주의자 돈 키호테에겐 현실주의자인 단짝 산초가 함께 하는데요. 둘은 정반대의 성향이지만 서로가 서로를 잘 이해하고 아껴주는 한 쌍입니다. 모두가 모자란다고 여기는 산초와 모두가 비정상이라고 생각하는 돈 키호테의 환상 모험은 4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흥미를 주는 모험이야기네요.

 

한 번도 성공해내지 못한 모험이라도 괜찮다고, 도전에서 실패하고 상처를 입어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 같아요. 떠나야 나를 만날 수 있고, 떠나야 돌아올 수 있음을 알겠는데, 과연 나에게 그런 용기가 나올까 생각해보게 되네요.

 

‘고인 물은 썩는다’고 한다. 물이 이럴진대 사람은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우리도 늘 세상을 향해 가슴과 머리를 열어 두어 다른 생각과 지식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경험을 쌓아 나가기 위한 여행을 떠나야 한다. 그 여행은 결코 편안한 휴식이 되지는 못하겠지만, 늘 나를 새로움으로 거듭나게 할 것이다.

남들이 나를 ‘돈 키호테’라고 불러 주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떠나라! 행동하고 도전하라! (320쪽)

 

728x90

'배움 > 인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징비록  (10) 2020.08.10
노인과 바다  (12) 2020.08.03
아버지의 말  (18) 2020.07.20
금오신화  (12) 2020.07.13
리마커블 천로역정  (16) 2020.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