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엄마와 딸

이제는 거북이 mom이 되어야 할 때

꿈트리숲 2020. 7. 28. 06:00

 

Unsplash - Anna Wangler

 

딸은 가끔씩 아니 수시로 나에게 질문을 던지고 또 자신에게 질문을 하라고 한다. 학교에서 배운 것을 나에게 테스트해 볼 겸 배운 것 복습할 겸 겸사겸사. 학교 졸업한지 몇 십년이 흘렀건만 난 초등 1학년부터 중3까지 계속 훑고 있는 중이다.

 

이런 분위기라면 고1, 2, 3도 다 강제로 복습해야만 할 것 같다.

2주 온라인 수업(이라고 쓰고 자유시간이라 읽는)하고 한 주 등교하는 시스템이 두어 달 이어지니 이제 이 체제에 완전적응을 한 모양이다. 계속 온라인 수업을 해도 문제없을 것 같다고 하는데... 그렇게 되면 난 더 복습을 빡세게 해야 될지도 모르겠다.

 

밥하다가도 불려가고, 책 읽다가도 불려가고, 일기 쓰다가도 불려가서 복습하는 엄마라니. 엄마의 하드코어 집안일에 “강제 복습”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

 

아이는 묻는다. “엄마는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음... 말이지, 학교 다닐 때 잘 배워서 그런 것도 있고, 나이가 주는 연륜도 있어서 그래.”

 

딸의 입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나온다. 그러면서 더 깊은 질문을 한다. 여기서 깊다는 뜻은 심오하고 방대한 질문이 아니라 교과서 구석에 깨알 같은 글씨로 써진 내용을 물어본다는 거다. 그래야 내가 모를 테니까.

 

배운 걸 언제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남에게 설명해 줄 수 있을 때가 비로소 안다고 말할 수 있다. 딸은 수학에 항상 자신없어 했다. 유치원때부터 초등학교까지 내내 담임 선생님들의 한결같은 말씀을 들어왔다. “어머니~~ 집에서 수학 좀 봐주세요. 수학만 되면 완벽합니다.” 그러면 “때 되면 하겠죠. 아이가 왜 잘해야 되는지 모르는데, 별로 시키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난 이렇게 대답을 했다. 수학 못해도 사는 데 별 지장이 없을거라 생각했다. 초등 고학년이 되면서 아이는 수학을 잘하지 못하는 걸 부끄럽게 여기기 시작하더니 배운 것을 뜨문뜨문 복습하기 시작했다.

 

중학생이 되어서는 EBS 강의도 자발적으로 듣는다. 남편과 내가 나서서 너무 열심히 한다며 말리고 나선다. 남들은 참 이상한 부모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공부는 자발적인게 제일 좋다고 믿는 우리 부부는 아이가 정말 좋아서 하는 게 아니라 모두 하니까 등 떠밀려서 하는 건 아닐까 싶어서 말렸었다.

 

그렇게 혼자 교과서와 문제집, EBS 강의를 왔다 갔다 하더니 이제는 반 친구들에게서 전화가 온다. “이 문제 어떻게 풀어? 여기서 답이 왜 하나야?” 등등 (이쯤되면 드라마틱하게 수학을 만점 받는 걸 상상할지도 모르겠지만 아직은 그런 드라마가 연출되지는 않고 있음)

 

“엄마, 새로운 단원에 들어가면 내가 친구들한테 많이 물어봐. 어떻게 하는 거냐고. 근데 시험 기간이 되면 이상하게도 아이들이 나에게 물어본다.”

“참 신기하네. 왜 그럴까?”

아마 새 단원 시작했을 땐 친구들은 학원에서 선행해서 처음 배우는 나보다 많이 알아서겠지. 시험 기간에는 이미 여러 번 했던거라 그 친구들은 지루해서 더 하기 싫은 건가?”

 

뭐가 됐든 아이는 친구들에게 수학 풀이를 설명해주면서 자신이 더 많이 배우고 있고 배운 것을 내재화하고 있는 것 같다.

 

10여 년 전부터 자기주도 학습이라는 말을 무지하게 많이 들어왔다. 자기주도 학습이라는 말이 어른에게 적용되는 용어인데, 해당 연령이 자꾸 아래로 아래로 내려온다고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자기주도 학습 강의를 들은 엄마들은 내 아이가 자기주도 학습이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나 역시 우리 아이는 자기주도 학습이 왜 안 될까 고민을 잠깐 했던 적이 있었다.(공부자체를 아예 안 했기에)

 

교과목만 놓고 보면 아이는 자기주도 뿐만아니라 타인주도 학습조차도 전혀 하지 않았었다. 국영수를 따로 학원 가서 배우지도 않았고, 논술 과외를 한다든지 교과목별로 학습지를 한다든지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오히려 그런 수업을 하는 친구들을 측은해 했었다. 놀 시간이 없다고. 

 

지금 시험기간인데, 아이는 혼자서 계획을 세우고 시험 일정에 맞추어 과목마다 시간을 할당해서 공부하고 있다. 수업시간 들은 것만 가지고 시험 봐서 폭망한 경험, 공부는 했지만 대충 해서 평균을 까먹은 경험, 다른 아이들은 왜 좋은 점수를 받고 자신은 낮은 점수를 받는지 관찰한 경험 등으로 나름의 공부 방법과 공부 이유를 정리한 것 같다.

 

타이거 맘, 캥거루 맘, 헬리콥터 맘 등 여러 엄마가 있지만 아이의 자기주도 학습에는 거북이 맘이 제격일 것 같다. 사실 느린 엄마노릇 하기도 무척 힘든 게 사실이다. 말해주고 싶어도 참아야 하고, 간섭하고 싶어도 참아야 하고, 아는 것도 모른 척해야 하니까. 엄마가 앞서 나가면 아이는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긴다.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현실에 아이는 의욕도 동기도 전혀 생기지 않는다. 실패를 해 본 경험만이, 스스로 노력해서 성취한 경험만이 아이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엄마는 많이 힘들더라도 철저히 뒤에서 느리게 가는 척을 하자. 이제는 옆 집의 날쌘 토끼맘을 신경쓰지 말고 내 아이만 우직하게 믿고 뒤따르는 거북이 맘이 되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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