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인문학

노인과 바다

꿈트리숲 2020. 8. 3. 06:00

 

 

어니스트 헤밍웨이에게 노벨 문학상을 안겼던 작품, <노인과 바다>를 짧은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왜 읽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봤습니다. 줄거리가 워낙 간단했기에 다 아는 얘기라고 여긴듯 싶습니다. 그런데 짧은 얘기 속에 많은 생각을 담고 있는 책이었어요.

 

쿠바 아바나의 작은 어촌 마을에 사는 산티아고는 어부입니다. 벌써 84일째 아무것도 잡아 오지 못한 운이 다한 노인으로 마을 사람들은 생각하죠. 단 한 사람만 빼고요. 소년 마놀린은 한 40여 일간 노인과 함께 고기를 잡으러 같이 나갔습니다. 산티아고에게 고기 잡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죠.

 

그러나 매일 빈손으로 돌아오는 걸 참지 못한 소년의 부모가 더 이상 노인과 함께 조업 나가지 못하도록 했죠. 그래도 산티아고와 소년은 서로를 위하고 서로에게 말동무가 되어주는 좋은 친구입니다.

 

85일째, 오늘은 뭔가 확실한 느낌이 든다고 말하는 산티아고에게 마놀린은 미끼로 쓸 싱싱한 정어리를 구해다 줍니다. 새벽에 출항하는 산티아고를 위해 따끈한 커피도 대접하고요. 드디어 큰 거 한 마리 잡으러 배를 바다에 띄웁니다. 바닷가 마을이 전혀 보이지 않는 먼 곳까지 나갔어요.

 

Use Nature

노인은 언제나 바다를 ‘라 마르(la mar)’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사람들이 바다를 다정하게 부를 때 쓰는 스페인어였다.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들도 이따금 바다를 나쁘게 말하긴 하지만 그런 때도 항상 바다를 여자처럼 여기며 말했다. 젊은 어부들 가운데, 상어 간으로 한창 벌이가 좋을 때 구입한 모터보트를 타고 다니며, 찌 대신 부표를 낚싯줄에 매달아 사용하는 자들은 바다를 남성인 ‘엘 마르(el mar)’라고 불렀다. 그들은 바다를 경쟁자나 투쟁 장소, 심지어 적처럼 여기며 말했다. 하지만 노인은 언제나 바다를 여성으로 생각했고, 큰 호의를 베풀어주거나 거절하는 어떤 존재로 생각했다. 만약 바다가 사납고 악한 행동을 한다면 그건 바다도 어쩔 수 없어서 그러는 것이었다. 31쪽

 

바닷가 마을 사람들은 바다와 자연이 주는 혜택을 이용하며 삽니다. 젊은 시절 산티아고도 그런 사람이었을 텐데요. 이제는 바다가 큰 호의를 베풀어주지 않지만 여전히 산티아고는 바다를 사람 대하듯, 여성을 대하듯 합니다. 산티아고에게 사납게 악하게 굴어도 어쩔 수 없어서 그런 거라고 여기면서요.

 

85일째, 뭔가 확실한 느낌이 들어 먼바다까지 나간 노인은 아주 아주 큰 청새치 한 마리를 잡습니다. 너무 커서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고, 힘도 어찌나 센지 꼬박 이틀을 다 보내고서야 청새치를 배에 묶을 수 있었지요. 그 와중에 굶기도 하고, 청새치와 드잡이하느라 손과 얼굴에 피를 보아야만 했어요. 하지만 오랫동안 자연을 이용하며 살아온 산티아고에겐 이런 것쯤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집니다.

 

Be Nature

마이애미를 향해 가는 비행기 한 대가 머리 위로 지나갔다. 비행기 그림자에 날치 떼가 놀라서 뛰어오르는 것을 노인은 지켜보았다. (...)

비행기를 타면 틀림없이 아주 이상할 거야. 노인은 생각했다. 저렇게 높은 데서는 바다가 어떻게 보일까. 너무 높이 날지만 않는다면 물고기들이 잘 보일 거야. 한 삼사백 미터 상공에서 천천히 날며 물고기들을 한번 내려다보고 싶군. 74쪽

 

전 이 부분을 읽으면서 제가 마치 마이애미를 향해 가는 비행기 안에서 노인이 있는 그 바다를 내려다보는 기분이었어요. 노인은 지금 청새치와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씨름하고 있는데, 멀리서 내려다보면 그것조차 자연의 일부처럼 멋진 풍경으로 보일 것 같았습니다.

가까이서 보면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는 긴박함도, 아등바등 치열하게 사는 삶도 모두 자연의 일부로 보일 것 같은데요. 자연을 이용해 살아가는 산티아고의 삶은 자신이 자연의 일부가 되는 삶이었습니다.

 

Follow Nature

물고기의 일부가 뜯겨나가자 노인은 물고기를 더는 쳐다보기 싫었다. 물고기가 물어뜯겼을 때 노인은 마치 자기 자신이 물어뜯긴 것처럼 느꼈다. (...)

“하지만 인간은 패배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어.” 노인은 말했다. “사람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언정 패배하진 않아.” 107~108쪽

 

자신의 운이 다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할 어마어마한 청새치. 그걸 잡았다는 기쁨을 만끽하는 것도 잠시, 피 냄새를 맡은 상어들의 공격을 계속 받는 산티아고. 그는 물러섬없이 그들과 대적을 합니다. 청새치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에 작살을 찌르고 희망을 버리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겠다는 마음에 몽둥이를 내려치지요. 인간은 자연 앞에서 무릎은 꿇을지언정 영원히 패배하진 않는가 봅니다. 상어 떼의 습격도 그 상어 떼가 힘겹게 잡은 청새치를 다 뜯어먹고 뼈만 남긴 상황에서도 노인은 그저 자연의 순리를 따릅니다. 억울해하지도 분해하지도 않으면서요.

자연 앞에서 한없이 작은 인간이지만 자연을 이용하고 자연이 되기도 하면서 자연의 숭고함을 받아들이고 따르는 인간은 결코 작은 인간이 아님을 느낄 수가 있었어요. 패배하지 않은 노인은 운이 다가 올 새로운 날을 또 꿈꿉니다. 여느때처럼.

 

728x90

'배움 > 인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톨스토이 단편선 2  (10) 2020.08.18
징비록  (10) 2020.08.10
돈 키호테  (16) 2020.07.27
아버지의 말  (18) 2020.07.20
금오신화  (12) 2020.0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