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엄마와 딸

지상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꿈트리숲 2020. 8. 20. 06:00

Kelly Sikkema/Unsplash

여러분은 어떤 엔터테인먼트를 좋아하세요?

예능 프로그램? 아니면 스포츠 경기 관람? 아니면 영화도 있겠고요. 컴퓨터 게임도 요즘은 빼놓을 수 없는 엔터테인먼트가 됐어요. 보는 것 말고 직접 몸으로 하는 생활체육을 여가시간에 즐기는 분들도 있지요. 제 지인은 시간 날 때마다 등산을 하시더라고요. 등산도 훌륭한 엔터테인먼트입니다.

 

전 어떤 여흥을 즐겼나 한번 돌이켜봤더니요. 주로 영화를 많이 보러 다녔고요. 카페투어 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몸으로 직접 즐기는 생활체육은 스쿼시도 좀 해보고, 수영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는 그 모든 엔터테인먼트를 일시에 다 중단했어요. 아이를 돌봐야 하니 사람들 만나서 카페투어 하기는 당연히 안됐고요. 그 당시 개봉 영화에 대해선 아예 깜깜합니다. 운동이라 하면 아이랑 보내는 24시간 강제 체육 시간을 갖게 되니 따로 필요 없더라고요.

 

결혼 전에 즐겼던 엔터테인먼트들 하나도 못 했었지만 사는 게 전혀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신기하죠. 왜 그랬을까요?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이 딴 곳에 정신을 못 쓰게 하는 것도 있지만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이를 보는 게 그 어느 엔터테인먼트보다 더 다이나믹하고 재밌었기 때문입니다(사실입니까?).

 

저... 사실을 고백하자면 갓난아기일 때는 초보 엄마 딱지 떼느라 정신없이 24시간을 보내서 재밌는지, 박진감이 넘치는지 전혀 감을 못 잡았어요. 그런데 2~3년 반복된 시간을 보내고 나니 이제 아이만 보면 절로 광대가 승천하고 입꼬리는 내려올 생각을 안 하더라고요.

 

세상에 이보다 더 감동적인 영화가 어디 있으며, 이보다 더 흥미진진한 스포츠가 어디 있을까요? 난생처음 뒤집기 한 날은 온 동네가 떠나가도록 환호를 하고요. (2002 한일 월드컵 4강 못지않습니다)

 

걸음마를 뗄 때는 아이 걸음 한 걸음 한걸음에 온 가족이 응원의 기합 소리를 넣어가며 손에 땀을 쥐고 지켜봅니다. 마치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양희은님의 [상록수]가 재생되는 듯 환청이 들리는 감동적인 순간을 경험합니다. 아직도 저에겐 그 감동적인 영화의 한 장면이 선명하게 남아 있어요.

 

얼마 전 지인 댁에 놀러 갔었는데, 그 댁에서 돌도 안된 아기와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어찌나 예쁘고 사랑스럽던지, 웃음이 끊이질 않았어요. 아이만 쳐다보는데도 시간이 어찌나 잘 가던지요. 아무리 재미난 영화도 2시간 정도면 끝나잖아요. 근데 아이를 보는 건 끝나지 않는 영화 같았어요. 아기의 해맑은 웃음 한방에 좌중은 아~~ 신음소리를 내며 눈 녹듯 쓰러지고요. 아기 혼자서 뒤집고 손뼉 치는데도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오구오구’ 하면서 잘한다 잘한다 합창을 했습니다.

 

정말 뒤집기만 해도 박수받고 하품만 해도 감탄 받는 그 시기는 부모뿐만 아니라 가족 친지 모두에게 더할 나위 없는 행복감을 주는 때입니다. 물론 그런 시간이 거저 오는 건 아니지요. 밤을 새워가며 먹이고 재우고 씻기는 노고 뒤에 그런 꿀맛 같은 행복이 찾아오죠. 뭔가 대가를 바라고 의무를 한다고 하면 그 일은 지상 최고의 엔터테인먼트가 아니라 지상 최악의 괴로움이 될 겁니다.

 

지상 최고의 엔터테인먼트를 즐기려면 우리는 어떤 자세가 필요할까요? 내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 내 아이는 잘 자랄 거라는 믿음, 그리고 아이를 키우며 나도 같이 성숙한 어른이 될 것이라는 다짐이면 되지 않을까요?

 

김밥장인-소금 한통을 다 들이붓고 김밥 마는 중

오늘도 저는 리얼 버라이어티 엔터테인먼트에 직접 참여해서 온몸으로 경험하고 있습니다. 머리는 산발이 되고 너무 많이 웃어서 얼굴 근육이 얼얼하지만 그래도 꿀맛 같은 행복이 보장되는 엔터테인먼트라 놓치고 싶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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