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얼마 남지 않아 고향에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시 고민(1차 고민)이 되었어요. 몸도 아직 100% 컨디션이 아니고 코로나 바이러스 걱정도 되고 해서요. 부모님께 전화드렸더니 ‘올 생각을 말아라’ 하셔서 고민이 바로 해결됐습니다.
부모님 뵈러 가는 대신 뭐라도 보내드려야겠다 싶어 뭐가 좋을까 고민(2차 고민)을 잠깐 했는데요. 수산시장에서 철 만난 꽃게를 보고 바로 선물로 낙점했습니다. 부모님께서 맛있게 드시던 모습이 떠올라 멋진 선물이 되겠다 생각이 들었죠.
과일 선물이나 기타 건강식품 선물은 온라인에서 손가락 몇 번 클릭하거나 전화 한 통이면 택배 배송이 되었는데요. 해산물 택배는 처음이라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얼음이 든 아이스박스에 담겨 온 꽃게. 당일 연평도에서 조업한 꽃게라고 하더니 정말 싱싱하더라고요. 살이 꽉 찼는지 무게도 묵직하니 합격입니다. 박스에 테이핑을 여러 번 둘러 편의점 택배로 보낼까 우체국 택배로 부칠까 3차 고민에 빠졌습니다.
짧은 고민 후 바로 실행. 공간이 좀 더 넓은 우체국을 선택했습니다. 송장 쓰고 접수까지 마치고 나오려는데, 직원 분이 저를 부릅니다.
직원 : 박스 안에 혹시 얼음 들었나요?
파워 당당 자아 : 네!
직원 : 얼음 들어있으면 접수 안 됩니다.
갑자기 쭈굴 모드 자아 : 왜에에요?
직원 : 얼음이 녹아서 다른 택배 물품이 젖거든요. 아이스 팩 넣어야 합니다.
힘 빠지는 자아 : 아... 네...
실컷 접수한 박스 두 개를 다시 주섬주섬 카트에 얹고 주차장으로 덜거덕거리며 돌아왔어요. 날이 더워 마스크에 땀이 차고 등줄기에도 땀이 흥건했습니다. '내가 왜 한 번도 하지 않은 꽃게 선물을 한다고 마음먹었을까' 하며 자책이 시작됩니다. '여기서 포기하면 꽃게 일병은 죽을 텐데 어떡하나' 걱정도 되고요. 어떻게든 꽃게 일병도 살리고 부모님 반가워하시는 목소리도 들어야겠다 싶습니다.
갑자기 안도현 시인의 <스며드는 것> 시가 떠오르더라고요. 갑자기? 네 갑자기요.
주차장에서 그 시를 떠올리며 한 템포 쉬었습니다. 자책하는 마음 달래고, 힘 빠지는 저를 토닥토닥해주었지요. 편하게 보내는 선물보다 부모님이 좋아하실 꽃게를 선택한 저 자신을 칭찬해주는 건 물론 부모님은 나를 어떤 마음으로 키우셨을까 생각하니 갑자기 울컥했습니다. 갑자기? 네, 좀 뜬금없지요.
<스며드는 것>
-안도현-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우리를 껴안고 등판에 울컥울컥 쏟아지는 간장 같은 세상사를 다 막아주셨기에 제가 있다고 생각하니 이깟 택배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싶었어요. 저도 꽃게가 알을 껴안은 그 마음으로 아이를 껴안고 짠내 나는 세상으로 스며들어야겠다 싶습니다.
꽃게 일병 구하기는 성공했을까요? 네! 무사히 잘 구출해서 부모님 품에 안겨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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