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일상

김포족? 나는야 김장족. 꿈트리네 김장이야기

꿈트리숲 2020. 12. 8. 06:00

 

 

저 어릴 때 엄마는 겨울 초입에 김장하고 한해 행사 잘 마무리했다고 말씀하곤 하셨어요. 김장은 우리 집안에 대소사에 낄 만큼 중차대한 일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겨우내 특별한 반찬거리가 없을 때 가족의 입맛과 건강을 잡을 수 있는 믿음직한 지원군이 되어주었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김장을 준비할 때면 마치 무슨 의식을 치르듯, 배추 고르는 일부터 시작해서 젓갈과 양념의 작은 재료 하나하나까지 세심하게 준비를 하셨습니다. 덕분에 저는 김장의 수고스러움은 전혀 모른 채 맛있는 김치를 먹으며 겨울을 잘 났었죠.

 

제가 직접 김장을 해보고는 엄마가 하는 것에 비하면 많이 간소화했음에도 불구하고 허리가 아프고 손목이 뻐근한 중노동임을 느꼈습니다. 이 힘든 걸 왜 사서 고생하나 싶어 김치를 사 먹어 보기도 했는데요. 시판 김치로는 엄마의 손맛을 도저히 대체할 수 없겠더라고요. 힘들어도 김장을 하는 이유입니다.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소화할 수 없는 일이기에 세 식구 총동원되어 치르는 거사가 되었어요. 힘들기 때문일까요? 김포족(김장 포기족)이 늘고 있다는 이야기 김장철이면 어김없이 들립니다. 그럼에도 김장을 하겠다는 김장족들이 아직은 많은 듯 싶어요. 김장족들을 위한 희소식 하나 전해드립니다. 절임배추와 양념키트를 세트로 파는 상품도 있어요. 1~2인 가구, 4인 가구 등 각자 가정에 맞는 패키지를 구매하시면 된다고 합니다. 이제 김장도 패키지 시대가 열렸네요. (글을 쓰고 보니 저도 패키지 김장을 한 셈입니다)

 

대표 김장족인 저는 든든한 겨울 반찬이 되어줄 김치를 올해도 담갔습니다.  배추를 직접 절이는 그런 어마무시한 일은 꿈도 꾸지 않습니다. 제 몸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지요. 일찌감치 자연드림 절임 배추를 예약해뒀어요. 통상 주말에 김장했는데, 이번에도 주말에 배추가 도착하도록 예약을 한 줄 알았는데, 제가 날짜 착오를 했나 봐요. 금요일 배추 찾으러 오라는 문자가 왔습니다.

 

 

긴급임무 투입 - 배추 수거 작전

 

온라인 클래스 하는 딸을 대동하고 배추 가지러 출발합니다. 배추, 무, 쪽파까지 트렁크에 가득 싣고 아울렛으로 향합니다. 오늘 딸의 노동력을 좀 많이 빌려야 하기에 미리 선 보상 들어갑니다. 따따구리(Hot) 달달구리(Sweet) 음료를 한 잔 먹이고, 점심도 한 끼 사 먹였어요. 이 정도면 오늘 노동력 좀 빌려도 되겠지요?

 

 

선보상 후노동 시스템 - 따따구리달달구리 스벅 핫초코

 

남편 퇴근 시간을 맞추면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맞출 수 있을까 싶었더니 저의 느린 손 덕에 남편 퇴근 시간 맞춰서 버무리기가 딱 준비되었습니다. 이번 김장을 위해 결혼 17년 동안 내내 고민했던 채칼도 하나 장만했어요. 채칼 첫 개시에 사용법이 익숙지 않아 손에 얼마나 힘을 줬던지 한겨울에 땀을 비 오듯 흘렸네요. 무를 5개 정도 채칼로 썰었어요. 팔이 아령 든 것처럼 얼얼합니다. 쪽파 다듬고 배추 물 빼고 준비가 얼추 다 되었습니다.

 

 

절임배추30KG, 무9개, 쪽파 두단

 

양념은 엄마 찬스를 이용했습니다. 엄마가 양념을 버무려 미리 택배로 보내주셨어요. 건강하지 못한 딸이어서 엄마가 늘 수고를 많이 하십니다. 덕분에 저는 한결 수월하게 김치를 담글 수 있었습니다. 엄마의 양념 레시피는 극비 사항도 아닌데, 정확한 비율을 아직 못 알아냈습니다. 이거 조금, 저거 조금 이런 식이거든요. 언젠가는 비율을 꼭 알아내야 할 텐데요.

엄마의 김장 양념 재료는 고춧가루, 마늘, 생강, 멸치 다시마 육수, 찹쌀풀, 생갈치 간 것, 보리새우 간 것, 빨간 고추 간 것, 청양고추 간 것, 배 간 것 등이 들어갔습니다. 각 재료가 조화를 잘 이뤄 매콤, 시원, 아삭, 달달한 김치가 만들어집니다.

 

 

변변한 채반이 없어 대야를 엎어서 물을 뺍니다 - 휘청이는 배추탑
엄마양념으로 본격적으로 버무려 봅시다

 

주말 같았으면 미리 수육도 삶고 했을 텐데, 쪽파 다듬고 무채 썰고, 배추 옮기고 하느라 진이 다 빠졌어요. 바쁜 저녁 시간까지 겹쳐서 이번엔 수육 패스합니다. 김장의 백미는 바로 김치 버무리며 배추 제일 안쪽 부분을 뜯어 김치의 속 재료 넣고 싸 먹는 거죠. 그 맛에 김장 노동의 고단함도 날아가는 것 같습니다.

 

 

치덕치덕한 것 같은데, 곱게 발린 김치 양념
서로 입에 넣어주기 귀찮다 알아서 셀프로 먹읍시다
갓 지은 뜨끈한 밥에 갓한 김치 그 신묘한 조합

 

서로 먹여주다가 나중엔 각자 알아서 셀프로 계속 뜯어먹었어요. 서로가 서로에게 그만 뜯어먹고 일 좀 하자며 채근합니다. 아이고 허리야 하며 곡소리도 나네요. 남편은 양념을 배추에 버무리지 않고서 바지와 양말에 다 묻혔어요. 노동주를 너무 많이 마셨나 봅니다. 갓 한 밥에 김장 버무리며 손으로 쭉 찢은 김치 한 조각 올려 뜨끈하게 한술 떴습니다. 세상 근심 걱정 다 날아가는 맛이네요. 웃으며 먹으며 즐거운 김장이 마무리되었습니다.

 

 

노동주를 너무 많이 마셨어~~ 양념을 옷에 버무리네~~(남편)
보고만 있어도 든든하다 김장 - 노동, 협동, 전통

 

평소의 김치보다 김장 김치는 몇 배는 더 맛있는 것 같아요. 왜 그럴까요? 많은 재료가 들어가서일 수도 있고, 또 몇 배의 정성이 더 깃들어서일 수도 있겠지요. 거기에 더해 온 가족이 오순도순 힘을 합쳐 만들었기 때문에 더 맛있는 것 아닐까요? 노동의 가치가 빛나는 김장입니다. 협동의 가치가 빛나는 김치입니다. 김장하면서 자연스레 우리의 전통도 은근슬쩍 전수해줘서 전통의 가치가 빛나는 김장 김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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