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미니멀

고속버스, 네 덕분이다

꿈트리숲 2021. 2. 19. 06:00

 

Sandy Manoa/Unsplash

 

나의 중고물품 거래 역사는 15년이나 되었다. 아이 용품 중 거대한 식탁이 첫 거래 품목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봐도 그 물건이 팔린 게 신기하고, 그걸 팔려고 애썼던 내가 대단하다고 여겨진다.

 

아이가 필요하다고 말한 적도 없는데 필요할 것이라 미리 짐작하고 사들인 아이 물품이 많았다. 그중에 유아 식탁은 정말 왜 샀나 싶을 정도로 밥 먹는 용도 보다는 인테리어 용으로 쓰였다. 그 식탁이 제 역할을 못 한다고 생각하니 보면 볼수록 눈에 거슬렸다. 주위에 줄 만한 사람도 없었고. 고민하다가 육아 사이트에 중고물품 팔던 사람들이 떠올라 나도 한번 팔아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지금은 당근마켓이 있어 동네 거래가 가능한데, 십여 년 전에는 인터넷 사이트에 사진을 올려 전국에 내 물건을 알리고 택배로 거래하는 수밖에 없었다. 식탁은 새것 같은 중고라(메이드 인 이태리가 한몫 하고) 금세 산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서울 사는 사람이었다.

 

내 물품이 팔렸다는 기쁨도 잠시, 거대한 식탁을 포장하는 일과 택배 보낼 일로 눈앞이 캄캄했다. 집에 오는 택배기사님께 여쭤보니 크기가 커서 택배 부쳐줄 수가 없다고 했다. 쇼핑몰 택배는 크기 상관없이 받아주면서 개인 택배는 왜 크기 제한을 두는 거지? 의문을 가져봤지만 돌아오는 건 거절뿐이었다. 그렇다면 우체국 택배는 받아주지 않을까?

 

길이가 150cm 넘으면 우체국 택배도 안 된다고 했다. 불행히도 식탁은 세로가 150이 넘는 길이였다. 폭망이다. 애물단지로 구박 덩이로 전락한 식탁. 구매자에게 연락해서 택배를 부칠 수가 없으니 취소해야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구매자가 다른 방법을 알려줬다. 고속버스 화물로 부치면 자신이 찾아가겠다는 것이다. 아니, 그런 방법이 다 있었단 말인가? 연신 고맙다고 말하고 이제 포장의 벽만 넘으면 되었다.

 

딱 맞는 박스를 찾기가 어려워 여러 박스를 이어붙여 간신히 포장에 성공. 아이는 카시트에 앉혀서 조수석에 태우고, 거대한 식탁은 뒷자리에 욱여넣고 고속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과연 택배를 받아줄까?

 

전국으로 다니는 고속버스에는 사람만 타고 다니는 게 아니었다. 생각보다 많은 물건이 주인도 없는 채 홀로 고속버스를 타고 전국으로 배달되고 있었다.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신 구매자가 다시 한번 감사한 순간이었다.

 

택배 부치고 돈을 입금받기는 했지만 그래도 판매자로서 물건이 구매자에게 제대로 도착했는지 확인하는 게 상도덕이라 생각했다. 구매자는 연락이 안 되고 고속버스 회사에 전화해서 물건 찾아갔는지 확인하니 이틀이 지나도 찾아가지 않았다고 했다.

 

돈까지 주고서 왜 물건을 찾아가지 않는 거지? 물건 파는 게 이렇게 신경 쓰이는 거였다면 팔지 말걸…. 후회가 밀려왔다. 터미널 수화물 취급소에서 덩그러니 주인을 기다리고 있을 식탁을 생각하니 마음이 안 좋았다. 당장 서울로 달려가서 식탁을 찾아오고 싶었다. 이런저런 궁리를 하고 있는데 구매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너무 바빠서 고속버스 터미널에 갈 수 없었다고. 그래서 퀵 서비스 배달 신청해서 받았다고 했다(오! 그런 방법도 있었군요. 새로운 세상에 눈뜨게 해준 첫 번째 거래자님^^).

 

휴…. 정말 다행이다. 중고물품 거래가 무사히 끝나서 안도했고, 아이 물건이 버려지지 않고 누군가에게 가서 계속 사용된다 생각하니 안심이었다.

 

내 생애 첫 번째 중고거래를 하드코어로 성공했더니 그 이후의 중고거래는 거침없이 진행되었다. 중고거래의 맛을 알기에 난 여전히 중고거래를 하는지도 모르겠다. 때로는 닦고 조이고 기름칠하는 과정이 귀찮기도 한데, 그 귀찮음을 조금만 넘기면 여러 명이 이익을 보니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중고거래를 통해 사는 이는 싸게 사서 좋고, 파는 이는 돈을 벌어서 좋고, 지구는 쓰레기 몸살을 그나마 좀 덜 수 있어서 좋다. 자원이 폐기되지 않고 계속 순환되기에 나라에도 개인에도 세상에도 이익이 될 것이다. (제조업체는 싫어할까요?) 먼지 앉은 물건도 다시 보면 보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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