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일상

스마트폰이 내 마음 같을 때(GPS 수신 오류)

꿈트리숲 2021. 2. 23. 06:00

 

Tamas Tuzes-Katai/Unsplash

 

며칠 전 영종도에 갈 일이 있어 인천대교를 탔다. 영종도는 공항 갈 때나 해돋이 보러 갈 때, 그리고 예쁜 카페에 갈 때 등 종종 가는 곳이지만 갈 때마다 네비게이션을 켜고 가서 솔직히 길을 잘 모른다.

 

그저 인천대교를 건넌다는 것만 확실히 알 뿐. 평소와 다름없이 핸드폰의 티맵을 켜고 목적지를 찍은 다음 신나게 인천대교를 달렸다. 달리는 도중 티맵을 확인하니 출발할 때 남은 거리가 아직 그대로 남아있었다.

 

아무리 달려도 거리가 줄어들지 않는 티맵을 유심히 지켜보니 GPS 수신 오류라고 떠있다. 대략난감. 네비가 정상 작동하지 않으면 도로에서 나는 눈뜬 장님이나 마찬가지인데. 일단 심호흡을 크게 하고 인천대교를 넘어가면 어딘가에 멈출 만한 곳이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식은 땀을 흘리며 앞만 보고 달렸다.

 

영종도에 들어가긴 했지만 차를 세울만한 곳을 발견하지 못했다. 또 직진이다. 간혹 초보 운전자들의 차량 스티커에 직진만 몇 시간째라는 메시지가 적혀있는데, 내가 그 꼴이 날 것 같았다. 모르는 길은 전적으로 네비에 의존하는 요즘시대에 네비가 먹통이면 길찾기는 포기해야 한다. 더군다나 길치인 나로서는.

 

한참을 직진만 하다보니 차들이 거의 다니지 않는 한적한 곳이 나왔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티맵이 안되면 카카오 네비라도 될까 싶어 앱을 켰더니 카카오네비 역시 GPS 수신 오류. 이대로는 집에도 못 갈 것 같은데... 혹시나 차에 장착된 네비를 켜봤다. 몇 년 전에 고속도로 달리다가 네비가 멈춘 적이 있어서 차량에 부착된 네비는 전혀 사용하지 않았기에 제대로 작동될 지가 의문이었다.

 

다행히 네비는 살아있었다. 길 안내를 잘 해주어서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하고 집으로도 돌아올 수 있었다. 스페어타이어처럼 스페어 네비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던지.

 

차량 네비가 정상 작동한다는 건 결국 내 핸드폰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뜻이다. 3년이 다 되어가는 스마트폰. 하루가 다르게 신기술이 탑재된 스마트폰이 쏟아져 나오지만 큰 고장없으면 계속 쓰려고 마음먹었다.

 

이런 내 마음도 몰라주고 스마트폰은 2년이 지나고부터 슬슬 이상 증상을 보이고 있다. 배터리가 빨리 소모된다든지 배터리 용량이 2~30% 남았을 때 갑자기 꺼져버린다든지 속도가 느려지는 증상을 보이는 와중에 GPS 수신까지 안 되다니.

 

일단은 A/S센터로 가보자. 전 세계 스마트폰 보급률이 가장 높은 우리나라여서 그런지 아침부터 서비스센터는 북적북적했다. 대기는 필수 기다림은 선택. 내 차례가 되어 이러저러 설명을 하고 10여 분 기다렸을까? 다 처리 되었다고 한다.

 

기기 고장은 아니며 핸드폰이 과부하가 걸려서 그런 것이니 자주 전원을 껐다 켜주라는 아주 간단한 처방만 전해 받았다.

 

이렇게 간단하게 처리될 일이야? 심각한 고장이 아니어서 다행이었지만 허탈했다.

 

집으로 오는 길에 테스트 해보니 정상작동. 매일 한번씩 점검 차원에서 핸드폰을 껐다가 켜야겠다. 그동안 무지하게 복잡했을 스마트폰 속사정을 생각해본다. 나도 여러 고민들로 마음이 복잡해 응급실을 찾은 것처럼 전원을 자주 꺼주지 않아 계속 일을 해야만 했던 스마트폰도 버티다 버티다 멈춰버린 것이 아닐까 하고. 마음이 복잡하고 생각이 가득차서 외부와 접촉을 차단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치 나처럼.

 

사람이든 기계든 쉼없이 작동할 수는 없다. 인간이 쉬어가며 비워가며 살아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기계 역시 가끔은 전원을 끄고 쉼표 찍을 시간이 필요하다. 다만 스스로 전원을 끌 수 없으니 주인의 손에 그 휴식의 운명이 달렸다고 하겠다. 나처럼 세심하지 못한 주인을 만나면 스스로 멈춰버리는 걸 선택하는 스마트폰. 이름 그대로 스마트하기에 머릿속이 복잡해도 폭발하지 않고 조용히 멈춰버리나 보다. 조금 더 바라자면 미리 전원 좀 꺼주라고 알려주면 더 좋겠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