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일상

슬로우 푸드를 품은 패스트 푸드

꿈트리숲 2021. 2. 25. 06:00

 

네이버 이미지/부민곳간의 계절반찬 블로그

 

슬로우 푸드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친환경적으로 정성껏 키운 재료들을 가지고 시간과 정성을 들여 만든 음식이 떠오른다. 왠지 슬로우 푸드는 맛은 다소 심심하더라도 건강에는 더 좋을 것 같은 느낌이다. 우리에겐 세계가 인정하는 슬로우 푸드들이 있다.

 

주로 아플 때 먹긴 하지만 부드러워 소화가 잘 되는 죽이 있고, 묵혀야 더 맛있는 된장, 간장이 있다. 김장도 대표적인 슬로우 푸드가 아닐까 싶다. 난 여기다 하나를 더 추가한다. 시래기국이다. 겨울 김장 무를 다 수확해서 무의 흰 본체는 김장에 쓰고 무청 부분을 잘 말렸다가 비타민 섭취가 쉽지 않은 겨우내 먹는 음식이 시래기다.

 

시래기의 정확한 뜻은 푸른 무청을 새끼 등으로 엮어 겨우내 말린 것을 말한다. 겨울철에 모자라기 쉬운 비타민과 미네랄 식이섬유소가 골고루 들어가 있어 건강에 좋은 웰빙식품이라고 할 수 있다. 시래기를 먹으려면 겨울 초입에 밭에서 무를 수확하고 무청을 따로 떼어 얼마간 말려야 먹을 수 있기에 슬로우 푸드일 수밖에 없다.

 

잘 말린 시래기는 불리고 헹구고 데치고 껍질을 벗겨서 국을 만드는 과정을 거쳐야 하기에 결코 패스트 푸드가 될 수 없다. 

 

어릴 때는 도대체 시래기를 무슨 맛으로 먹는지 알 수가 없었다. 엄마가 한 번 먹어보라고 권하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고개를 뒤로 내뺐었다. 지금은 뜨끈한 시래기국을 먹으면서 이 맛있는 걸 왜 싫어했지?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다행히 딸은 고개를 뒤로 내빼지 않고 오히려 코박고 시래기국을 먹는다.

 

엄마 곁에 살때는 엄마표 시래기국을 얻어 먹고, 1회 분량씩 소분해주시면 냉동실에 쟁여 놓고 먹고 싶을 때마다 끓여 먹었다. 이제는 내 손으로 시래기를 불리고 삶고 소분을 한다.

 

며칠 전 장보러 갔다가 괜찮은 시래기가 보여 두 봉지나 샀다. 살 때 마음은 세 봉지를 살까 싶었는데, 집에 와서 불리고 껍질 벗기고 하다보니 왜 두 봉지나 사서 이 고생인가 할 정도로 일이 만만치가 않았다. 하다가 소파에 누워서 쉬고 다시 하면서 말린 시래기가 시래기국으로 탄생하기까지 이틀이나 걸렸다.

 

시간도 체력도 필요한 시래기국 만드는 과정이 싫어서 데쳐서 파는 시래기를 사 본 적이 있지만 질겨서 맛이 없었다. 맛있는 걸 먹으려면 수고를 들여야 하는 것인가하고 받아들인다.

 

시래기국을 끓여 점심에 딸과 함께 밥을 먹는데, 시래기국에 밥 말아서 김장 김치 한 조각 얹으니 이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맛이다. 아무 말없이 그냥 크~~~ 캬~~~ 감탄사만 연발하면서 한 그릇을 뚝딱했다.

 

슬로우 푸드인데 10분 만에 순삭한 시래기국. 무청이 시래기가 되기까지 몇 달이 걸리고, 시래기가 시래기국이 되기까지 이틀이나(나의 경우만 그럴수도) 걸리는데 먹는덴 10분이라니. 패스트 푸드가 따로 없다.

 

천천히 시래기에 담긴 긴 시간과 겨울의 찬 바람, 눈발까지 음미하면서 먹으면 더 맛있었을까? 그런데 시래기국 한 숟갈을 뜨면 그런 생각 할 새도 없이 금세 한 그릇이 비워진다. 내일은 먹을 때 시래기에 담긴 시간과 계절을 음미하며 슬로우 푸드처럼 먹어봐야겠다.

 

 

시래기국 만드는 과정

 

1. 말린 시래기를 뜨거운 물에 담가서 반나절 불립니다.

 

 

2. 불린 시래기는 물에 여러번 헹궈서 시래기에 묻은 흙과 먼지를 씻어냅니다.

3. 헹군 시래기를 냄비에 담고 삶아줍니다.

4. 삶은 시래기는 삶은 물에 그대로 담궈 식힙니다.

5. 식은 후에 시래기를 만져보면 물렁물렁한데요. 이때 시래기의 얇은 비닐 같은 껍질을 벗겨줍니다.

(껍질 벗기지 않고 그대로 드셔도 좋으나 전 식감이 좀 질기더라고요)

 

 

6. 나중에 먹을 분량은 시래기 삶은 물을 부어서 한 묶음씩 소분해서 냉동보관 합니다.

(삶은 물을 함께 넣어주는 이유는 그래야 시래기가 질겨지지 않는다고 하네요)

 

 

7. 드디어 시래기국을 끓입니다. 전 된장과 다진 마늘, 다진 파, 청양고추, 고추가루 넣고 조물조물해서 육수 넣고 푹 끓입니다. 마지막에 들깨가루를 좀 뿌려주면 완성입니다.

 

 

8. 한 숟가락 크게 떠서 김치 얹어서 한 입 넣으면 세상 근심 다 사라집니다.

 

슬로우 푸드를 품은 패스트 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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