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책

내가 유난히 좋아지는 어떤 날이 있다

꿈트리숲 2021. 2. 26. 06:00

블로그를 시작하고 1년쯤 되었을까 어떤 분이 비밀댓글로 독서 모임을 물어봐 주셨다. 친절한 블로거 빙의해서 상세하게 알려드리고 독서 모임에 한 번 나올 것을 권유도 드렸었다.

 

독서 모임에 관심 있는 분들이 많기에 또 그 정보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기에 그런 분 중의 한 분이라 생각하고 넘겼었다. 그런데 이틀 뒤 독서 모임에서 신입회원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그분을 만났다.

 

소개 멘트에서 내 얘기가 언급되어서 난 얼른 댓글 속의 닉네임과 그분을 매칭해 보았다. 닉네임 나겸맘. ‘나겸이의 엄마시구나. 나겸이도 독서 모임에 관심 있는 것 같았는데, 같이 오지 않았나?’ 나름 짬밥으로 머리를 마구마구 굴렸다.

 

독서 모임 끝나고 잠깐 티타임을 가지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그동안 독서를 쭉 해오셨다고 해서 어떤 책들을 읽어오셨는지 정말 간 크게도 무식하게도 여쭈었다.

 

“자기계발서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고 주로 성장 소설을 많이 읽어왔어요.”

‘네?! 성장 소설이라고요?’(마음속으로 엄청나게 놀랐는데 겉으론 태연한 척하면서)

“아~~ 그러시군요. 앞으로 나비에 자주 나오셔서 같이 책 나눔 하면 좋겠습니다.”

 

성장 소설을 읽는다는 분을 살면서 처음 만났다. 성장 소설이라 하면 주로 청소년 소설일 텐데…. 어른이 되어 그런 부류의 책을 읽는다는 사람을 여태껏 본 적이 없어서 너무 신기하게 생각되었다. 같이 독서모임에 갔던 딸도 놀라고 집에 와서는 남편에게 오늘 만난 신입회원에 대해 블라블라…. 한참을 떠든 기억이 난다.

 

그리고 며칠 뒤 블로그 댓글에 남겨져 있던 나겸맘님의 닉네임을 클릭해봤다. ‘어? 티스토리 블로그로 연결이 되네?’ 지금도 그렇지만 2년 전에 티스토리가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 블로그에 댓글 쓰시는 분 중에서도 티스토리 블로거는 두 분 정도 될 때였기에 나겸맘님이 티스토리 블로거라는 게 새삼 놀랍고 반가웠다.

 

내가 처음 클릭했던 글이 ‘거리를 두면 보인다’였다. 난 그 글을 읽고 쇠망치로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이건, 그냥 블로그 글이 아니라 전문 작가의 글이 아닌가. 이런 분을 내가 감히 어떤 책들을 읽으셨냐고 물어봤던가?’ 하면서 낯이 너무 뜨거워졌다.

 

혹시…. 작가님이신가? 네이버 검색 들어가 봤다. 검색에는 안 나오네. 예비 작가님이신가?

얼마 뒤 예스24에서 아이 책 고른다고 이리저리 검색하다가 나겸맘님의 본명과 같은 이름을 맞닥뜨렸다. 서...설마 같은 분?


얼마 전 인터넷 서점에 예약 걸어 놓은 책이 오늘 도착했다. 제목이 내 마음을 후벼 판다.

 

 

“내가 유난히 좋아지는 어떤 날이 있다.”

 

내가 2년 전 그날 또박또박 검색창에 입력했던 그 이름. 김리하 작가의 첫 에세이집이다. 오자마자 쭉 읽다가 바로 그…. 파리 개선문에서 거리 두기를 배우는 그 글을 만나고 눈과 마음이 멈추었다.

 

나겸맘님은 나겸이의 엄마가 아니었고, 나의 겸손한 마음의 줄임말이었다. 나겸맘님은 그냥 블로거가 아니었고, 글 쓰는 작가였다. 그녀의 삶과 글과 말은 어떤 때는 다정하게 때로는 뜨끔하게 나에게 지혜로 다가온다. 그럴 때면 진짜 내 모습을 향해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우리를 이어준 신기한 인연이 있어 이 책이 내 손에까지 왔다. 두고두고 아껴가며 읽을 작정이다. 책 속의 글 한 꼭지를 읽는 날마다 내가 유난히 좋아지는 날이 될 것 같기 때문이다. 작가님과 만난 그날이 내가 유난히 좋아지는 날이었다.

 

내 자신이 그럭저럭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우연찮게 발견하는 날이면 나는,

내가 유난히 좋아지기도 한다.

이 책을 펼친 모든 이들이 다른 누구보다도 가장 먼저,

자신을 아끼고 사랑해 주었으면 좋겠다.

-프롤로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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