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일상

자동차 연료 경고등이 켜지면

꿈트리숲 2021. 3. 5. 06:00

운전을 시작한 지 20년이 훌쩍 지났다. 고속도로 국도 가릴 것 없이, 여러 지방을 넘나들며 운전을 해왔다. 그러나 나의 운전 경력은 거의 시내 주행으로만 쌓아왔다고 할 수 있다.

 

난 운전하는 것을 좋아한다. 운전을 좋아하기에 더 편안한 운전을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남편은 운전을 싫어해서 가족이 함께 움직일 때면 주로 내가 운전하는 편이다. 둘 다 운전을 싫어했으면 어쩔뻔했을까 생각하니 그런 면에서는 잘 만난 듯하다.

 

딸은 태어나고 2주 후부터 내가 운전하는 차를 타서 그런지 엄마가 운전하는 차를 타면 참 편하다고 말한다. 딸의 평가 덕에 나름 베스트 드라이버라고 생각했다. 난 안전제일 주의 드라이버니까.

 

안전제일주의 운전자라도 사고를 비켜 갈 수는 없었다. 내가 낸 사고는 없었지만, 가만히 있는 내 차의 뒤태를 들이박은 경우가 이제껏 세 번 정도 있었다. 한번은 범퍼를 교체하고 두 번은 사과만 받고 끝냈다. 사고는 나만 조심한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오랜 기간 운전하면서 터득했다. 그럼에도 무사고의 첫 번째 조건은 내가 먼저 안전운전하는 것이다.

 

안전운전하면 교통법규 잘 지키기, 운전 중 딴짓하지 않기, 전후좌우 잘 살피기 등이 떠오른다. 그런데 이런 법규나 의무만 잘 지켜서는 완벽한 안전운전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안전운전에는 내 차의 상태를 꼼꼼히 살피는 것도 포함되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안전제일주의 베스트 드라이버에 오점을 하나 남기는 일이 생겼다.

 

구글이미지

며칠 전, 자동차 연료 경고등에 불이 들어왔다. 내 차는 보통 잔여 주행거리 50~60km 남았을 때 불이 들어온다. 불이 들어오면 바로 기름을 넣는데 날이 추워서 비가 온다는 핑계로 이틀 정도 미루었다.

 

그 사이에 동네 마트만 몇 번 돌았기에 기름이 충분할 거로 생각했다. 그저께 이사할 집에 들렀다가 돌아오는 길에 주유소를 찾다가 못 찾아서 평소 자주 가는 주유소로 가야겠다고 달리는 중이었다. 신호에 걸려서 멈춰 섰다가 다시 출발하려고 액셀을 밟는데 갑자기 차의 속도가 현저히 줄어드는 게 느껴졌다.

 

살면서 난생처음 하는 경험. 심히 당황해서 어... 어. 하다가 재빨리 핸들을 움직여 도로 한가운데 완충지 같은 황색 선 그어진 곳에 주차했다. 말이 주차지 거의 하드 캐리 하듯 끌고 가는 느낌이었다.

 

자동차 보험 긴급출동 서비스를 요청했다. 도로에서 기름이 바닥나서 비상 급유를 하다니!!! 정말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럽고 한심하게 느껴졌다. 한 십여 분 기다리니까 긴급출동 차가 왔다. 조금만 기름통 하나를 들고 오시는 분. 어찌나 반갑던지. 코가 땅에 닿도록 연신 감사 인사를 했다.

 

친절하신 선생님 덕에 구사일생

기름을 다 넣고 인사하고 가려는데, 그분께서 일단 시동을 한번 걸어보라고 하셨다.

“기름 넣었는데 당연히 시동 걸리겠죠.”

그래도 한번 걸어보라고 하셨다. 시동이 안 걸렸다. 두 번 세 번 시도해도 마찬가지. 나 대신 서비스 오신 분이 해보는데 시동은 여전히 안 걸렸다. 기름 바닥났다고 배터리도 자포자기한 것인가…. 결국엔 배터리 충전까지 해서 간신히 집에 올 수 있었다.

 

그동안은 연료 경고등을 너무 무시했다. 경고등이 들어와도 내가 기름 넣을 때까지 잘 달릴 줄만 알았다. 경고를 우습게 알면 진짜 감당 못 할 큰일이 생긴다는 걸 몸소 체험하고 나니 이제는 경고등이 켜지기 전에 기름을 넣어야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내 삶에도 경고등이 켜지면 안전운전을 할 수가 없다. 건강의 적신호가 켜진다든지, 관계에 빨간불이 들어온다든지 하면 삶이 무기력해지고 의욕이 사라져서 인생길의 안전운전을 약속할 수 없다.

 

경고등은 더 큰 위험을 막기 위한 일종의 안전장치이다. 그러니 경고가 들어오기 전에 미리 주의하고 경고가 들어온다면 자책보다는 내 삶을 다시 재점검하는 시간으로 가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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