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일상

무인도 탈출기(고딩 1주일 후기)

꿈트리숲 2021. 3. 16. 06:00

이사와 아이 고등학교 입학이 며칠을 사이에 두고 진행되었던 탓에 아이는 새집 적응과 더불어 학교 적응도 함께 해야했다.

 

고등학교엔 중학교 1학년 때 같은 반 친구였던, 그러나 일찍이 전학을 갔던 친구 1명(그 친구는 다른 반) 외에는 아는 친구가 전혀 없어 입학식 날 무인도에 있다가 살아 돌아왔다고 말했던 딸.

 

그래도 한 주 등교하고 한 주는 온라인 수업이니 무인도에 있는 기분도 주 5일만 느끼면 될 것 같아서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아이 학교 3학년에서 확진자가 나왔다. 3학년은 전면 등교수업에서 2주 비대면 수업으로 바뀌고 그에 맞춰서 1, 2학년은 매일 등교하게 되었다.

 

내심 전 학년 비대면이기를 바라더니만…. 기대와 다르게 무인도 생활을 계속해야 한다고 걱정하며 등교하는 아이를 보며, 아이나 어른이나 새로운 환경에서 사람을 사귀는 게 쉽지가 않구나 싶었다.

 

넉살이 좋으면 낯선 이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걸고, 통성명도 하면서 어색함을 허물어 버릴 수도 있건만. 딸은 먼저 말을 걸 용기가 안 생기나 보다. 하긴 나도 낯선 곳에서 튀지 않도록 경계하는 성격이니 누구 탓을 할 수도 없다.

 

자주 만나야 친구도 사귈 텐데, 요즘은 자주 만나지도 못하고 마스크까지 쓰고 있으니 친구 얼굴도 못 알아봐서 친구 사귀기가 더 어려울 것이다. 한 달쯤 지나면 친구 좀 생길까…. 이런 나의 걱정을 아이가 한 방에 날려버렸다.

 

이틀째 등교한 날, 아이가 집에 오자마자 학교 이야기를 늘어놓는데, 어찌나 할 말이 많은지 나는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아이 말을 흘리지 않고 받아내기 바빴다.

단체 사진 찍는다고 반 친구들이 운동장에 모여 있는데 뒤늦게 합류하게 된 딸.

 

“여러분!~~ 저도 00반입니다!~~”

라며 큰 소리로 친구들을 부르며 두 팔 벌리고 달려갔다고 한다.

“네가? 그런 말을 했다고? 대박!

그래서 친구들 반응은?”

“다들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눈으로는 쟤 뭐야? 하며 쳐다보더라고.

개의치 않고 아이들 틈에 끼어 단체 사진 찍었어.”

 

친구들 반응이 충분히 이해된다. 아마 나라도 그런 반응을 보였을 듯. 마치 큰 과제를 하나 해결한 것처럼 아이 얼굴에는 뿌듯함이 가득했다. 그러면서 덧붙인다.

“친구들도 사귀었어. 벌써 7공주 단톡방도 만들고.”

속전속결이다. (하긴 딸은 초등 5학년때 인천으로 전학한 날 바로 친구들과 떡볶이를 먹고 오긴 했다)

 

반 아이들이 친한 애들끼리 몇 그룹으로 나뉘어 있는데, 자신은 아는 친구 하나 없어서 무인도에 있다가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가서 자기도 끼워달라고 했다고 한다.

“진짜? 네가 그랬다고? 넌 나랑 같은 과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만. 몰라봐서 쏴리.”

 

집에서는 온갖 유머와 몸 개그를 펼쳐도 멍석 깔아주면 못하는 성격이라 여겼건만, 아이를 다 아는 것이 아니었다. 마냥 아이 같은 모습도 넉살좋은 고등학생의 모습도 모두 가지고 있었던 걸 새삼 느끼게 된다.

 

“엄마! 나 이참에 반장 선거에도 한 번 나가보려고.”

“뭐... 뭐라고? (내가 잘못 들었나? 귀 한번 파고. 중학교 때는 권유를 해도 싫다고 손사래를 치던 아이였는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됐어?”

“도전하면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해보고 싶네.”

아는 친구, 심지어 같은 학교에서 온 친구가 한 명도 없는 무인도에서 반장 출마라니…. 너의 도전 정신에 박수를 보낸다.

 

40년 넘게 살아보니 인생은 도전하는 사람에게 많은 열매를 내어 주더라. 그 열매가 전부 달콤하지만은 않았지만, 그래도 분명 이로운 열매더라고.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수많은 도전에서 알아가길 바란다.

적어도 이번 무인도 탈출 도전은 달콤한 열매인 것만은 분명해 보임.

 

 

Yuiizaa September/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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