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잘해주는 예쁜? 엄마
초등 5학년부터 방학 동안에 하루 한끼, 평소에는 주말에 한 끼를 아이더러 책임지라고 했다. (아이를 너무 부려 먹는 겁 없는 엄마)

요리에 별 관심 없는 나와 달리 아이는 이것저것 만들어 보는 것을 좋아했고, 베이킹도 곧잘 하기에 밥 한 끼 만드는 건 큰 어려움 없이 해 낼 거라 생각했다. 또 시켜보니까 그럭저럭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내서 더 믿고 맡길 수 있었다.
작년 한 해 거의 집에 있어서 내내 아이 밥을 준비하는 게 힘에 부쳤다. 방학과 별반 다르지 않아 점심 한 끼는 딸더러 준비하라고 했더니 지금 학기 중이어서 그렇게 할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학기 중이라면 밥도 학교에서 먹어야지. 왜 나는 계속 삼시 세끼를 준비해야 하는 거냐?”
“코로나 상황이라 그런 거지. 어쨌든 학기 중이니까 평일 점심을 내가 준비할 수는 없어.”
매정하게 자기 할 말 따박따박 하는 아이에게 억지로 점심 준비를 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꾸역꾸역 1년을 돌밥 하면서 보내고 올해는 학교에 꾸준하게 가고 있어서 돌밥에서는 잠시 벗어난 듯싶다.
고등학생이 되고 눈에 띄는 변화는 아이가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늘어난 것, 그리고 학교 수업이 늦게 마친다는 것이다. 머리를 많이 써서 배가 빨리 꺼지는지 수시로 먹을 것을 찾는다. 간식거리를 쟁여놓지 않는 우리 집 냉장고는 아무리 열려라 참깨를 외쳐봐야 뾰족한 묘수가 없다.
아이들이 공부에 전념할 수 있도록 다른 엄마들은 삼시 세끼뿐만 아니라 간식도 잘 준비한다고 하던데, 나도 그렇게 바뀌어야 하는지 마음이 왔다 갔다 한다. 그러나 몸은 요지 부동이다. 우리네 부모님들은 자식 입에 먹을 것이 들어가면 당신은 먹지 않아도 배부르다고 하셨다. 나는 아직 그런 배부름을 느껴보지 못해서 그런지 내 영혼까지 불태우며 음식을 만들고 싶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밥은 물론이고 간식까지 자진해서 만들 때가 있다. 어쩌다 한 번씩 엄마로서 해도 너무 한다 싶을 때, 마치 나 자신이 직무유기를 한다고 느껴질 때 무거운 몸을 움직인다.
일단은 고객의 의중을 물어본다.
고객의 의중을 파악했으면 최소 노동을 투입할 방법을 모색한다.
이때 도와줄 손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헬퍼는 나의 체력과 시간을 아껴줄 존재이기에 칭찬은 필수)
군소리 없이 음식을 만들어주고 최대한 만족도를 끌어올린다.
향후 몇 주간 우려먹을 수 있는 전략이다.


얼큰한 김치찌개 요청이 들어와서 비주얼에 있는 힘 다 주었다.
쑥국이 맛있다 하여 3일 내내 끓여 대령했다.
모닝빵 샌드위치 먹고 싶다 하여 아주 그냥 크게 만들어 드렸다.

먹을 수 있을 때 많이 먹어 두렴. 얼마간 간식 보릿고개를 넘어야 할 터이니. 언제 또 이 엄마의 마음이 내킬지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르고. 삼시 세끼 밥 잘해주는 예쁜 엄마는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거 아닐까?
난 그저 밥 제때 주는 (간헐적)마음씨 예쁜 엄마로 셀프 만족하련다.
슬기로운 엄마생활 #1 -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에 만족할 줄 알아야 정신 건강에 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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