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일상 82

어른을 기다리다

어른은 품격이 있습니다. 구구절절 자신을 뽐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그것이 어른의 경지라고 배웠어요. 어른은 앞에서 길을 열어주는 사람입니다. 새벽에 일어나 이슬을 맞으며 길을 만드는 사람이 어른이지요. 어른은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흔들릴 수 없는 사람입니다. 뒤에서 믿고 따라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그들도 좌표를 잃고 방황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때 어른은 누구에게 의지하고 무엇으로 위로받을까요. 아마도 지나온 시간을 성찰하며 스스로 위로하고 다시 바로 설 것입니다. 앞에서 길을 열어주는 사람은 외롭지만 외롭지 않습니다. 나로 인해 좀 더 편안하게 길을 걸을 뒷 사람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른은 평범함 속에 비범함을 담고 있는 사람입니다. 남들이 허투루 보내는 시간, ..

비움/일상 2020.11.13

월동준비를 슬슬 할 때가 왔어요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합니다. 어제 올 한해 읽었던 책들을 쭉 정리하면서 보니까 저는 가을 한가운데라고 할 수 있는 10월에 오히려 독서의 양이 제일 적었더라고요. 10월 한 달 뭐 한다고 책을 못 읽었지 하면서 지나간 그림일기를 들춰보았습니다. 치과 치료 다닌 날이 종종 있었고, 볼일 보러 외출도 잦았더라고요. 그리고 책 한 줄 읽고 한참 생각하고 한 페이지 읽고 책을 덮기도 해서 딴생각이 많았던 한 달이기도 했습니다. 가을은 참 이상한 계절이다. 조금 차분해진 마음으로 오던 길을 되돌아볼 때, 푸른 하늘 아래서 시름시름 앓고 있는 나무들을 바라볼 때, 산다는 게 뭘까 하고 문득 혼자서 중얼거릴 때, 나는 새삼스레 착해지려고 한다. 나뭇잎처럼 우리들의 마음도 엷은 우수에 물들어 간다. 가을은 그런 ..

비움/일상 2020.11.05

내 마음에 시선을 고정하고... 컨투어 드로잉

제가 올해 1월부터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첫 한 달은 수채화 일러스트를 했고요. 둘째 달은 선생님을 바꿔서 수업했는데, 처음 접하는 수업내용에 조금 당황했었습니다. 이름하여 ‘컨투어 드로잉’인데요. 그림을 그리시는 분들은 아~ 하실 용어인데, 그림 문외한인 저는 네? 뭐라고요? 하며 두 번 세 번 다시 물었던 용어입니다. 난 수채화 하러 왔는데, 선생님은 왜 이상한 걸 시키시는 걸까?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그렸어요. 관찰력과 집중력을 키울 수 있어서 그림 입문자인 저에겐 꼭 필요했던 과정이었습니다. 그림 배운지 11개월 차 되면서 ‘그림은 역시 관찰력이 뛰어나야 하는구나’를 수십 번 느끼고 있는데요. 사람 얼굴 하나 그리는데도 눈의 위치, 코의 높낮이, 머리카락 방향 등 관찰력을 많이 필요로 하더라..

비움/일상 2020.11.03

바나나는 갈색 반점을 만들며 익어갑니다

제가 초등학생 때만 해도 바나나는 무척 비싸고 귀한 과일이었습니다. 바나나를 판매하는 단위도 지금의 한 송이가 아니라 낱개 하나씩 팔았거든요. 낱개 한 개의 값이 거의 4,000원 정도 했었어요. 그래서 지금처럼 무시로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날만 먹을 수 있는 과일이었어요. 소풍날이나 생일, 어린이날 등 먹을 수 있었던 바나나가 지금은 하루에도 몇 개씩 먹을 수 있을 만큼 흔해졌고 가격도 싸졌어요. 싸니까 한 송이씩 사두고 하루에 한 개씩 먹고 있는데요. 다 먹어갈 때쯤이면 바나나에 갈색 반점이 많이 생겨서 식감이 많이 떨어지곤 합니다. 바나나가 언제 가장 영양가 높고 맛있는 때 인지 혹시 아시나요? 샛노란 바나나에서 진한 노란색으로 바뀌며 갈색 반점이 점점이 생길 때가 가장 맛있다고 합니다..

비움/일상 2020.10.27

그것이 알고 싶다 - 대추와 밤의 진실

논어를 공부하면서 도올 만화 논어를 알게 되고 재밌게 읽었어요. 아무 때나 아무 페이지나 펼쳐 읽어도 변함없는 재미를 줍니다. 요즘 온·오프라인 함께 논어 필사를 다시 하면서 도올 만화 논어를 또 읽고 있는데요. 재밌으면서도 꼭 알아두면 좋은 정보가 있어 나누고 싶었어요. 이전에는 혼자만 새로운 것 알았다고 우쭐댔다면, 지금은 아는 게 있으면 뭐라도 하나 더 나누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야말로 BBC vs ABC입니다. BBC가 뭐냐고요? 영국 방송사 이름 같죠? 요즘 코로나 이전과 이후를 나누면서 BC vs AC 얘기를 많이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블로그 이전과 이후의 저의 마음을 비교해보려 단어를 만들어봤어요. BBC는 Before Blog Capability, ABC는 After Blog Capab..

비움/일상 2020.10.20

추석 잘 보내셨나요? - 추석인사의 바른 표현

추석이 지난 지 보름이나 됐는데, 뜬금없이 웬 추석 인사냐고요? 우리가 흔히 하는 추석 인사가 어법에 맞지 않다는 걸 알고계셨나요? 명절이면 어김없이 펼쳐지는 현수막을 볼 때마다 저는 좀 갸우뚱했었어요. '되세요'는 주어와 보어(위 문장에서는 한가위)가 일치하는 동사라고 배웠는데, 한가위나 명절은 듣는 사람(위 문장들에서 생략된 주어)과 같다고 볼 수 없거든요. 명절 인사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문자로 좋은 하루 되세요. 편안한 밤 되세요. 등의 인사를 받곤 하는데요. 워낙 많은 사람이 ‘되세요’ 어미로 인사를 하기에 제가 잘못 알고 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의 이런 궁금증을 해결해주는 기사를 만났어요. '넉넉한 한가위 되세요'의 서술어 '되다'는 앞에 보어(補語)의 도움 없이 쓰일 수 없다. 따라서..

비움/일상 2020.10.16

스며드는 것

추석이 얼마 남지 않아 고향에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시 고민(1차 고민)이 되었어요. 몸도 아직 100% 컨디션이 아니고 코로나 바이러스 걱정도 되고 해서요. 부모님께 전화드렸더니 ‘올 생각을 말아라’ 하셔서 고민이 바로 해결됐습니다. 부모님 뵈러 가는 대신 뭐라도 보내드려야겠다 싶어 뭐가 좋을까 고민(2차 고민)을 잠깐 했는데요. 수산시장에서 철 만난 꽃게를 보고 바로 선물로 낙점했습니다. 부모님께서 맛있게 드시던 모습이 떠올라 멋진 선물이 되겠다 생각이 들었죠. 과일 선물이나 기타 건강식품 선물은 온라인에서 손가락 몇 번 클릭하거나 전화 한 통이면 택배 배송이 되었는데요. 해산물 택배는 처음이라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얼음이 든 아이스박스에 담겨 온 꽃게. 당일 연평도에서 조업한 꽃게라고 하..

비움/일상 2020.09.17

탐욕과 인색을 멀리하고 싶나요?

신문 기사를 보다가 탐욕과 인색에 대해 재미난 실험 기사가 나와서 유심히 봤어요. 처음엔 실험 내용이 바로 이해되지 않아 읽고 또 읽었는데요. 매주 목요일 칼럼으로 나오는 김경일 교수님의 CEO 심리학 코너입니다. 뉴질랜드 오클랜드 대학에서 소를 키우는 실험을 했대요. 사람들에게 소를 70마리 키우는 과제를 주는데 64마리 미만으로 떨어지면 게임에서 탈락입니다. 한 라운드씩 진행되면 소는 어느 정도씩 늘어나지만 각 단계마다 20% 확률로 재난이 발생하여 소를 잃는 위험도 있어요. 소를 잃지 않으려면 참가자들 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참가자들은 두 종류의 상황에 속하게 되는데요. 자신이 가진 소의 양을 공개해야 하는 조건과 그렇지 않은 조건입니다. 실험 결과 두 종류의 상황에 따라 사람들의 행동에 분명한 ..

비움/일상 2020.09.15

공부의 신이 될까? 일단 스톱워치부터 질렀다

공부의 신 강성태님을 아시나요? 한때 TV 프로그램에서 수험생들 멘토해주시는 걸 잠시 본 적 있는데요. 요즘은 유튜버로 활동하시죠. 제가 예전에 강성태 저자가 쓴 를 보고서 ‘어떻게 하루 18시간 공부할 수 있지? 그게 가능해? 역시 공신이라 불릴 만하군.’ 하며 감탄했던 적이 있습니다. 18시간도 그냥 앉아 있는 시간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오롯이 몰입한 시간이 18시간이라는 거 정말 어마어마한 공부 양인 거죠. 그렇게 공부하니 서울대를 갈 수 있었나 싶습니다. 근데 18시간 몰입한 걸 어떻게 증명할까요? 바로 스톱워치입니다. 작년 가을 겨울 환자로 지내면서 가을 겨울의 시간이 통째로 사라져버린 것만 같아서 올 초에 다짐을 하나 했습니다. 2020 연말에는 뭔가 기억에 남는 일을 했다고 할 만한 걸 해보..

비움/일상 2020.09.01

나는 때론 무소유보다 소유가 더 좋다

몇 년 전 낯선 곳으로 이사를 하고 새로이 인연을 맺게 된 지인 중에 유독 눈물이 많은 분을 몇 분 만났어요. 나쁜 뜻으로 눈물이 많다는 게 아니라 감정이 아주 풍부하다는 뜻에서 눈물인데요. 그만큼 타인의 얘기에 공감을 월등히 잘한다는 거죠. 기쁜 얘기엔 같이 웃는 건 두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아프고 슬픈 얘기엔 금새 눈물로 그 마음을 표현하는 분들입니다. 전 마음은 공감하고 있어도 눈물까지는 잘 흘리지 않는 사람이라 눈물 많은 그녀들을 처음 봤을 땐 마음속으로 적잖이 놀랐습니다. ‘공감을 이렇게나 잘하다니, 너무 감동이야!’ 하면서요. 눈물 많은 그녀들은 저에게 아픔을 나누는 법을, 슬픔을 위로하는 법을 몸으로 직접 알려주었어요. 최근엔 마음을 찐하게 담은 선물로 저를 또 감동하게 해주셔서 제 마음엔 단..

비움/일상 2020.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