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엄마와 딸

화가의 탄생

꿈트리숲 2019. 7. 19. 07:14

매일이 쌓이면 생활 그 자체가 꿈

 

 

저는 어릴 때 많고 많은 꿈 중에서 화가의 꿈도 갖고 있었어요. 그림을 잘 그려서가 아니라 화가라는 직업이 굉장히 멋있게 보였기 때문이죠. 초등 때 지금처럼 방과 후 프로그램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학원도 거의 없던 시절, 학교 파하면 그냥 동네에서 노는 게 다였던 시절이었는데요.

 

 

담임 선생님께서 매일 그림 한 장씩 그리고 가라고 하셨어요. 매일 그리다 보면 실력이 많이 는다고요. 저는 그 시간이 참 행복했습니다. 그 시절 선생님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서요. 선생님께 제가 인정받은 것 같은 느낌도 들었고, 화가수업 받는 것 같은 착각도 들었어요. 중학교 가서는 그림 그리는 걸 손 놓았더니 아직까지 꼭 해보고 싶은 버킷리스트로 남아있습니다.

 

 

제 딸은 제가 못해봤던 것들 즉 음악, 미술, 운동 등을 원 없이 하게 해줬어요. 아이 신체 구조상 발레나 피겨, 리듬체조에 잘 맞는다는 걸 이것저것 해보면서 알았어요. 선생님마다 비율이 좋다는 말씀을 하셨거든요. 게다가 마른 체형에 다리는 길고 시키는 동작들은 곧 잘 소화를 해냈어요. 발레, 피겨, 리듬체조 같은 경우에는 배우는 학원이나 아이스링크를 가야하는 불편함(제가 픽업을 해야 했기에)과 고난위도 동작 같은 경우 보는 엄마로서 너무 마음 아픈 것 때문에 계속 못할 것 같았어요.

 

 

짧게는 1, 길게는 몇 년 하다가 다 그만뒀습니다. 아이는 아쉬워했지만 어른 되어서 취미로 해보라는 권유에 큰 미련을 보이지 않더라구요. !!! 이것이 자신의 적성이구나 싶었어요. 뜯어말려도 하고자 하는 건 좋아하는 거고, 하라고 해도 안하는 건 싫은 거구나 하구요. 아이가 하고 싶다고 할 때까지 기다리는 게 부모의 역할이라는 걸 아이 키우면서 배우게 됩니다.

 

 


 

전 아이 바이올린 할 때 혹독하게 홍역을 치른 적이 있었어요. 그 뻘짓의 흑역사는 다음 기회에 말씀드리고... 오늘은 아이 그림 얘기를 좀 해볼까 해요. 딸은 3살 때 처음 그림을 그렸던 것 같아요. 누가 보면 이거 낙서아닌가요 할 만큼 난해한 그림이죠. 도치맘인 저에게는 화가의 첫 작품이라며 호들갑을 있는 대로 다 떨고 사진 팡팡 찍어댄 작품이었습니다.

 

 

내가 못해본 화가의 꿈을 네가 해야 해 하는 생각 하나도 없었어요. 그냥 끄적끄적 하는 그림 보는 것만으로도 참 좋았습니다. 유치원 때는 그림 한 페이지, 글 한 페이지 써서 책을 만들기도 했는데요. 계절별로도 만들고 주제(거의 다 공주) 별로도 만들구요.

 

 

그 시절 그 책 읽는 게 왜 그리 고역이었던지요. 그 내용이 그 내용 같고 주인공 이름은 또 어찌나 어렵던지. 엄마 아빠가 건성으로 읽는 걸 눈치 채고 아이는 내용 알아맞히기 퀴즈까지 내더라구요. 부모 노릇 하기 참 어렵던 시절이었습니다. 초등 가서도 계속 끄적끄적 그림을 그립니다. 으레 여자아이들은 그림 많이 그리니까 하고 그냥 지켜봤어요. 그때까지만도 참 잘 그린다 그런 느낌은 없었거든요.

 

 

하지만 아이 앞에서는 이 세상 호들갑 다 쏟아 놓는거죠. ‘~~~!!! 어쩜 이런 생각을 했어? 넌 관찰력이 예사롭지 않구나!!! 색감이 너무 조화롭다등등. 매일 그려대는 그림에 매번 다른 리액션, 이거이거 상당히 고난위도입니다. 그런 칭찬에 힘입었을까요? 아이는 초등 고 학년 때도, 중학 2학년인 지금도 계속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심지어 올해는 패드에 그림을 그리겠다며 사달라고 해서 그냥 종이에 그리라고 제가 무식한 말을 했어요.

 

 

종이에 그려서 사진을 찍어 컴퓨터로 보내고요, 컴퓨터에서 마우스로 힘겹게 힘겹게 그리더라구요. 그러기를 몇 개월, 보다 못한 남편이 패드 사주자고 해서 아이패드가 저희 집에 입성했습니다. 왜 진작 사주지 않았을까 후회했습니다. 패드 잡고 4~5시간 꼼짝 않고 그림을 그려요. 지치는 기색 없이 좋아 죽겠다는 얼굴을 하고서요. 좋아하는 건 저런거구나, 재밌는 거 할 때는 저런 몰입이 나오는구나 깨달았습니다.

 

 

 

 

대한민국 미술대전 이런 거에 인생 걸지 않아요. 입체파, 인상파 전혀 모릅니다. 그냥 느낌대로 손가는 대로 그리는거죠. 뭔가를 바라지 않고, 의무감 없이 자연스레 매일 할 수 있는 것. 그것이 화가의 탄생 아닐까 싶어요. 그러면서 자신에게 행복을 주고 누군가에게는 돈을 주고 살만한 가치와 공감을 제공한다면 금상첨화겠죠. 우리집에는 화가가 살고 있습니다. 제가 무척이나 애정 하는 작가이죠. 그 작가의 내일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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