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인문학

셰익스피어 4대 비극 - 햄릿

꿈트리숲 2020. 12. 21. 06:00

 

베네딕트 컴버배치 주연 연극 햄릿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가혹한 운명의 화살을 맞고도 죽은 듯 참아야 하는가. 아니면 성난 파도처럼 밀려드는 재앙과 싸워 물리쳐야 하는가. 햄릿 제3막 1장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햄릿, 오셀로, 리어왕, 맥베스) 중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이자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라는 대사로도 유명한 희곡, 햄릿입니다. 덴마크의 왕자 햄릿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자신의 어머니와 결혼한 작은아버지 클로디어스를 아버지이자 새로운 국왕으로 모셔야 하는 운명에 처했습니다. 아버지의 유령이 나타나 억울하게 죽은 자신의 원한을 풀어달라고 하고 햄릿은 미친 척을 하며 아버지의 복수를 다짐하는데요.

 

여기에서 사느냐 죽느냐 고뇌하는 그 대사가 나옵니다. 가혹한 운명의 화살을 맞고도 죽은 듯 참아야 할지, 아니면 성난 파도처럼 밀려드는 재앙과 싸워 물리쳐야 할지 갈등하는 햄릿인데요. 죽은 듯 참았다면 햄릿이 탄생하지 못했겠죠. 비극의 대명사가 된 햄릿은 성난 파도에 맞서기로 합니다.

 

혹자는 우유부단의 아이콘으로 햄릿을 꼽기도 합니다만 전 무모하게 덤비기보다는 신중하게 복수하려는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미친 척을 하며 복수를 늦추고 더 정확한 증거를 찾으려고 클로디어스에게 연극을 선보입니다. 아버지가 독살당하던 장면을 그대로 재연한 연극을 보고 작은아버지 클로디어스가 견디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자 확신합니다. 이제 칼을 뽑기만 하면 되는데요. 햄릿은 여기서도 복수를 지연시킵니다. 클로디어스의 고통을 더 연장하기 위해서요. 아마도 클로디어스가 양심의 가책으로 괴로워할 것으로 생각했던 거죠.

 

한편 아버지가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르고 아버지 죽음 후 두 달여 만에 재혼한 어머니에게 햄릿은 좀 따져볼 참입니다. 어머니에게 아쉬움과 설움 분노를 쏟아내는데요.

 

제가 실성해서 헛소리한 것이 아닙니다. 어머니, 제발 부탁드리오니 양심에다 그렇게 위안의 고약을 바르지 마세요. 속은 썩어 문드러지니까요. 어머니, 더 늦기 전에 하느님께 죄를 고백하고 참회하세요. 죄로 물든 잡초에 비료를 뿌려 번성시키지 마세요. 햄릿 제3막 4장

 

왕비는 왜 그렇게 빨리 재혼을 했을까요? 클로디어스를 사랑해서일까요? 아니면 그 시대 남자 없이는 여자 혼자서 왕국의 무게를 견딜 수 없어서였을까요? 아무래도 시대의 관습을 따를 수밖에 없었을 듯합니다.

 

이제 어머니에게 진실을 알렸으니 이제 복수의 칼을 뽑기만 하면 되는데요.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치밀한 복수를 준비하려 복수를 지연시키는 줄 알았는데, 어쩌면 햄릿은 다른 이유로 복수를 실행하지 못하고 있었던 듯싶습니다.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하루하루가 단지 먹고 자는 것뿐이라고 한다면 도대체 짐승과 다를 게 무엇인가? 신이 인간에게 이토록 위대한 사고력을 주신 것은 미래와 과거를 내다보라고 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난 짐승들처럼 건망증이 심한 탓인가, 아니면 소심함 때문인가. 영 알 길이 없구나. 사고력을 넷으로 나누었을 때 하나가 지혜고 나머지 셋은 두려움인가. ‘이 일은 꼭 해야 한다’라고 하면서 입으로만 떠들어대고 허송세월하고 있느냐 말이다. 햄릿 제4막 4장

 

두려움이었어요. 아무리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인간이 본능적으로 느끼는 두려움이 햄릿을 머뭇거리게 했습니다. 차라리 두려움을 느끼는 이성이 없었다면 햄릿은 아버지의 혼령을 만나고 바로 복수를 실행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햄릿이 주저하고 머뭇거리는 동안 목숨을 부지하게 된 클로디어스는 햄릿을 제거하려 음모를 꾸밉니다. 이 음모는 비극의 종말을 불러오죠. 애초에 그가 자신의 형을 살해한 순간부터 자신의 손으로 비극의 서막을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햄릿, 왕비, 클로디어스 모두 죽음으로 결말을 맺습니다. 비극은 주인공이 죽어서 비극인 이유도 있겠지만 그 주변 인물들까지 다 죽음으로 몰고 가서 비극의 무게가 더 크게 다가옵니다.

 

 

 

1601년에 만들어진 셰익스피어의 햄릿은 그 시대를 보여주는 이야기이면서도 현재에도 충분히 있을 법한 이야기라는 측면에서 세대를 뛰어넘어서도 계속 사랑받나 봅니다.

 

죽음 앞에서 나약해지고 두려움 앞에서 머뭇거리는 건 1600년대 햄릿이 그랬던 것처럼 21세기 사람도 마찬가지죠. 그런 보편성을 그렸기에 우리는 햄릿에 공감하고 셰익스피어에 열광하는 게 아닐까요? 보편적 인간을 다른 시대에 살게도 만들고 다른 시대를 공감하는 같은 인간을 만날 수 있게 해주는 마법, 셰익스피어가 아니면 누가 그 마법을 부릴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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