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책

랩걸

꿈트리숲 2018. 8. 23. 08:20

모든 시작은 기다림의 끝이다

랩걸(Lab Girl)/호프 자런/알마 

올해 초 책 선물을 받았어요. 10대 때 공부 고민을 함께 나누고 대학생이 되어서는 저의 방황을 다 지켜봤던 친구. 각자 결혼하고 엄마가 되어 육아 얘기하던 친구. 오래 전 책을 제대로 읽어봐야겠다 결심했을 때 주위에 책 읽는 사람에게 조언을 구해보려 떠올린 친구. 진주에 살아서 자주 못봐 아쉬운. . . 그 친구가 저에게 책을 두권 택배로 보내줬어요. 그 중 한권이 랩걸입니다. 상반기에 여러 강의 듣고 또 봐야할 책들이 산적해 있어서 이제서야 읽었어요. 미안하다, 친구야.ㅠㅠ 그리고 고마워~~

랩걸은 제목처럼 실험실(laboratory) 소녀라고 할만큼 실험실 붙박이로 잠도 안자고 씻지도 않고 실험에만 몰두하던 소녀가 과학자가 되어가는 얘기, 20여년 넘게 강의한 교수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연구하고, 탐구 여행을 다니는 여성 과학자 얘기에요. 나무 얘기 한 파트 나오면 본인 실험 얘기 한 부분 나오고, 씨앗 얘기 좀 했다가 연구비 받아내는 얘기도 나오고. . . 실험 얘기나 나무 얘기만 나왔다면 너무 지루했을 법 한데, 다행히 끝까지 볼 수 있게 잘 어우러진 것 같아요.

이 책에서 인상적이었던 건 과학자들의 삶이 제가 생각하는 것 만큼 멋있고, 편하고 있어보일 만큼 대단하진 않다는 거였어요. 연구실의 자재들을 빌려서 혹은 다른 이가 필요없어 처분하려던 것 받아오고, 같이 일하는 연구원의 급여를 줄 돈이 없어 고민하고 그리고 자신의 연구를 인정해주는 학교를 찾아 여기저기 옮겨다니는 모습들까지. 여러 매스컴을 통해 본 과학자의 모습과 사뭇 다르더라구요. 물론 매스컴에서는 포장된 모습만 보여줬을 수도 있고, 아니면 유명한 과학자, 돈되는 과학 분야만 소개 했을 수도 있어요.

p 40 나는 식물의 성장을 연구하고 싶었다. 하지만 돈은 늘 지식을 위한 과학이 아닌 전쟁을 위한 과학에 몰렸다.

p 176 내가 하는 종류의 과학은 '호기심에 이끌려서 하는 연구'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말은 내 연구는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제품이나, 유용한 기계, 환자에게 처방할 수 있는 약, 가공할 만한 무기 혹은 직접적인 물질적 이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p 179 과학 분야의 교수에게 무엇이 가장 걱정인지 물어보라. "돈이오."

지금 세상에서는 로봇과, 우주선, 무인자동차등 보다 우리 생활을 편리하게 만들 수 있는 과학에 더 관심이 가고 또 그런 과학자들이 더 유명한 것은 사실이에요.(저만 그렇게 생각할수도-.-;;) 하지만 우리가 근원적으로 우리 삶의 에너지를 어디서 받느냐를 생각해본다면 식물과 나무에 대한 연구도 참 중요하겠다 싶어요. 그런 연구를 하는 과학자도 다른 과학자 못지않게 연구를 보장 받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책 전반에 '빌' 이라는 과학자, 아니면 연구원이 등장해요. 작가의 남편이 되는건가 했는데, 평생 친구로 연구 동반자로 호프 자런의 옆을 지키고 있더라구요. 남녀 사이에도 절대적인 믿음이 주는 누구보다 편한 관계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어요.

p 152 나무와 곰팡이는 왜 공생할까? 곰팡이는 어디에서나 혼자서 잘 살 수 있지만, 더 쉽고 독립적인 삶을 포기하고 나무 뿌리를 둘러싸고 도와주는 삶을 선택한 것이다. 식물의 뿌리에서 직접 나오는 순수한 당분을 찾도록 적응했다고 할 수 있겠다.

빌은 자신의 능력으로 더 좋은 자리를 찾아 갈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런의 옆에서 자런의 연구가 더 뻗어나갈 수 있도록 도와줬어요. 자런과 빌의 관계가 나무와 곰팡이의 공생 관계 같다고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작가도 빌을 말하기를 자신을 선택하면 함께 따라오는 종합 선물세트의 일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형제라고 얘기 하거든요. 이 대학에서 저 대학으로 연구 자리를 옮기는 큰 이유 중의 하나도 빌의 처우 개선이 한 몫하는 듯 합니다. 살면서 옆에 이런 사람이 있다는 건 정말 큰 행운이에요.

나무에 눈 뜨면서 삶에 대해 눈을 뜨고, 식물의 역사를 연구하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과학자의 얘기, 예상외로 재밌었어요. 제가 에필로그까지 읽은 것 보면요. '모든 시작은 기다림의 끝이다' 라는 책 속의 말을 제가 이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이 책장에서 내내 기다리던 친구의 기다림에 마침표를 찍은 것이라 여기며 또 다른 시작, 새로운 기다림의 끝을 찾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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