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하고 나면 꼭 동네 투어를 한 번씩 한다. 새롭게 살게 될 동네에는 무슨 가게들이 있고, 급할 때 찾게 되는 약국이며 병원은 어디에 붙었는지 알기 위해서다. 몇 년이 될지 모르지만 사는 동안 불편함 없이 지내려면 동네 투어는 필수다.
지난 주말 남편과 함께 동네 투어를 했다. 먼저 아파트 단지 내를 돌며 남편에게 관리 사무실 위치를 알려주고 커뮤니티 이용 방법도 설명해주었다. 아파트 밖으로 나가봤다. 정문 앞 길 건너에는 아파트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벌써 많이 올라와서 1~2년 후면 입주할 것 같다. 2년 뒤 한번 고려해 볼 아파트로 마음속에 찜해둔다.
후문으로 나가니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상가가 즐비하다. 우리 아파트 쪽에는 편의점과 부동산 중개 사무소, 반찬가게, 세탁소, 태권도 학원, 피아노, 영어학원 등이 있다. 길 건너 큰 아파트 단지에도 상가의 업종이 무척이나 다양했다.
피자, 치킨 등 대표적 배달 메뉴의 상가들이 있고, 미용실, 과일가게, 옷가게, 프랜차이즈 빵 가게, 아이스크림 가게, 이름은 다방인데 떡볶이를 파는 가게, 커피숍 등이 있었다. 이전 아파트에서도 상가 풍년의 혜택을 톡톡히 누렸는데, 새로 이사 온 동네에서도 상가 덕을 많이 볼 것 같다.
어?! 붕어빵, 아니 잉어빵 아닌가!!! 지난겨울 붕어빵 찾는 앱, 붕세권을 다운받아 붕어빵 파는 곳을 찾아 헤맸는데, 여긴 그럴 필요 없을 것 같다. 뜨끈하고 바삭한 붕어빵이 먹고 싶을 땐 슬리퍼 신고 쪼르륵 나오면 될 것 같다. 붕세권과 슬세권(슬리퍼와 편한 복장으로 여가, 편의 시설을 즐길 수 있는 주거 권역)을 누리겠다.
연중무휴 약국이 있다. 너무 반갑다. 갑자기 탈이 날 때는 이상하게도 꼭 약국이 문 닫는 주말일 때가 있는데, 연중무휴 약국이 있으니 안심이다. 매일 야간 진료하는 병원도 있고 주말에 환자를 보는 한의원도 있다.
여기에 큰 마트 하나 있어 주면 더할 나위 없겠다 하고 있을 때쯤 내 눈앞에 나타난 이마트. 여기도 대형 마트가 있었구나. 심 봤다!!
자세히 보니 이마트이긴 한데 옆에 글자가 좀 더 있는 것이 아닌가? 에브리데이? 이마트 편의점은 봤어도 이마트 에브리데이는 처음이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그 슈퍼형 마트 뭐 그런 건가? 이마트의 미니 버전, 이마트의 아우뻘 되시겠다. 둘러보니 있을 건 다 있다. 생필품을 비롯하여 과일 채소 정육 수산 건어물 스낵류 레토르트 식품 등 없는 게 없다. 심지어 홍어 삼합도 있음. 형만 한 아우 없다지만 슈퍼형 마트는 내 기준에 형에 버금간다.
갑자기 방송이 나온다. 귀를 쫑긋 세우고 들어보니 오렌지 당도를 맞추면 오렌지를 공짜로 준단다. 냉큼 달려가 종이 하나 받고 당도를 적어냈다. 옆에서 직원이 덧붙인다. 평균 12브릭스 이상 나오니까 그 이상 적으라고 했다.
과일 좀 아는 뇨자답게 거침없이 14.3 브릭스 적어냈다. 남편도 적어내면 좋을 텐데, 남편은 어디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매시 정각에 발표한다고 해서 남편도 찾을 겸 어슬렁어슬렁 매대 사이를 배회했다. 어디선가 나타난 남편이 자신도 오렌지 당도 적어냈다고 했다. 얼마 적었냐고 하니까 12.8 적었다고 한다.
뭐라고요? 평균 12브릭스 이상 나온다고 하는데, 13은 넘게 적지 그랬어요? 내심 아무래도 내가 근사치로 맞추겠다고 하고 정각이 되기만 기다렸다. (이 근자감 무엇?)
5시 정각! 두둥. 오렌지 당도 측정 결과가 나왔다. 11.9 브릭스. 예? 다들 웅성웅성한다. 12브릭스 이상은 나온다면서요? 그래서 높게 적어냈더니 12도 안 나오면 어떡합니까?
공산품이 아니기에 귀여운 투정은 거기까지. 모두 웃으며 돌아갔다. 다들 너무 크게 적어낸 걸까? 근사치로 맞춘 사람으로 남편이 당첨되었다. 공짜 오렌지 5개. 꺄~~~
낮게 적어냈다고 타박했더니만, 괜히 머쓱하다. 오랜만에 남편 어깨에 뽕이 잔뜩 들어갔다. 공짜여서 그런지 오렌지가 유난히 달다. 딸과 나는 남편에게 쌍 따봉을 날리며 맛있게 오렌지를 먹는다.
무얼 받아서도 좋지만, 우리 동네 뭐가 있는지 어떤 이웃들이 장사하는지 알아가는 재미도 쏠쏠하기에 동네 한 바퀴는 남는 장사다. 공짜 오렌지 5개는 낯설고 어색한 동네 냄새를 익숙하고 푸근한 동네 냄새로 바꿔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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