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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별자리는 무엇인가요

꿈트리숲 2019. 4. 17. 06:39

내 영혼에 보내는 러브레터

 

 

당신의 별자리는 무엇인가요? 라고 물으신다면 저의 별자리는 전갈자리라고 대답하지요. 어딘가 사나워 보이고 까칠함과 공격성을 가지고 있는 전갈, 저는 제 별자리가 참 마음에 들어요. 그래서 그룹 스콜피언스 노래들도 좋아했었어요. 단지 전갈이라는 이유만으로요. 제 성격이나 행동들을 보고 엄마는 아들로 태어났더라면 하는 말씀을 자주 하곤 했는데, 저도 제 자신 남자였더라면 할 때가 많았어요. 여자여서 좋은 점 보다 차별대우 받는 불편함과 부당함이 더 많은 것 같았죠. 지금은 그런 것 다 떠나서 그냥 저로 만족하고 좋습니다. 내 안에 여성성이 강하든 남자 같은 성격이 있든지 간에 그냥 인간 정지영이 좋아요.

 

유현준 교수님의 전작들을 재밌게 읽어서 이번에 나온 책에 관심이 갔었어요. 제목에 별자리가 들어있어서 언제 별자리까지 연구했지? 하면서 찜해뒀는데요. 결론은 별자리 얘기가 아니었고 저자의 인생을 만든 특별한 공간들을 소개하는 책이에요. 의미 있는 공간들을 연결해서 지금의 자신을 이루는 별자리를 되짚어보는 것.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공간을 연구하는 건축가가 쓴 <당신의 별자리는 무엇인가요> 된 것 같아요.

제 별자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있을까 내심 기대했는데, 약간 허탈한 면도 있지만 덕분에 나를 만든 의미 있는 공간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게 되어서 좋았어요.

 

p 13 시간을 보낸 공간도 그 사람을 만든다. 이 책은 나를 만든 공간들에 대한 이야기다. 어려서 주어진 부모와 형제는 바꿀 수 없지만, 나이 들어서 만나는 친구와 책과 영화는 선택할 수 있다. 공간도 마찬가지다.

 

저를 키운 60%는 바다입니다. 지금도 바다가 보이는 곳에 살고 있고요. 태어난 곳은 과메기가 유명한 바닷가 마을이었고, 자란 곳은 고래잡이가 유명한 바닷가 마을이었어요. 사춘기때 도시에 사는 친구들이 그렇게 부러웠는데요. 바닷가에 산다고 하면 모두 아버지가 어부인줄 알아요. 물론 아버지 직업 때문에 바다를 마주한 곳에 살았던 건 맞지만 친구들의 헛다리짚는 추측 들을 때마다 우리 아빠 어부아닌데...’ 했었어요. 아버지는 연근해에 기름을 운반하는 유조선 선원이었어요. 어린 마음에 아빠의 직업이 회사원이었더라면 도시에 살았을텐데.’ 하고 많이 생각했었지요. 그때만도 아파트가 지방 도시엔 흔하지 않은 주거형태였거든요.

 

어릴 때 소원, 어른 되어서 원 없이 풀었습니다. 줄곧 아파트에만 살고 있네요. 전 아파트가 좋아요. 건물들이 우뚝우뚝 솟은 빌딩 숲도 좋고, 인공으로 만들었지만 자연처럼 보이는 조형물들도 좋고요. 그런데 신기하게 어릴때는 그렇게 떠나고 싶었던 동해바다가 지금은 많이 그리워요. 매일 볼 때는 소중함을 모르다가 떠나고 나니, 그것이 주는 향수가 크다는 걸 실감합니다.

 

p 87 나는 공간을 감정과 연관시켜 기억한다. 다양한 공간과 그 공간에서 느꼈던 감정들이 한의원 약초 서랍처럼 여러 개 있다. (중략) 그렇게 대단하지는 않지만 다양한 기억들이 나를 먹고살게 한다.

 

이 문장보고 소오름 하며 놀랐어요. 저도 한의원 약초 서랍 얘기를 가끔씩 하거든요. 전 공간에 대해서는 아니고 책을 읽으면서 합니다. 다독하면 약초 서랍처럼 구획이 딱딱 나누어진다고요. 필요할 때 감초서랍 열고 녹용서랍 열듯이 책의 내용들을 각 서랍에서 불러와서 글을 쓰기도 말을 하기도 한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암튼 공간에 대한 감정이 약초처럼 이로운 것이 뭐가 있나 떠올려 보니 저는 공연장을 좋아했었어요. 연극, 뮤지컬, 콘서트 공연장들이요. 그곳에가면 엄마, , 아내, 누구의 친구, 어느 회사의 누구 등 모든 걸 내려놓고 오로지 저 자신만으로 있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미친 듯이 함성을 질러대도 뭐라고 할 사람들이 없고 오히려 더 내질러야 정상처럼 보이니 나를 발산하는데 이보다 더 멋진 곳이 있을까 싶어요.

 

또 한곳을 꼽자면 도서관입니다. 요즘도 일주일에 두서너번은 가는데, 대학때는 도서관에 그냥 살았어요. 자리만 잡아두고 싸돌아다닐 때도 있었지만 제가 좋아했던 사람들은 모두 도서관에서 만났던 듯싶네요. 남편도 도서관에서 처음 봤구요. 혼자 멍때리기 아주 좋은 장소, 책이 있어도 없어도 자리 차지하는데 눈치 보이지 않는 장소. 그곳에서 저의 20대 초반이 영글고 불타고 했습니다.

 

이 책의 마지막 챕터인 보물찾기: 일하는 도시의 시공간제목에 걸맞게 저의 또 다른 공간은 매일 아침 글을 쓰는 곳, 컴퓨터 방이에요. 정말 컴퓨터와 복합기 한 대가 전부입니다. 이 공간에서 중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있어요. 과거도 불러왔다가 미래로 가기도 하고요. 우주를 상상하며 그림얘기도 하는 곳이지요. 그야말로 제 안에 숨어있는 보물을 찾은 장소입니다. 모두가 잠들어있는 새벽 홀로 키보드 또각또각 두드리며, 일하는 도시의 시공간을 가득 채우는 이 기분. 황홀! 그 자체에요.

 

p 411 머릿속으로 별자리를 되짚어본다. 나를 형성한 공간은 어디인가. 지금 나에게 필요한 공간은 어디인가. 내가 지나온 시가지와 골목과 집은 내가 주인이 아니어도 나에게만 반짝이는 빛이 있다. 당신의 도시 별자리는 무엇인가.

 

바다, 아파트, 공연장, 도서관, 그리고 글쓰는 공간. 저는 이 다섯 곳을 연결해서 저만의 도시 별을 만들었어요. 그 외 학교와 일터, 여행지, 자주 다니던 카페 등을 이으면 또 하나의 별이 되고요. 그것들을 모으면 훌륭한 시공간의 별자리가 됩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도 오늘 당신만의 별자리를 찾아보세요. 재밌는 시간이 될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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