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책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 없는가

꿈트리숲 2020. 2. 4. 06:00

죽음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

 

작년 11월에 김민식 작가님 블로그에서 단골손님 독서모임(이하 단독 모임)이 결성됐었어요. <공짜로 즐기는 세상> 블로그에 댓글 출석률 높으신 열 분이 회원이 되셨어요. 지난 2월 1일이 두 번째 모임이었는데, 불행히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여파로 연기가 되었습니다.

 

제가 첫번째 모임을 참석하지 못한 터라 독서모임 진행 방식을 몰라 블로그 이웃, 아리 님께 요모조모 물어봤어요. 지난 모임에서 소개된 책 중에 회원들의 투표로 다음 토론할 책을 선정했다고 하더라고요. 선정된 책을 읽고 토론 준비를 해가는 것이 단독 모임 준비물입니다. 그 책이 바로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 없는가> 입니다.

 

제목에서 죽음이 언급되어서도 그렇지만 책 내용에 환생, 근사체험, 안락사 같은 결코 가볍지 않은 내용들이 나와서 살짝 겁이 나서 며칠을 계속 미루고 미뤘어요. 꼭 읽어야 한다는 생각에 한 장 두 장 넘겼는데, 읽기를 참 잘했다 생각합니다.

 

저의 선입견과는 다르게 책을 읽고난 후의 느낌은 마음이 굉장히 가벼워지는 느낌이었어요. 미래에 대한 불안, 걱정거리 중에 한 가지는 덜었다는 생각에서요. 

 

이 책의 저자 정현채 선생님은 의과대학 내과학 교수로 재직 중에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불안감이 커졌는데,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책을 접하면서 생사관에 큰 변화를 겪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죽음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충실한 삶을 살다가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도록 2007년부터 '죽음학' 강의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저는 존엄한 죽음은 무엇인가 생각해봤어요. 대개 죽음이라는 글자를 우리는 꺼립니다. 예전엔 출생만큼 죽음도 삶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는데요. 20세기 들어서 과학이 발달하고 유물론이 우세해지며 생명연장 의료기술이 발달하게 됨에 따라 죽음을 터부시하게 되었다고 하는군요. 

 

중환자실에서 여러 생명연장 장치를 달고 가족들과 단절된 채로 외롭게 삶을 마감하는 것은 결코 존엄한 죽음은 아닐거예요. 그렇다면 존엄한 죽음이라는 건 어떤 죽음일까요? 

 

가능한 일찍 죽음을 직시하여 자신만의 죽음관을 가지라고 권유한다.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에 의지하다 쓸쓸하고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하지 말고, 일흔이든 여든이든 나름대로 훌륭한 삶을 살았다면 삶의 길이를 무의미하게 연장하기보다 삶을 잘 마무리하는 자세가 필요함을 강조한다. (책날개 일부)

 

죽음을 나와 동떨어져 생각하다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불행으로 여길 것이 아니라 죽음도 내 삶의 한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죽음을 제대로 알고 준비해야 한다고 느껴집니다. 그렇게 된다면 삶을 잘 마무리하는 존엄한 죽음이 될 것 같다 싶어요.

 

이 책을 읽고 남편에게 물어봤어요. 죽음이 뭐라고 생각하는가 하고요. '끝'이라는 대답이 돌아왔어요. 영혼은 있다고 믿나요? 라는 질문에는 없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남편과는 다르게 영혼이 있다고 믿고 싶은 사람이에요. 이 책을 보고서 한층 더 강한 믿음이 생겼습니다. 죽음을 제대로 아는 것은 영혼의 존재를 아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혼은 사라지지 않으며 각 영혼은 거듭되는 환생을 통해 지상의 육체적 존재와 비물질적인 영적 존재 사이에서 진보와 퇴보를 거듭한다. 많은 사람들은 카르마를 징벌의 과정으로 여겨 현생의 삶이 과거 생에서 행한 잘못에 대한 처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카르마는 징벌이 아니라 각 개인이 과거 생에서 행한 실수를 긍정적인 방법으로 보상하는 기회이다. 즉 과거 생에서 무슨 잘못을 했든지 간에 현생에서 바르게 살아, 과거 생에서 미처 완수하지 못한 일들을 끝마치고 극복하기 위한 것이라고 얘기한다. (178쪽)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죽음은 육체의 멈춤입니다. 육체가 이 세상과 단절이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육체가 멈췄다고 해서 영혼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하는군요. 영혼은 차원이 다른 세상으로 옮겨갑니다. 거기서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영혼들을 만나기도 하고요. 과거 생에서의 잘못은 현생에서 업보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고 올바른 방법으로 극복할 기회를 다시 갖는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의 괴로움과 고통은 전생에 지은 죄가 많아서가 아니고 전생에서 해결하지 못한 역경을 잘 극복하기 위해 영혼이 환생하기 전 미리 세팅해 놓은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죽음은 벽이 아니라 문이라고 합니다. 죽음은 소멸이 아니라 이생에서 다른 차원으로 옮겨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소멸이 아니라고 하니 죽음에 대한 두려움, 한결 가벼워집니다. 

 

제가 토지를 읽으며 죽음으로 삶을 완성하다라는 글을 썼었어요. 죽음은 이 생의 삶을 완성하고 죽음으로 인해 다음 삶의 문을 열게 되는가 봅니다. 그렇기에 죽음은 영원히 죽지 않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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