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책

이슬아의 매일 뭐라도

꿈트리숲 2019. 2. 25. 06:34

발언의 지분 골고루 나눠 갖기

제가 얼마전에 김민식 피디님의 2018 독서일기 총정리 강의를 다녀왔었어요. 이제껏 여러 작가들의 강의를 다니면서 한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그날 문득 지금 이시간, 강의를 앞두고 있는 작가는 어떤 생각을 할까, 많은 사람들 앞에 설때 어떤 마음일까. . . 뭐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작가는 글만 잘쓰면 되는가 싶은데, 요즘은 책을 출판하면 책 홍보를 온라인 뿐만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해야 하죠. 그래서 독자들과 만나는 행사를 많이 가지는 것 같아요. 그런걸 좋아하는 작가라면 사람들과 만나는 자리에 적극적일 것 같은데, 그런것이 좀 부담스럽다면 썩 내키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어쩌겠어요. 책은 나왔고, 또 그 책이라는 것이 여러 사람의 협업의 결과물이다 보니 그들을 위해서라도 행사에 나가서 책 홍보에 일조해야겠지요.

그런데 매번 강의를 할 때마다 새로운 내용을 준비하는게 쉽지는 않을거라 생각해요. 예전에 김창옥 강사의 강의를 들었을 때 강사라는 직업의 고충을 잠깐 얘기했었는데요. 사람들이 재밌어하는 얘기를 매번 새로운 얘기처럼 하는 게 힘든 일이라고 하더라구요. 내 기분과 몸 상태와는 상관없이 해야하니 우울할 때도 있다고요. 강사라는 직업이 새삼 힘든 직업임을 느낄 수가 있었죠.

작가는 어떨까요. 내 책을 좋아해서 나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나를 만나러 온 사람들이 백여명쯤 기다리고 있다 생각하면 마음이 엄청 두근두근할 것 같은데, 이것도 지속되면 그런 마음보다는 어떤 새로운 얘기를 준비할까 하는 부담감이 생기겠죠. <월간 채널 예스>를 읽다 보니 이슬아 작가의 인터뷰 기사를 발견했어요. 몰랐다면 그냥 지나쳤을 부분인데, 이슬아 작가의 책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작가의 책 리뷰를 본 터라 이미 이슬아 작가는 저에게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사람이 되었어요.

인터뷰 내용 중에 작가도 책을 내고 인터뷰와 강의, 라디오 출연 등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말을 많이 하게 되었다고 하네요. 그럴때는 기분이 좀 불안했대요.

사람들 앞에서 말을 많이 하고 집에 돌아온 날이면 내가 잘못 살고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떤 자리에서든 일방적으로 말하는 위치에 있으면 불안했다. 질문하거나 듣는 시간이 말하는 시간과 비슷해야 좋은 만남일 확률이 높았다. 발언의 지분이 서로에게 골고루 나뉜 대화에만 머물고 싶었다.

저도 작가처럼 느낄 때가 종종 있어요. 사람들을 만나면 듣고 말하고의 비율이 골로루 나눠갖게 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일방적으로 듣기만 할때, 아니면 제가 말을 좀 더 많이 할 때가 있어요. 그런 날은 집에 오면 피곤해요. 듣기만 한 날은 에너지를 빼앗긴 기분이고요. 말을 많이 했을때는 에너지를 제가 소진한 기분이에요. 그런데 말을 하기도 하고 듣기도 하고 탁구처럼 왔다갔다 핑퐁핑퐁 한 날은 집에 와서도 지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에너지가 더 퐁퐁 솟는 것 같아요.

말이란 것이 할 때도 에너지를 많이 쓰지만 들을 때도 은근히 에너지를 많이 쓰는가봐요. 제가 6~70% 말을 할때는 상대가 너무 말이 없을 때 그 사람의 말을 끌어내려 질문을 많이 할때에요. 그 사람의 취향이나 성향, 근황을 파악하느라 에너지를 쓰게 됩니다. 저는 앞에서도 밝혔듯이 에너지 보전을 위해서라도 주고 받는 대화를 좋아하는데, 일방적으로 말을 많이 하는 사람들은 같은 말을 많이 하는 경향이 있더라구요. 저도 혹시나 무의식적으로 같은 말 반복했던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발언의 지분 신경 써야겠어요.

이슬아 작가는 말을 많이 하고 온 날은 '오늘도 혼자 떠들었구나! 저마다 유구한 역사를 가진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며 내 얘길 들었을까' 하는 마음이 든대요. 사람들마다 다른 경험, 다른 성장 배경을 가지고 한날 한시에 모여 어떤 사람의 얘기를 듣는 다는 것은 서로가 100% 주고 받고는 힘든 일이죠. 자기만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자기 그릇 크기 만큼 담을 것이기 때문이지요. 다만 작가를 좋아하는 마음 없으면 그런 자리엔 모이기 힘든 것도 사실이고요.

하루가 멀다 하고 말하는 자리를 가기 위해 집을 나설 때마다 "내가 뭐라고. . ." 라는 말을 읊조리며 나가는 작가는 이왕 하는 것 잘 해보기로 하고 몇가지 준비를 합니다.

첫째 좋은 에너지를 품고 그 장소에 가는 것이랍니다. 제가 며칠전에 기분에 대해 생각하다 몸의 에너지까지 생각이 연결되어 조금 끄적끄적 했어요. 그걸 잠깐 소개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기분은 몸의 에너지 축적량이다. 몸의 에너지가 기분을 만들어낸다. 몸에 에너지가 많으면 기분이 좋다. 앞차가 갑자기 끼어들어도, 길 가다 누가 내 어깨를 쳐도, 지하철에서 발이 밟혀도 웃음으로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몸에 에너지가 낮으면 상대방이 나를 보고 웃기만 해도 기분이 나쁘다. 비웃는 것인가 의심이 되기도 하고, 호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몸의 에너지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우리 몸은 물로 되어있다. 딱딱한 두피도, 메마른 머리카락도 죽은 피부인 손톱 조차도 모두 수분을 머금고 있다. 물은 파장을 일으킨다. 높고 낮음,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면서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멈춰있지 않는다. 내 몸에서 일어난 파장은 내 안에 갇혀있지 않고 밖으로 퍼져나간다. 그 파장으로 가족이 영향을 받을 수도 있고, 직장이 사회가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

그 물의 흐름은 매일 다르다. 에너지가 높은 날은 물의 흐름이 좋은 날이고, 에너지가 낮은 날은 물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은 날이다. 일정하게 흐름을 좋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에너지가 좋은 날 내가 했던 행동들을 관찰해본다. 그날 했던 행동이나 말이 나의 에너지에 영향을 미쳤을 거니까. 그런 날들의 평균을 내어서 공통적인 행동을 루틴에 넣는다. 좋은 파장을 일으키는 좋은 말을 의도적으로 계속 하자. 어차피 뇌는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분 못한다. 뇌를 속이면서 나의 에너지를 높이자. 높음과 낮음이 공존하도록. 흐름이 원활하도록 변화를 주자. 새로운 일을 시도하자.]

이런 생각들을 했었는데, 이슬아 작가 역시 좋은 에너지를 만드는 것으로 규칙적인 생활을 꼽았어요. 일찍자고 일찍 일어나고 운동하고 일하고 읽고 쓰는 생활을 유지해야 좋은 기분을 가지고 나갈 수 있다고 하는군요. 기분 좋은 날 내가 했던 행동이나 말 잘 기억해서 루틴에 넣고, 평소에도 좋은 습관 유지하는 것이 좋은 기분 유지하는 방법인 듯 싶어요.

이왕하는 거 잘 해보기 위해 준비한 두 번째는 같은 얘기를 반복하지 않는 거라고 해요. 북 토크 때마다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준비하니까 편집자가 그러면 피곤할거라고 조언을 했대요. 작가는 피곤한 것이 같은 얘기 반복해서 부끄러운 것보다 낫다 생각하며 같은 얘기 반복하지 않으려 한답니다. 자기 주장 확실해서 좋네요.

이왕하는 거 잘 해보기 위해 준비한 세 번째는 6만 원짜리 중고 기타와 미니 앰프라고 하는데요. 다소 의외입니다. 이유인즉슨 말이 지겨워질 즈음 노래를 하기 위해서라고 하는군요. 쉬운 코드만 치며 작가가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 준비한 아이템은 생각 보다 괜찮았나봐요. 작가의 정체성을 무한반복 재생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도로 독자들을 만나는 모습이 참 좋아 보입니다.

독자들을 알아볼 새도 없이 나를 보여주기만 하다 행사를 마치고 돌아오며 여전히 "내가 뭐라고, 내가 뭐라고. . . 읊조리는 이슬아 작가에게 이 말을 전해주고 싶어요.

이슬아님 역시 유구한 역사를 가진 한 사람입니다. 누군가에게 그 역사가 잘 전달되었을 거에요. 독자들과 함께 어느 날 유구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쓰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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