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엄마와 딸

수수경단 만들기

꿈트리숲 2019. 7. 2. 07:05

네 인생에 계속해서 햇살이 비추기를

 

 

지난 일요일은 아이 생일이었어요. 꼬물꼬물 생명체로 절 찾아온 게 정말 엊그제 같은데 벌써 키가 훌쩍 자란 중학생이라니... 제가 쏜 화살은 아니지만 시간 화살은 잘도 날아갑니다. 아이 어릴 때는 아이가 기억도 하지 못할 선물들을 많이도 사줬어요. 그 짓을 왜 했나 싶은데, 제 만족이고 욕심이었던거죠. 어느 해 문득 우리 서로 생일에 선물 주고받지 말자고 선언 했어요. 제일 환영하는 건 남편이고, 제일 슬퍼하는 건 딸아이였는데요. 그간 선물 고민이 심했던 남편은 드디어 해방된 기분이었고, 그간의 기억은 없는 그래서 이제 뭐 좀 받아볼까 하는 딸에게는 찬물을 끼얹는 엄마의 폭탄선언이었습니다.

 

장난감 몇개 얹어놓고 무겁다며 아빠를 불렀는데, 이젠 수박 한덩이도 거뜬한 딸

 

생일이 나 한 개인에게는 중요한 날이긴 한데, 이 세상 모두가 다 갖는 생일에 호들갑 떨며 그것도 돈으로 치장한 주고받기 식 선물은 지양하고 싶었어요. 그 대신 전 뭔가를 만들어 아이에게 선물을 해줬습니다. 돌이켜 보니 아이 어릴 때도 전 뭔가를 꾸준히 만들었더라구요. 처음 뭔가를 만들었을땐 아이 낳고 몸이 바로 나빠져서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미안한 마음에 시작했는데요. 이게 하다보니 은근 재밌더라구요. 뭔가에 집중하는 시간도 좋고, 순두부 같은 몹쓸 체력도 쓸모가 있구나 싶어 뿌듯함도 느껴졌지요.

 

이번 아이 생일때도 뭘 만들어줄까 고민을 하다가 수수경단에 도전했습니다. 아이 어릴 때 생일에 몇 번 사다 먹은 수수경단이 참 맛있었다는 기억이 나서 검색 들어갔어요. 인터넷에서 쉽게 만든다는 글들이 제 마음을 확 잡아끕니다. 네이버 쉐프는 못한다고 꾸지람도 없고 어찌나 친절히 알려주시는지... 요알못 저에게는 안성맞춤 선생입니다. 네이버 쉐프가 알려주는 수수경단 만들기 과정은 넘나 쉬워요. 뭐 이건 눈감고도 할 것 같아요. 일요일 아침 팥밥에 미역국, 잡채를 해주고 오후엔 수수경단으로 이어지는 다소 하드코어 적인 스케줄을 짰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구한 수수가루를 찹쌀가루와 섞고 뜨거운 물을 부어 익반죽(저 나름 배운뇨자)이라는 걸 해줄려고 치덕치덕 하는데... !~~~(장탄식) 조금조금 붓다가 한 번에 너무 많이 물을 부었어요. 찹쌀가루가 반죽을 하면 할수록 찰기가 더 생기는 걸 난생 처음 학습하네요. 너무 질척거려 도무지 손에서 떨어지질 않아요. 경단 만들기 실패로 가나요?

플랜 A가 망했다면 플랜 B? 당연히 준비 되었습니다. 사실은 플랜 A였어야 하는걸 쓸 차례가 왔네요. 수수가루를 못 구해서 그냥 수수를 샀는데요. 매장 직원이 믹서기 칼날 곡류 전용 사용해서 갈아야 한다고 하더라구요. 안 그럼 칼날 나간다고요. 우리집엔 칼날 하나밖에 없는데... 싶어 수수가루를 다시 구하러 다녔던 거거든요.

 

수수가루는 전사했으니 이제 수수가 참전할 차례가 왔어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수수를 들이붓고 믹서기 윙윙 해봤습니다. 생각보다 완전 잘 갈리더라구요. 가루 만들기 대성공. 다시 찹쌀가루와 익반죽으로 한몸 되기 시도해봅니다. 좀 전의 참사를 학습했기에 뜨거운 물은 찔끔찔끔 부어주는 걸로 조신하게 반죽 했어요. 예전 친정엄마가 팥죽 새알 빚을 때 익반죽 하면서 뜨거운 손 호호 불어가며 하시던게 생각나더라구요. 진짜 손이 뜨거웠어요. 손목도 아프고 해서 대충 모양만 갖춰지게 얼기설기 반죽 마무리 했습니다.(대충 반죽은 뒤에 또다른 아픔을 몰고 옵니다ㅠㅠ)

 

 

딸은 신기한지 옆에서 계속 지켜보며 맛있겠다를 연발했지요. 제발 맛이었으면 좋겠다고 저도 생각합니다. 동글동글 빚어놓은 경단은 팔팔 끓는 물에 온신욕 좀 하고요. 다시 찬물에 담가서 전신을 탱글탱글하게 탄력을 줍니다. 삶아 놓은 팥은 갈아서 프라이팬에 볶으며 수분을 날려서 팥가루를 만들었어요. 이제 팥가루와 경단이 함께 뒹굴 차례. 한 시간 넘게 서서 동동거리며 왔다갔다 한 결과물 수수 팥 경단입니다.

 

 

어때요? 비쥬얼이 완전 먹음직스럽죠? 제일 먼저 맛을 본 딸은 오물오물 참 오래도 씹더라구요. 한참을 먹고 한 개 더 먹어요. 맛있나봐요. 어머머 저 수수경단 성공했나...봐요...? 하면서 제가 하나 먹어보는데 이건 돌인가요? 맛이 왜 이러지?? 맛은 둘째 치고 식감이 왜 이리 모래 씹는 것 같지??? 남편에게 먹어보라고 권하는데 자꾸 도망다녀요. 직감으로 수수경단 먹으면 안 된다는 걸 알았던 게지요. 억지로 하나 입에 넣게 했는데. 씹어도 씹어도 도무지 입에서 침이 안 만들어진다며 어떡해야 하냐고 저에게 묻네요.

 

아이도 사실 너무 맛 없었는데, 엄마가 만든 정성을 봐서 참고 두 개나 먹었대요. 눈물겹습니다. ~~~ 그렇게 ’(수수경단)은 갔습니다. 요알못이 어설프게 도전하기엔 숨은 디테일 노하우들이 있었던 거였어요. 반죽을 오래했어야 하는 건데 손목 아프다고 대충 한 탓에 수수경단님을 떠나보내야만 했어요. 다음 해에 또 도전할 수 있을까요? 글쎄요. 또 할 마음이 날지 모르겠지만 일단 딸을 사랑하는 저의 마음과 정성은 보여줬으니 생일 잘 치른거겠죠?

 

예나 지금이나 엄마, 아빠의 부름에 대답을 잘 하는 아이, 앞으로도 쭉~~ 건강하게 가자.

사랑해, 엄빠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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