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인문학

죄와 벌

꿈트리숲 2020. 3. 23. 06:00

제가 오래전부터 몇 번 도전을 했지만 끝끝내 완독하지 못한 소설이 있습니다. 바로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인데요. 저의 끈기 부족 때문인지 아니면 책이 어려운 것인지 등장인물의 이름마저도 저를 헷갈리게 만들었던 책입니다. 하는 수 없이 아이가 보던 책으로 마무리하고 찜찜함에서 해방되었어요.

 

도스토예프스키는 톨스토이와 함께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작가이죠. 그가 살던 19세기 중반 러시아 사회는 농노 제도를 기반으로 풍요로운 생활을 하고 있던 귀족들과 가난에 허덕이는 농민들, 도시 빈민들,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지식인들로 무척이나 혼란스러웠다고 합니다. 이 시대적 배경이 <죄와 벌>의 등장인물들에 고스란히 배어 있습니다.

 

 

혼란한 시대를 살아가는 고학생 라스콜리니코프는 돈이 없어 여동생의 반지, 그리고 아버지가 남겨 준 은시계를 전당포에 맡기고 생활비를 빌렸습니다. 전당포의 노파 알료나는 그 지역 대학생들에게 고리대금업자로 아무 가치도 없는 인간으로 인식되고 있어요. 사회의 해충이나 다를 바가 없다고 말이죠.

 

그들은 그런 생각도 합니다.

‘목적이 훌륭하니까 아마 그 죄도 면하게 될걸.’ (42쪽)

 

이는 곧 누군가가 전당포의 노파를 살해하면 쓸모없는 한 생명을 없애고 수많은 생명을 구제할 수 있다고, 그래서 사회 정의를 구현한다고 생각하는 것인데요.

 

그 논문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평범한 사람과 비범한 사람으로 분류된다는 것이지요. 평범한 사람은 세상의 모든 법칙에 따라 생활해야 하지만, 비범한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비범하게 태어났기 때문에 그런 온갖 범죄를 저지를 권리를 갖고 있다는 것이지요. (120쪽)

 

라스콜리니코프는 사회에 ‘이’와 같은 존재를 죽임으로써 사회 정의를 구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자신은 그 노파를 죽여도 되는 권리를 부여받았다고 여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신문에 위와 같은 논물을 게재함으로서 목적을 위해 수단을 정당화하는 쪽으로 마음을 굳힙니다. 

 

“소냐, 난 나폴레옹이 되고 싶었어. 난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해 본 적이 있었지. 만약 나폴레옹이 출세를 위해서 노파를 죽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닥쳤을 때 과연 그는 그런 짓을 할까? 그래서 난 나폴레옹이라면 주저하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지. 다른 방도가 없었다면...” (185쪽)

 

라스콜리니코프는 전당포 노파를 살해하고 계획에도 없던 그녀의 동생까지 살해하는데요. 죄를 지은 사람을 정당하게 벌했다 고 생각한 그는 영웅이 되었을까요?

 

“결국 이렇게 될 걸 뻔히 알면서 나는 왜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질렀던 걸까?” (128쪽)

 

잘못을 단죄한 그 순간부터 라스콜리니코프는 죄의식에 사로잡혀 자신이 주는 벌을 받게 됩니다. 괜히 범죄 현장에 가보고, 며칠 끙끙 앓아눕기도 하고, 헛소리도 하고 말이죠. 극도의 불안감을 견딜 수 없어 실신도 하죠. 판사와 심리전을 벌여야 함은 물론이요, 가족들 얼굴도 제대로 마주할 수가 없습니다.

 

이러니 죄를 짓고는 살 수 없다는 말이 있는가 봐요. 인간에겐 누군가를 벌할 권리는 주어지지 않았음이 분명합니다. 죄는 이성과 논리의 합작품인  법에 맡기고 감정을 가진 인간은 용서를 담당하는 것이 옳다 싶습니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창부 소냐에게 속죄하고 자수를 권유받는데요. 그 시대에 창부는 같은 건물에 사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이 쫓아내고 싶어하는 존재였습니다. 그렇게 비천한 계층인 소냐에게 속죄한다는 건 자신과 처지가 비슷하다 여겼기 때문이겠지요. 아님 누구에게든 용서받고 싶은 절박함과 위로 받고 싶은 간절함이었을수도요.

 

소냐는 계층을 초월한 사랑과 믿음의 구현을 보여주는 인물인 것 같아서 암울하고 답답한 시대에 한 줄기 희망의 빛처럼 느껴집니다.

 

<죄와 벌>은 죄를 지은 인간이 겪게 되는 혼란과 괴로움을 고스란히 느끼게 해줬어요. 또 죄와 벌 앞에서 우리는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도 생각해 봅니다. 죄와 벌이 무서우면서도 우리는 왜 죄를 저지르며 사는지 뚜렷한 답이 떠오르지 않네요. 죄를 지어 스스로 내리는 형벌에 갇히는 일이 없도록 목적을 위한 정당한 수단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생각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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