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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의 교향곡

꿈트리숲 2020. 4. 29. 06:00

세모시 옥색 치마 금박물린 저 댕기가 창공을 차고 나가~~~ 우리 가곡 <그네>의 시작 부분입니다. 저는 테너 엄정행님이 부른 노래로 기억하고 있는데요. 이 노래가 지휘자 금난새님의 아버지이신 금수현 선생님이 작곡하신 거라고 하는군요.

 

더욱이 <그네>의 가사는 금수현 선생님의 장모이신 김말봉 작가님의 시라고 해요. 금난새 지휘자님의 외할머니이신 거죠. 가족이 글을 쓰고 작곡을 하고 지휘도 한다... 생각만 해도 재밌을 것 같고 뭔가 특별한 이야기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작년 2019년이 금수현 선생님 탄생 100년이 되는 해였다고 합니다. 그 기념으로 생전 선생께서 일간지에 실은 칼럼들을 엮고 이에 아들(금난새님)의 이야기를 더해 <아버지와 아들의 교향곡>으로 탄생했습니다.

 

금수현 선생님은 일제 강점기 때 태어나셔서 일본식 이름을 강요받았어요. 그 설움을 극복하고자 성씨를 김에서 금으로 바꾸고 자식들의 이름도 다 한글로 지었다고 하는군요. 그래서 우리에게 친숙한 지휘자 ‘금난새’라는 이름도 탄생하게 되었던 거였어요.

 

위에서 잠깐 언급했던 금난새 지휘자님의 외할머니 김말봉 작가님은 글재주가 좋으셔서 여러 권의 수필과 시를 남겼다고 하는데요. 글재주뿐만 아니라 김말봉 작가님은 말재주 또한 참으로 탁월하셨다 여겨지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너는 20세기 로맨티시스트가 될 거야.” (10쪽)

 

외할머니가 손자에게 하신 말씀치고는 너무 부드럽고 상상 초월입니다. 보통의 할머니는 손주들에게 ‘공부 열심히 해라, 부모 말씀 잘 들어라’ 그런 얘기 하시지 않나요? 작가 할머니는 남다르십니다. 그리고 손주의 미래를 예견하시는 능력도 갖고 계셨던 것 같아요. 

 

할머니 말씀대로 금난새 지휘자님은 20세기를 넘어 21세기 로맨티시스트도 하고 계시니 말입니다. 전 올백 머리가 그렇게 잘 어울리는 사람 별로 못 봤어요. 또 열정적인 지휘를 하고선 곡에 대한 설명을 조곤조곤 해주실 때면 어쩜 저리 부드럽게 청중을 아우를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 지휘자님은 젊었을 때는 아버지를 극복하기 위해 애를 썼는데, 나이를 먹으니 어느새 아버지를 점점 닮아가고 있다 생각이 든대요. 우리가 접하는 금난새 지휘자님의 모습에 아버지 금수현 선생님의 철학과 교육이 담겨 있다고 봐도 좋겠죠?

 

아버지는 제게 단 한 번도 이래라저래라 말씀하신 경우가 없습니다.

“난새야, 네가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일을 해라.”

이런 말씀만 하셨습니다. 제 동생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참 민주적이면서도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저에게 아버지는 정말 매력 있는 분이었습니다. 성공을 했든 아니든 언제나 자신의 소신을 가지고 살다 가신 분입니다. (12쪽)

 

자식이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도 아름답고 자식에게 이렇게 기억되는 부모도 참으로 멋지다 싶어요. 이 부분을 읽고서 난 얼마나 민주적인 부모일까 되짚어 봤어요. 이래라저래라했던 때를 떠올려보기도 합니다. 아쉬웠던 때가 군데군데 떠오르네요. 그래도 금수현 선생님과 똑같은 것이 하나 있다면 저도 딸에게 네가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말한 것이에요.

 

앞으로도 아이의 진로에 대해선 이래라저래라 절대 강요하지 않고 계속해서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을 좇으라고 말해야겠습니다.

 

금난새 지휘자님은 음악은 형식보다 소통과 교감이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그 소통과 교감은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받은 배려와 공감에 뿌리를 두고 있다 짐작됩니다.

 

금수현 선생님은 탁구를 아주 잘 치셨다고 해요. 그런데 공격은 하지 않고 수비만 했다고 합니다. 아들과 탁구 칠 때도 아들의 모든 공격을 다 수비하며 랠리가 계속되도록 해서 공 주우러 다닐 필요 없이 오래도록 칠 수 있었다고 하는군요.

 

아버지는 이기기 위해 탁구를 친 게 아니었다. 즐기기 위해, 자신의 행복을 위해 탁구를 친 것이다. 이런 아버지의 넉넉하고 여유 있는 태도는 내게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189쪽)

 

그 영향을 받은 아들은 오케스트라 연주에서 자신보다 미숙한 사람에게 들어주고 배려해주면서 진정한 실력자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클래식을 쉽게 재밌게 감상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해설이 있는 음악을 선물해주는 진정한 21세기 로맨티시스트가 되셨죠.

 

아버지와 아들의 교향곡은 엄마와 딸의 이중주를 어떻게 연주할 건지에 대해 적절한 코칭을 해주는 악보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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